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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콘서트

노희경 작가 “부모 늙는 것 알면 그 때 철드는 것”

노희경 작가와 맹호부대 군인들과의 만남,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노희경 작가님 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작가님의 드라마 속에는 늘 가족이 등장하고, 가족과의 화해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작가님의 삶 속에서 겪었던 아픔들을 모티브로 드라마가 구성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람피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기까지 많은 아픔들이 있으시셨고,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군인들도 작가님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많이 쏟아내었습니다. "가족 그리고 화해”에 대한 대화내용을 소개합니다.

△ 노희경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 병사질문 :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한 적이 있으십니까?

▶ 노희경 : 미워하는 대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요. 오랜 기간 동안 미워한 대상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밉다고 생각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이고, 그러면서 화해를 하지 못하고 스물 다섯에 분가를 했어요. 아버지를 안보게 되니까 잘 살았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 미워졌어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버지와 만나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암에 걸리시고, 큰 오빠와 살게 되었는데 큰 오빠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서, 아버지가 오갈 데가 없어지니까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 했거든요.

아버지가 암에 걸렸을 때 마음이 짠 한 것도 잠시였고, 살면서 정말 많이 미워했어요. 못견디겠는거야. 그런데 딱 마음에 걸리는 것은 조카 아이들이 무섭더라고요. 조카들한테 이렇게 아버지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조카들도 부모님이 이혼했고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라고 얘기해주는 입장이었거든요. 아이들을 키워보니까 아이들은 절대 말로 해서는 이해하지 않더라고요. 행동을 보여주면 그때서야 이해를 하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300배를 하면서 ‘아버지 있는 그대로 감사합니다’ 기도했어요. 지금도 생각나요. 내가 그렇게 기도하다가 염주를 땅바닥에 때려쳤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것이 없는데... 우리 아버지가 이 여자 저 여자 바람을 피웠어요. 60세 전까지는 1년동안 우리 집에선 10일만 지내고, 나머지 350일은 딴 여자랑 살았어요. 그런 것만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잘 해준 것은 기억이 잘 안났어요.

어느날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있더라구요. 아버지가 그 때도 바람을 피고 있었어요. 우리 집은 산동네였는데, 내 나이 마흔 여섯에 아버지가 한 겨울에 우리 집에 찾아왔던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 남자가 그 추운데 이 집에 오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것도 따뜻한 방에 이쁜 여자랑 살면서...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씩 군고구마를 사오면, 우리 자식들이 아버지를 굉장히 표독스럽게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문을 꽝 닫고 나가는거야. 아버지랑 밥도 안먹고. 그런데도 왜 왔을까. 저는 나쁜xx 하면서 아버지를 욕했어요. 그 사람은 정말 나빴을까. 그래도 자식들 보려고 찾아오는 마음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그래도 나는 이혼은 안하지 않았느냐” 하셨어요. 나는 뭐 욕하던지 말던지, “이혼 안했는게 그게 뭐 대수야!” 그랬죠. 그래도 아버지에겐 마지막 남은 저 밑바닥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했지 단 한번이라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구나... 그 사람 외로워하고 있구나...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집에 돌아갈 때, 그리고 그 여자도 떠났을 때, 인간적으로 한 인간이 참 외로웠겠다 이 생각은 내가 안해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버지도 무조건 나쁜 놈은 아니고, 단지 우유부단한 게 있지.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엄마한테 미안하세요? 우리한테 미안한 적이 있었나요?” 그 말을 듣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 물었어요. “누구를 가장 사랑하셨어요?” 그랬더니 “니네 엄마가 이뻤지” 하며 웃으시는데, 아.. 엄마에 대한 의리가 있으시구나. 돌아가시기 전에 몸이 힘드실 때는 “나는 살면서 해볼 것 다 해봤다. 단 하나 못한 게 있다. 너희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거다.” 이 말씀 하시더라구요. 그 말씀 하나가 나한텐 전부였어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40년 미워한 원수도 내가 이해했는데 누굴 이해 못할까 이런 마음도 들고.

나중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지금 아버지를 생각하면 따뜻해요. 누가 좀 미울 때 아버지 생각을 꼭 해요. 내가 아버지도 이해했다. 저 남자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서 실제 아버지랑 싸운 적도 있고. 어디 가서 저는 아버지 이름을 부른 적도 없어요. 우리 집에 사는 노oo씨 이렇게 말한 적은 있지만... 지금 저한테 우리 아버지는 괜찮은 남자, 따뜻한 남자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충분히 우리한테 마음을 전하시고 가신 것 감사하고. 지금은 미운 사람 있어도 2~3일 가면 괜찮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것 때문에 밤에 잠을 못자고 이러 짓은 안해요.

△ 훈련병 때 어머니가 전화로 "아들!" 이라고 하시는데 울먹거렸습니다. 듬직해지고 싶어요.

▶ 병사질문 : 제가 군대를 오기 전 놀기 좋아하던 저는 가족들과는 너무 적은 시간을 보내고 입대를 한 것 같네요. 훈련병 시절 첫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아들~” 이라는 너무 따뜻한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울먹거리다 말도 잘 못하고 통화를 끝냈는데요. 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너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가족들 면회가 오는데... 그때 어떤 모습으로 어머니와 만나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약하고 작은 아들이 누구보다도 커 보이고 듬직해 보이는 모습으로 느끼실지..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지. 가족들이 우리 아들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꼭 들게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노희경 : 우리 조카가 군대에서 첫휴가를 나왔을 때, ‘충성... 뭐라뭐라’ 그러더라구요.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휴가 나와서는 “엄마가 아프니까 이것 좀 도와주라” 그러니까 짜증을 내더라구요. (웃음)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애들은 다 놀다가 군대 가요. 일하다 군대 오신 분, 집에서 밭일 돕고, 아버지 공장 일 도와드리다 군대 오신 분은 얼마 안되지요. 부모님은 우리 아들이 이런 마음 들었다는 것만 봐도 참 좋아하실 것 같아요. 나는 우리 아들이 이럴 때 약한 모습이라고 생각안할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엄마가 ‘우리 아들’ 했을 때 본인에게 따뜻한 마음이 들었듯이, 엄마도 따뜻한 마음이 들지. “이 새끼 약하다” 이런 마음은 안들어요. (웃음) 별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네요.

어떤 모습으로 만나야 됩니까 물었는데, 식구들을 작정하고 만나면 되게 힘들 것 같아요. 좋으면 좋은 대로, 울고 싶으면 울면 어때요? 괜찮아요. 질문한 마음 그대로 어머님께 전해드리면 듬직해 하실 것 같아요. “엄마,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하면 듬직해 보이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엄마 짐을 막 들어드리고, 맛있는 고기를 사줘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오히려 ‘내 아들이 왜 이러지’ 하지 않을까. 먹을 때는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고, 편했으면 좋겠어요. “엄마한테 듬직한 모습 못 보여드려서 죄송하더라” 그러기만 해도 엄마는 ‘이런 말도 할 줄 알고.. 듬직하구나’ 그럴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더라” 이 한마디면 충분해요. 부모들이 봤을 때는 맨날 놀기만 하다가 군대 가서도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하는 게 더 서운한거야.

부모 늙는 것을 알면 그 때 철든다고 해요

우리 조카들도 자기 아빠가 근육질이예요. 그런데 40대 후반으로 가니까 근육이 탱탱하지 않고 흘러. 그런데 조카가 자기 근육을 보여주면서 “아빠, 내 근육 생겼지” 하는 거야. 그런데 지 아빠 근육이 자기처럼 딱 올려 붙지 않고 약간 흘르는 거지. 그러니까 걔가 “아.. 마음 아프다. 아빠도 근육이... 뭐야.. 아 속상해” 그러는데 마음이 짠 하더라구요. 얘가 부모 늙는 것을 아는구나. 부모 늙는 것을 알면 그 때 철든다고 해요. 부모를 내가 기대야 할 대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호해야 될 대상으로 알 때 철이 드는 겁니다.

조카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형부도 마음이 짠하고, 나도 마음이 짠하고, 제가 진짜 컸구나. “아빠 아직 쓸만하네... 좀 뜯어먹어도 되겠네..” 이게 아니라, “아이... 속상해” 하며 돌아서서 가는데, 정말 컸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군대 오니까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이더라” 하는 이야기만큼 부모님 마음을 애틋하게 하는 말이 있을까 싶어요. 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 생각도 하는구나. 부모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게 그거거든. 지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그런데 지 생각도 제대로 못해. 지금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하면 걱정을 탁 내려놓으시지 않을까 싶네요.

▶ 사회자 : 좋은 질문 해주셨네요. 나중에 자대 가서 유격 훈련을 다녀오시면 한층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웃음)

△ 강연장을 가득 메운 병사들

▶ 병사질문 : 아버지를 결국 이해하고 함께 사셨는데, 자신이 싫어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을 포용하고, 잘 지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 노희경 : 제일 좋은 것은 이해하는 것이지만, 이해할 수 없고, 한계라는 것도 있고, 나이라는 것도 있어요. 저도 아버지를 마흔 넘어 이해했어요. 궂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아요. 아버지가 이해 안되면 집 나오세요. 엄마 때문에 못 나오겠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건 엄마한테도 안좋아요. 아버지랑 아들하고 계속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없는 게 나아. 부모님에 대한 도의식에 자꾸 걸리는데, 내가 성인이 되어서 집 나와서 사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도의식과 무슨 상관이야. 저는 제가 스물다섯에 집 나와서 제가 얻은 게 너무 많아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서. 안 볼 수 있으면 제일 좋지. 그런데 안 볼 수 없는 사정이예요?

▶ 질문자 : 아버지가 아니고, 군대에서 만난... 제가 싫어하는 사람들...

▶ 노희경 : 나에게 아버지는 300배를 할 만큼 필요했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300배를 반년 정도 했어요. 하루 30분 아버지 손잡기도 했어요. 아버지에게 그만큼 투자하고, 지금까지도 매일 108배 하니까. 살아계시는 동안 3년을 참회기도 한 건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앞으로 남은 인생 조카 아이들에 대한 것도 정말 넘을 수 없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가. 군대는 마음에 안들면 그냥 2년 있다가 헤어지는 사람들이니까.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어보고, 우리가 오해할 때가 되게 많거든요. 저 사람이 싫을 때는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볍게 물어보고. 그래도 계속 싫으면 헤어지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들이 참 착한 것 같아요. 다 이해하려고 그래. 이해가 안되면 피하는 것도 방법인 거지. 그 사람을 이해한답시고 싸움을 하고 분쟁을 하고 소송을 걸고 그래봤자 결과적으로 좋은 것이 없을 때는 ‘그런가보다’ 저 사람에게는 피하는 것도 답이다. 군대에서 안좋은 사람이 있다면 피하는 것도 답이다. 왜 그러느냐고 가서 물었는데도 이해가 안된다. 이유를 들어도 이해가 안된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을 좀 피하는 것도 답이지. 이해한답시고 싸움하는 건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


질문들이 끝나고, 또 한번 박수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작가님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진솔한 경험담이여서 그랬을까요, 훌쩍 훌쩍 눈물을 보이는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바람피운 아버지를 이해하셨다는 그 이야기가 코끝을 찡하게 하더군요. 군대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는 말씀도 참 쿨하게 들렸습니다. 부모님 늙는 것을 알 때 비로서 철이 든다고 하셨는데, 저 키우느라 고생하신 저희 부모님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아련해져 오더군요. 저는 나이 서른이 넘은 이제서야 철이 든 것 같습니다.ㅎㅎ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