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반도평화

시진핑 체제 10년, 차기 정부의 한중 관계는?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데 이어, 얼마 전 끝난 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예정대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는 등 중국의 차기 5세대 지도부 7명이 임명되었다. 이제 내년 1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국가주석으로 공식 선출되면, 앞으로 4~5년 동안 국제질서를 이끌어갈 G2의 리더십이 완성된다.

 

우리가 시진핑 체제의 등장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임기(1차 2013~2017년, 2차 2018~2022년) 내에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0년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제2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더불어 G2(group of two)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제1의 경제대국이 된다면, 국제질서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 틀림없다.

 

 

▲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됐다 ⓒ신화/뉴시스

 

명목 GDP의 경우 2017년까지 미국이 19조 7,000억 달러, 중국은 12조 7,000억 달러로 전망되어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64%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IMF 보고서는 구매력(PPP) 기준의 GDP로 볼 때 오는 2016년이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는 이전의 보고서가 2018년으로 전망하던 것을 2년 앞당긴 것이다.

 

산적한 국내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

 

그러나 시진핑이 이끌어 나가야 할 중국의 앞날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 심각한 빈부 및 도농 격차와 만연된 부정부패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주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임 지도부들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이다. 14억 중국인들을 하나로 모을 이데올로기적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성장만이 사회모순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앞으로 중국이 지금처럼 두 자리 수 경제성장률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11월 17일 지도부 교체 후 열린 첫 정치국 집단학습회의에서 시 총서기는 “부패가 심각해지면 당과 국가가 망할 수 있다.” 면서 “중국은 간부청정, 정부청렴, 정치청명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1월 18일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가진 첫 연설에서도 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이제 부정부패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의미이다.


험로를 예고하는 중국을 둘러싼 대외환경

 

시진핑 체제가 직면하게 되는 외부환경도 결코 만만치 않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선으로 다행히 미국의 대외전략이 강경보수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지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으로 정하고 그에 앞서 타이뿐만 아니라 전통적 우방국이던 미얀마, 캄보디아와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중국에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EAS에 참석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아시아 정상들을 향해 남중국해를 비롯해 영토분쟁이 있는 지역의 갈등을 완화하라고 촉구했다. 벤 로즈 백악관 NSC 부보좌관도 “영토분쟁은 국제법에 따르고 중국과 일대일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참여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양자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중국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처럼 미·중 관계가 협력과 견제의 분위기를 이어오는 가운데, 12월 16일에 치러질 일본 총선에서 우익노선을 내건 자민당이 다시 권좌에 복귀할 것으로 보여 향후 중·일관계에 파란이 예상된다. 아베 신조(安部晉三)가 이끄는 자민당은 일왕의 지위격상과 자위대의 국방군 승격을 규정한 헌법 개정, ‘다케시마의 날’을 지방행사에서 국가행사로 격상, 센카쿠열도(댜오위섬)에 공무원 상주, 교과서의 근린제국조항 수정 등 극우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남북한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 한반도의 상황전개도 중국에는 결코 낙관적일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갓 취임한 김정은 체제가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어떤 일을 벌일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협력을 다 들어주기에는 중국도 제 코가 석자이다.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리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 경우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애매하기만 하다.

 

한반도 상황은 별개로 치더라도, 미국의 ‘아시아 중심축 이동’과 일본의 우경화가 본격화되면 시진핑 체제는 이에 대응해 더욱 강경한 대외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시진핑 총서기가 중국 군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 군부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대외 강경책을 구사하고 군사행동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중국을 겨냥한 포위망은 더욱 바짝 조여들게 되어 있다. 여기에 중국의 딜레마가 있다.


신형 대국관계와 한·중 관계의 미래

 

이와 같이 시진핑 국가주석(예정)이 이끌어나가야 할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순탄치 않은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럴 경우 국가단위는 왕왕 대외적 긴장조성의 길을 선택하는 역사적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당분간은 시진핑 체제가 국내문제의 해결에 치중하면서 대외적으로 강경노선을 추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의 대외관이다. 그는 금년 초부터 C2에 기반한 신형 대국관계론을 들고 나왔다. 신형 대국관계란 협력(cooperation)과 조정(coordination)에 기초하여 미국과 중국이 기성대국과 신흥대국의 패권경쟁이라는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서로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G2가 미·중 양대 강국이 국제현안을 좌지우지한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C2는 국제현안의 해결을 위한 촉진자·조정자 역할을 강조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예정)이 군부에 대해 갖고 있는 영향력을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했던 후진타오 주석은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국 군부의 강경태도를 제어할 수 없었지만, 시 국가주석(예정)은 중국 군부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산적한 국내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대국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주변 안보환경의 안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시진핑 총서기가 내건 신형 대국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안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시진핑 체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첫째, 중국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넘어선 군비증강의 속도를 늦추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둘째,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평화발전과 조화세계의 추진전략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이와 관련해 동중국해·남중국해를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원칙과 방향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셋째, 현안문제에 대한 쌍무적인 해결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중국 스스로 우월적 지위를 외교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므로, 중국은 자국과 관련된 현안의 해결을 위해 직접적 이해당사국들과의 다자적 해결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고구려사 편입시도 등 역사왜곡과 ‘중화민족 대가정(中華民族大家政)’을 내세우는 등 민족주의 이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 정부가 아무리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관련 국가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한국 차기정부는 중국의 대외정책 태도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전향적인 대중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1991년 수교 이후 한·중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허울 좋은 관계격상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양국관계가 악화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중 경제관계는 좋은 상태이지만, 외교·군사 및 국민감정 면에서 자칫 중·일 간에 빚어졌던 ‘경열·정냉·심전(經熱·政冷·心戰)’의 관계로 귀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최근 중·일 관계에서 보듯이, 양 국민의 ‘심전’은 외교관계(政冷)를 넘어 경제관계(經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중 양국 국민 간의 ‘심전’ 가능성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북 태도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정냉’의 부분은 다분히 한국 측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일변도의 외교·군사 전략이 한·중 양국의 한 단계 높은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시진핑 체제 10년 동안에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추월하게 된다. 그때 가서 한국정부가 대중 전략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다. 차기정부는 10년, 2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외교인재를 키우고, 시진핑 체제의 출범에 맞춰 다방면에 걸쳐 한·중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시진핑 체제의 10년 동안 한·중 양국은 공동비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함께 설계하고 추진하는 명실상부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 62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