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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북방한계선을 정치적 논쟁거리로 삼지 마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북방한계선 논쟁을 지켜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거나 국민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여당은 보수층 결집을 위해, 야당은 중도층 이탈을 막기 위해 매일 말꼬리 잡기 싸움을 하다 보니 자기 말꼬리를 거꾸로 잡는 경우도 생긴다. 도가 지나쳐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안보마저 흔들고 있다. 이 같은 국익을 도외시한 소모적인 논쟁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소위 개혁․진보정권이라 부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가운데 두고 그 이전과 이후 여야의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발언한 내용에 대해 당시 여․야당 대변인의 반응은 16년 만에 완전히 반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카메라 렌즈에 잡힌 북한 어선들의 연평도 근해 꽃게잡이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보수의 자가당착과 진보의 좌충우돌

 

16년 전 문제가 된 이양호 국방장관의 발언은 “북방한계선은 우리 어선이 조업 도중 잘못해 월북할 것을 우려해 설정한 것인 만큼 북한에서 이를 넘어 와도 정전협정과는 관련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국회 회의장은 이 발언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정동영 국민회의(야당) 대변인은 이에 대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망언”이라며 이 장관의 파면을 요구했고, 김철 신한국당(여당) 대변인은 “이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사항으로 소관부처인 국방부가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감쌌다. 

 

어쩌면 이렇게 공당의 입장이 뒤집어진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까? 국민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동안 입장이 바뀐 데 대해 어떤 설명이라도 있었나? 왜 이런 무책임한 정쟁을 확대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한 점은 이 논쟁이 금년 국감장에서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당이 이 북방한계선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현 정부에 대한 마지막 국감은 거의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할 터인데 대선의 전초전처럼 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그칠 줄 모르는 정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엄격한 보수 입장이라면 북방한계선을 영토선으로 주장해서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북방한계선 이남을 영해의 개념으로 본다면 북한지역은 미수복지역이 될 수가 없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전제한 국가보안법도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야당이나 진보세력 역시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당의 주장을 색깔론이나 북풍이라고 치부하고 여당이 벌여놓은 북방한계선이 영해선이냐, 아니냐는 양자택일의 판에 들어가서 수세적으로 발언의 말꼬리만 잡고 있으니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북방한계선의 역사적 진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 이후 유엔군사령관이 내부지침으로 유엔군 측 함정의 작전통제를 위해 설정한 선이다. 따라서 북방한계선은 남북이 합의에 의해 설정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이 선을 사실상 인정하고 준수해 왔다는 것도 우리의 힘에 밀려 그런 것이지 동의했기 때문은 아니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에도 없고 우리나라의 법률인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도 없다. 우리나라 영해는 기선으로부터 12해리로 하되, 섬이 많고 리아스식 해안으로 된 서해와 남해는 외각 섬 사이에 직선기선으로부터 12해리를 영해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서해에서의 직선기선은 충청도 태안반도 앞바다에 있는 소령도(행정구역은 인천시)까지만 그어져 있다. 

 

남북이 북방한계선을 함께 다루고 합의를 이룬 유일한 문건은 1991년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이다. 여기서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하였다. 지금까지 상대측이 관할해 온 수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 이 규정은 북방한계선이 남과 북을 가르는 현실적인 해상경계선이라는 데에 북한이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냥 동의한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합의한 것이다. 즉, 미래 언젠가는 남과 북이 협의하여 해상경계선을 확정하기로 하되 그때까지는 잠정적으로 북방한계선을 해상경계선으로 해두자는 것이었다.

 

남측은 잠정적으로 북방한계선의 경계선적 지위를 인정받았고 북측은 해상경계선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남측으로부터 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북한은 정전체제를 무실화시키는 책동을 자행했다. 남측은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했다는 것만 강조하고, 북한은 남측이 새로운 해상경계선 협의를 하기로 한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해왔다. 그러다가 1999년 6월 연평해전을 계기로 북한은 그 해 9월에 북방한계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임의적인 해상경계선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1999년 연평해전은 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수시로 북방한계선을 넘는 북한 함정을 물리력으로 막기 위해 우리 함정을 동원한 밀어내기 작전을 하다가 총격전으로 비화하면서 해상전투가 벌어져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김영삼 정부의 국방장관이 1996년에 언급한 “북방한계선은 우리 선박의 월북을 막기 위한 경계선”이라는 입장을 넘어 북한 선박이 넘어오지 못하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실증한 셈이다.


힘과 피로 지킨 경계선, 정치가 흔들지 말라

 

북방한계선은 영해선이나 확정된 해상경계선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임의적인 경계선도 아니다. 남북합의로 해상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잠정적이나마 상대방 수역에 대한 불가침을 약속하고 우리가 실효적으로 이를 지키고 있는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인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법이나 합의가 아니라 우리의 힘과 피로 북방한계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사실 정전체제 역시 정전협정이 지켜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력에 바탕을 둔 군사력으로 지켜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에는 중무장 전투병력이 전진배치되어 있고, 공동경비구역은 공동으로 경비되지 않은 지 오래다. 중립국감독위원회는 반쪽만 남아 있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오랫동안 열리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전협정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북한은 하루속히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는 앞으로도 계속 힘으로 지킬 수밖에 없다.

 

북방한계선을 두고 정치권에서 북한에 양보를 했느니 아니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힘과 피로 지켜온 경계선인데 이런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자괴감을 갖게 한다. 양보해서도 안 되고 양보할 수도 없는 국가의 선이고 국민의 선이다. 이 북방한계선은 북한이 흔든다고 흔들려질 선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할 각오와 응징력을 갖추고 있다. 현금의 정치권 논쟁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북한으로 하여금 분쟁의 공간을 키워주고 국제사회에 우려를 심어주는 백해무익한 논쟁이다.

 

문제의 핵심은 북방한계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서해 해상에서의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힘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있을 뿐이고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지금은 어떻게 평화를 만드는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모을 때이지 북방한계선 논쟁에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대선 주자들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한 대로 남북합의 때까지는 북한이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으로 북방한계선을 존중케 하는 한편, 이를 협의․확정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평화체제 구축 과정을 진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60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