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김정은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또한 지난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과 시진핑 체제의 등장으로 새로운 미· 중 관계가 모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향후 동북아 정세의 향방을 가를 일들이 잇달아 벌어졌다. 북한의 ‘은하3호’ 로켓발사 성공(12.12)과 극우 공약을 내건 일본 자민당의 집권(12. 26),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12.19)이 그것이다.
북한 로켓발사는 새판짜기 신호탄
먼저, 북한이 ‘광명성 3호’ 2호기 인공위성을 탑재한 ‘은하3호’ 로켓을 지구궤도에 올린 것은 동북아 새판짜기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로켓발사는 명백한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 위반으로, 이를 규탄하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의 채택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수전 라이스 미 유엔대사는 북한의 로켓발사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과 도발로 규정해 규탄한다’고 지적했으나, 리바오둥(李保东) 중국 유엔대사는 ‘북한의 행위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은 맞지만 도발이 아니며 규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며 설전을 벌였다. G2 유엔대사 간의 설전은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양대 초강국의 입장이 조율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음, 동북아 새판짜기의 또 다른 변수는 12.16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일본 자민당의 집권이다. 자민당은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담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비롯해 교과서의 ‘근린조항’ 삭제, ‘다케시마의 날’의 국가행사 승격,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단독제소, 센카쿠열도(댜오위섬)에 국가공무원 파견 등 동북아정세를 뒤흔들 민감한 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선됐다.
오는 12월 26일에 취임할 아베 총리(예정)는 한국 대통령 선거 직후 ‘다케시마의 날’의 국가행사 승격을 유보한다는 입장을 밝혀 한일 간 정면충돌의 위기는 피해갔다. 이는 2월 25일 한국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여 한일정상회담을 갖기 위한 사전 분위기 조성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대한 입장은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동북아 정세를 가를 세 번째 변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이다. 한국의 새 정부의 정책이 이명박 정부와는 어느 정도 차별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본적으로 앞으로 5년간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대북 압박정책을 견지하는 보수색채의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이어갈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굳이 당선 발표 다음날 주변 4강의 대사들과 면담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명박 당선인 때 미·일·중·러 순서로 면담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미· 중· 일· 러 순으로 면담한 것은 작으나마 외교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측의 특사파견 제안에 대해, 당선인 측에서 아베 총리의 취임 이후인 12월 26일 이후로 늦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뢰외교와 새로운 한반도'를 주제로 한 외교안보통일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박근혜 당선인.
과도기 남북관계 관리의 중요성
북한 로켓발사에 따른 국제제재 국면 진입으로 한반도 안보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왔으나 중국의 반대로 추가 대북제재 논의가 뒤로 미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 대북제재 논의는 빨라야 내년 봄에나 재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소 시간을 번 셈이다.
대통령 취임준비 기간이 이명박 정부와 곧 출범할 새 정부의 이중권력기임을 감안할 때, 이명박 정부는 잔여임기 동안 북한에 대해 과잉행동을 자제하고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새 정부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향후 2개월 동안 이명박 정부가 잘못 대응할 경우,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남북관계의 악화가 심화되어 공약으로 내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 로켓발사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동북아 새판 짜기에서 한국이 국외자로 남게 될 뿐 아니라 역내 안보협력체제 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한반도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될 위험성마저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안정적으로 시작될 수 있도록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조화로운 발전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2개월의 대통령 취임준비 기간동안 남북관계의 성공적인 이륙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초기의 국정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의 시행착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당초 인수위팀과 북한 측이 물밑 접촉을 통해 북한 특사의 대통령 취임식 파견이 협의되고 있었는데, 최종 조율도 되기 전에 이 사실을 인수위 관계자가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은 그 뒤 5년간 남북관계 악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2008년 3월 중순 각 부처 장관들이 청문회를 거쳐 3월 하순에 취임했다. 그 직후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힘들다"는 발언을 하고 군고위관계자가 대북 선제공격론을 편 데 대해 북한 측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뒤 북한 측은 남북당국 간 대화 중단을 발표하고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함으로써 남북관계가 파탄나기 시작했다.
북한과 미국, 중국의 새 정부가 이미 작동되고 있고 북한의 로켓발사를 둘러싸고 미·중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두 달 뒤인 2013년 2월 25일에야 출범하게 된다. 새 정부는 대선공약을 통해 대북정책의 방향은 제시했지만, 구체화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통일부장관이 3월말에 임명되고 6월말이 돼서야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이 발표되었다. 여당이 재집권하게 되어 다소 빨라지긴 하겠지만, 새로운 장관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어 각 부처의 정책을 구체화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4~5월은 돼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확정될 수 있다.
박근혜 새 정부에 갖는 우려와 기대
우리의 정치일정 상 한국은 이미 시작된 동북아의 새판짜기에 뒤늦게 뛰어들게 되는 셈이다. 만약 대통령 취임준비 기간의 두 달 동안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짜놓은 판에서 자칫 종속변수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또한 향후 5년간의 남북관계도 북한 측에 끌려 다닐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북한 측의 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군 당국이 애기봉에 성탄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고 점등식을 가진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는 당초 올해에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다시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새 정부를 위한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가 출범해 남북관계의 틀을 짜기도 전에, 국방부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프레임에다 새 정부를 옭아매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이명박표 대북정책의 말뚝을 박음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대북 강경정책에 휩쓸리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는 북한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자칫하면 새 정부의 향후 5년간 남북관계가 또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처사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이 커다란 이슈가 되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정책기조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정책내용에서 보면 흐름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의 사과'를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고 대화를 통해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점이다.
남북 간에는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 현안문제가 많이 쌓여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사과'라는 전제를 내놓은 까닭에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조건 없이 남북대화에 나서겠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은하3호'를 쏘아 올렸음에도,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큰 선거공약을 내걸었다가 추진의지가 부족하든 반대여론에 밀려서든 실천하지 못하는 것보다, 작은 공약을 내걸어 이것을 확실히 실현하는 것이 어쩌면 국민들에게 더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이것이 오히려 남북관계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길일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지난 5년 잘못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으로 외교안보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어느 때보다도 뛰어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도기 관리에 실패할 경우 새로운 국가리더십은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 동북아 새판짜기가 시작되고 남북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에 새로운 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이로 균형적인 시각과 실천의지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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