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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콘서트

노희경이 말하는 드라마 연인처럼 사랑하려면

드라마 <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유명한 노희경 작가가 군부대에 초청되어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맹호부대 군장병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희경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연애, 가족, 봉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즐겁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책을 출간하면서 인세액 전액을 빈곤퇴치 활동에 기부하는 등 평소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병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어 이곳 군부대에서 초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연은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병사들의 가장 큰 고민인 연애와 사랑에 대한 질문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오늘부터 5회에 걸쳐 노희경 작가님과 장병들의 대화내용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연애와 사랑” 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 병사들의 질문에 애틋한 마음으로 열정적인 강연 해주신 작가님.

△ 평소에는 시작 5분 만에 잠든다는 병사들이 1시간 30분 동안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더군요.

▶ 병사 질문
: 여자 친구가 취직한 다음부터는 휴가를 나가도 저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전화도 안 받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계속 전화를 걸면, 전원을 끄고 저를 피합니다. 자꾸 한숨만 나옵니다.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상냥하게 저를 걱정해 주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 노희경 : 어떻게라도 정말 해주고 싶다... 사실 전화를 안받는다는 건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건 알고 있죠? 전화기 전원을 끄는 건 당신이 불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땅히 할 이야기도 없고,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그 여자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본인은 속이 많이 상할 겁니다.

하지만, 저도 남자한테 버림 받아서 미칠 것 같은 때가 있었고, 그러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죠. 내가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나를... 왜 싫어하게 되었나. 이유가 뭐냐 물어보고 싶겠죠. 하지만 이유를 정확히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이런 얘기는 거짓말이에요. 믿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만큼 성숙하지 않고, 마흔 다섯 먹은 제 나이에도 그건 쉽지 않아요. 사랑하면 곁에 있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에요. 그런 감언이설은 나쁜 마음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너랑 섹스하는 게 지겹다, 너무 소모적이다” 이 얘기를 상대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하겠어요. 그러면 상대 입장에서는 “그럼 너는 왜 좀 더 발전적으로 제시하지 못했어?” 이런 공격을 하겠지. 그게 무서운 겁니다.

마음이 변했고 같이 있으니까 별로 안좋다는 겁니다. 마음이 변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면 좋지만, 여자 친구는 그럴 자신이 지금 없어요. 그럴 때 상대가 불편하다는데 계속 내가 연락을 해야할까 이걸 자문해봐야 해요.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도 멀어져요. 그런데 좀 더 성숙해지고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연륜이 생기면 안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지금은 그럴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우리 조카를 소개시켜 줄 수도 없고.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인데... (웃음)

여자 친구가 말할 수 없는 건... 의리가 있으니까. 정말 싸가지가 없고 냉정해서 만나지 않는 게 아니라 미안해서 그런 거겠지. 달리 할 말이 없잖아. 마음이 변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냥 미안하지. 그런데 미안하다고 말하면 또다시 이어질까봐 말 안하는 겁니다. 이어지고 싶지 않다는 건 정확한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정확하니까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안하는 게 좋겠다. 스토커처럼 그 여자에게 계속 연락할 것인가? 아싸리 “가라! 이 계집애야” 하고 끝낼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 병사 질문
: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 노희경 : 잘 모르겠는데... 단순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우리 조카들에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 행복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마. 여자 친구랑 너무 싸워? 행복하지 않으면 보지 마. 그래서 저희 집에는 원칙이 있어요. 제가 집에 딱 들어가면 조카들이 물어요. “고모, 오늘 기분 어때?” “기분 나뻐” 이러면 아이들이 딱 말을 안걸어요. 기분 좋을 때만 말을 걸어요. “오늘 기분 어때?” “괜찮아” 그러면 말을 걸어요.

행복해야 된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사랑이 괴롭고 상처주는 거라고 이상하게 배웠어. 서로 욕 하면서도 못 헤어져. 이해가 안가. 우리 조카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 쿨하게 키우고 싶어. 저희 집은 스무살만 되면 애들이 분가해서 한 달에 한두번 집에 오는데, 오늘 기분 나쁘면 집에 오지 마라 그래요. 기분 좋으면 와라.

사랑하는 것은 행복한 것 같애. 행복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지. 책무지. 그 누구도 불행한데도 계속 만날 이유가 없지.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고모가 싫을 때 억지로 고모 얼굴을 보는 것,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면 사랑은 행복한 것.

▶ 병사 질문 : 드라마 속 연인처럼 사랑해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 노희경 : 드라마처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드라마 속에서 연애 장면을 그리잖아요. 그 중에는 제가 했던 것도 있어요. 내가 하지 않았던 것도 상상해서 쓰죠. 상상할 때 그 발단이 뭐냐면, ‘이렇게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게 있어요. 내가 모델을 하고 그걸 따라가는 거야.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멋있는 남자, 이해심 많은 남자, 따뜻한 남자, 능력 있는 남자를 좋아하지. 그건 인지상정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는 다이제스트예요. 다 보여줄 수 없어요.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보여주잖아. 드라마는 허상도 있는데, 그 속에서 키포인트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배우들 같은 경우에도 상냥한 사람, 이해심 있는 사람, 귀엽지만 발랄한 사람 등 어떻게 보면 퍼펙트한 것 같지만, 그 귀여운 요소 하나 맑은 요소 하나만 있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거죠. 그렇게 되려면 그 부분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거지.

저 같은 경우에도 내가 쓰는 글이 맨날 가족 이야기이고 사랑 이야기인데, 내가 우리 아버지 미워하는 것이 마음에 딱 걸리더라고. 말과 현실이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원하는 가족상처럼 실제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듯이, 드라마 속 연인처럼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거야. 내 글은 이렇게 쓰면서 내 생활은 왜 이러지? 조카 아이들이 나에게 속마음을 내어놓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들이 있었어요. 우리 조카 계집애가 고등학교 때 사회봉사 시간이 300시간이 나왔어요. 거의 중범죄죠. 폭력, 담배, 음주... 갖은 일로 사고를 쳤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가족상이 있다면, 아무리 조카 뺨을 때렸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고모가 폭력 쓴 건 미안하다” 이야기해요. 좌충우돌 하지만, 그 다음에는 횟수를 줄이고, 결국 안하죠.

내가 생각하는 모델들을 흉내내 보는 거야. 조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고, 그러다보니 들리고. 조카에게 "폭력을 쓰면 상대는 두려움을 느낀다" 고 얘기도 해주고. 조카 손을 잡고 조카가 때린 친구 집에 찾아가서 사과도 해보고. 이런 일들을 겪을 때 나에겐 항상 모델이 있는 것 같다. 그 모델들 하고 나하고 간격을 줄이는 것은 노력이 없으면 안되지. 여러분들이 현빈이 아니고, 만나는 여자 분들이 송혜교씨가 아니잖아요. (웃음)

△ 군인들과 기념촬영. 작가님의 큰 키가 돋보이는군요.ㅎㅎ

▶ 병사질문 : 한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예전처럼 사랑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노희경 : 용서는 안될꺼예요.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용서는 봐주는 거지. 니가 나를 버렸는데, 내가 봐줄께. 이렇게 되면, 다음 사랑을 할 때도 봐주고 안봐주는 문제로 계속 싸우게 되요. 이해하면 좋겠다.

그 여자는 끊임없이 살갑고 자상했다고 여겨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여자가 나에게 언지를 줬어요. “너는 우유부단해.” “너는 말만 하고 행동은 왜 따라가지 않아?” 등등... 그 여자가 나랑 사귀면서 분명히 나에게 얘기해 주었지만, 헤어질 때가 되니까 좋은 것만 기억날 뿐이에요. 뜨거운 것만 기억이 날 뿐이지. 그 여자가 분명히 나에게 많은 문제점들을 얘기해 주었지. 그런 것들이 쌓였지.

여자 입장에서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것들이 군대 와서 안보이게 되니까 편한 거야. 진짜 야면차게 들어가 보면, 상대 때문에 힘들었던 거야. 누적이 된 거예요. 성격의 문제도 있었고, 플러스, 플러스 된 거지. 이해가 되요? 이해가 되면 그 다음에는 방법이 생겨요. 내가 배신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당신 너무너무 좋은데 헤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100프로 없어요.

그래서 그냥 여자들이 하는 말들을 흘려듣지 마세요. 그리고 이해할 거리들을 찾고, 정말 이해해서 수용까지 된다면 되는 거고. 수용하지 않으면 헤어지면 되지. 용서할 문제는 아니지. 그 여자가 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내가 왜 용서할 문제예요? 그냥 좋아진 거지. 그럼 내가 그걸 봐준다고 하면 그 여자가 나를 고마워해요? 그 여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너보다 얘가 더 좋은 거야. 아주 단순해. 단순하게 이해하세요. ‘아, 나보다 얘가 더 좋구나... 나를 좋아해줄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용서란 없다 하잖아요.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이지. 여자는 남자를 의심하고, 남자는 여자를 의심하고 이런 경우가 어른이 되면 종종 있어요. 옛날에 만났던 여자에 대한 편견을 이 여자한테도 덮어씌우고. 그래서 서로 “왜 너는 지나간 사랑 때문에 나를 이렇게 보냐, 어쩌구...” 싸우고 난리예요. 이런 어리석은 짓을 더 이상 범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인연이 안 된 거지. 스타일이 달랐고...’ 라고 받아들이고, 그 스타일을 연구해서 다른 여자 만날 때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거요.

그게 계산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계산적인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있는데 웅덩이에 빠졌어. 아, 이 길을 가다가 이 웅덩이에 빠지면 다치는구나. 그게 계산적이에요? 지혜예요. 계산적이라는 말을 나쁘게 생각하는데, 삶의 지혜는 그런 정확한 계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이런 케이스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렇게 되면 순수한 것이 없어질 것 같죠? 안그래요. 지혜가 생기면, 때때로 그 계산을 다 내려놓고도 또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요. 계산을 했기 때문에 참는 게 없게 되고 생색을 덜 내게 되요.

△ 사인 받으려고 줄 선 병사들이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여자 친구 때문에 근심 걱정 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탓일까요. 군인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쿨하게 이야기해주시는 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해주시기까지 수많은 아픔을 경험하셨겠지요. 노희경 작가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포스팅 주제는 “가족 그리고 화해”에 대한 군인들의 질문과 작가님의 대답입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