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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배우 신민아, 새터민 체육대회엔 왜 왔을까

추석 명절이 일주일 지난 어제 7일, 양강중학교 운동장에서 고향에 가지 못한 새터민들을 위한 합동차례와 신나는 체육대회, 노래자랑이 열렸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새터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사단법인 좋은벗들에서 주최한 '통일체육축전'이다. 고향에 가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추석을 가장 쓸쓸하게 보낸 새터민들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근심 걱정 다 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이 행사는 좋은벗들 자원봉사자 200여명이 함께 준비하였다. 새터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700여명이 이 행사를 위해 상경했다.

 

 

먼저 행사를 주관한 좋은벗들 이사장인 법륜스님이 새터민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추석이 되면 부모님들이나 고향 산천이 얼마나 그립습니까? 가슴 아픈 것 따지면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맨날 울고 있을 순 없잖습니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우리는 살아 있는 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첫째, 어떻든 행복하게 웃으며 살자. 둘째, 내가 떠나온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로 악감정도 있겠지만 북에서 온 우리가 북을 자꾸 욕하면 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이런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북쪽 고향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여기서 정착해서 잘 사는 것도 좋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우리가 키우자. 그럴려면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 악감정으로 싸우면 평화도 안 오고 통일도 안 와요. 지난 감정을 좀 묻어두고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으로 신속하게 통일을 해서 우리가 가진 재능들을 고향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쓰도록 하자. 그래서 어렵게 사는 북녘 친구들에게 내가 희망이 되어주자. 그런 다짐을 여러분들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남한 사람들과 하등 다름없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훌륭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법륜스님의 인사말이 가슴 깊이 다가왔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새터민들도 보였다. 새터민 정착지원을 오랜 기간 해온 법륜스님과의 각별한 인연도 있었을 터이다. 2년 전 탈북했다는 새터민 김영순씨(가명. 62세)는 법륜스님의 말을 듣고 "정말 맞는 말씀이다. 스님은 늘 우리들에 대해 애정이 있으시다" 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축사에서 고경빈 전 하나원 원장은 "모든 걸 걸고 약속을 드릴 수 있습니다. 어제 하루 주무셨으니까 통일은 분명 하루 앞당겨졌습니다. 작년에 행사 하고 또 올해 행사하니까 통일은 분명 1년이 당겨졌습니다." 라며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북한연구로 널리 알려진 김영수 교수(서강대 부총장)도 축사를 통해 "통일체육축전이 내년에는 여러분들 고향에서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열한번째 열두번째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통일은 마음에 통일과 사람의 통일이 가장 중요합니다."라며 오늘 이 자리는 남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을 먼저 준비해보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가장 큰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배우 신민아씨의 깜짝 등장이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신민아씨는 3년 전부터 새터민 자녀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인 '사이숲' 교실을 남몰래 전폭적으로 지원해 오고 있었다. 올해부터는 '방문 사이숲'이라 해서 한부모 가정(미혼모)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돌봄 자원봉사도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 이 행사도 신민아씨의 후원이 컸다.

 

 

신민아씨가 새터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난 3년 동안 좋은벗들과 새터민 자녀들을 위해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데요. 오늘에서야 인사를 드리게 된 분들도 있네요.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좋은 하루 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신민아씨가 인사하자 무대 앞은 인산인해가 되었다. 새터민들에 둘러쌓여 운동장을 거닐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러다보니 정작 사이숲 교실(새터민 자녀 방과후 학교) 학생들과는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이숲 교실에는 꼭 다시 찾아오겠다" 며 약속을 해주기도 했다. 법륜스님의 새터민들에 대한 푸근한 애정, 그리고 신민아씨의 따뜻한 마음씨가 함께 만나 오늘 이 자리의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 배우 신민아씨가 법륜스님과 함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신민아씨의 손을 잡은 법륜스님, 넘 부럽습니다.

 

이어서 추석맞이 합동차례가 열렸다. 한배 한배 절을 하며 고향에 있는 조상님들께 잔을 올리고 그리운 가족들도 떠올려 본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라는 이명주씨(가명. 65세)는 잔을 올리고 나서 눈물을 글썽였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 생각이 났다" 고 했다. 그리고 "명절 때 차례를 못 지냈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너무 고맙다" 며 봉사자의 손을 꼭 잡았다.

 

 

▲ 비록 고향에 가지 못했지만, 합동차례라도 지낼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새터민들.

 

잠시 엄숙한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곧 신나는 음악과 함께 즐거운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통일팀과 평화팀 두 팀으로 나뉘어진 새터민들은 남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와 도움을 받으며 다양한 운동 게임을 즐겼다. 풍선 불어서 큰 기둥 만들기, 풍선기둥 들고 릴레이 이어달리기, 오리발 신고 줄넘기, 병끼고 달리기, 벽돌 격파, 제기차기, 팔씨름, 림보, 줄다리기, 여러 가지 경기들이 흥을 돋구었다. 새터민들의 얼굴에는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 북한에서 어릴 때 많이 하고 놀았다는 병끼고 달리기 모습.

 

새터민들이 가장 좋아했던 경기는 병끼고 달리기였다. 이유인 즉, 북한에서 어릴 때 가장 많이 해봤던 게임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다를 실력이 월등했다.

 

 

▲ 풍선을 가득 채워 '평화통일코리아' 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둥을 세우고 기뻐하는 새터민들. 

 

신나게 운동경기에 빠져 있는 새터민 몇 분에게 "지금 어떠세요?" 물었다. 이금희씨(가명. 42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남한에서 직장 다니면서 스트레스 많았는데, 스트레스 다 풀리는 것 같아요. 게다가 고향 사람 만나서 이렇게 다같이 응원하는 것도 얼마나 기분 좋아요? 여기서는 남한사람 북한사람 차별이 없잖아요? 그래서 좋았어요.

 그런데 너무 좋으니까 다른 한쪽이 자꾸 생각나요. 북에 있는 부모, 동생, 언니들이요. 혼자만 남한으로 넘어왔거든요. 추석 때도 혼자서 집에서만 보냈어요. 명절 때 갈 때가 없잖아요. 고향 가족들과 이렇게 체육대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금희씨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자꾸 나는 듯 가슴을 어루만졌다. 지금 너무 기분 좋지만 그래서 더욱더 가족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남한에는 북한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이런 행사를 마련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했다. 또 준비된 모든 경기에 다 참여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통일체육축전이 묘미는 운동 경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새터민 김용희씨(가명. 38세)는 "고향 분을 많이 만나서 너무 좋다" 고 했다. 순간 의아했다. "북한 땅이 얼마나 넓은데 같은 동네 사람을 여기서 어떻게 만날 수 있냐?" 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설명해 준다.

 

"제가 살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이예요. 아오지 탄광 있는 곳 아시죠? 이곳은 국경과 가깝기도 하고 바깥 정보도 많이 들어오고 해서 다른 지역에 비해 탈북자가 정말 많습니다. 이런 행사장에 오면 동네 사람들 정말 많이 만납니다. 오늘만 한 동네에서 살던 언니 2명을 한국와 서 처음으로 만났어요."

 

고향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새터민들에겐 큰 반가움이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남한 사회에 살면서 힘들었던 점도 마구 쏟아내기도 했다. 새터민 김용희씨(가명. 28세)는 본인이 가슴에 쌓아두고 있는 이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때가 없었다고 한다.

 

"취직이 가장 어려워요. 새터민들이라고 우습게 보는 것 같아 가장 힘들었어요. 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6번이나 떨어졌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고 분노가 솟구치기도 여러 번이었죠. 나는 멀쩡한 사람인데 왜 나를 경계하는가 말이죠.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편하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남한 사람들에 대한 당부다. 어린이 코너로 발길을 돌려보았다. 그곳엔 부모가 북쪽 출신이든 남쪽 출신이든 전혀 게의치 않고 서로 뛰어다니며 어울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본받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 남북한 아이들이 함께 신나게 달렸다.

 

아이들의 100미터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남북한 아이들이 신나게 달린다. 하늘 위 만국기가 통일도 이렇게 빨리 달려오라며 응원의 박수를 쳐주는 듯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식사 시간이 되고 여기저기서 맛있는 음식들 냄새가 풍긴다. 고향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새터민들은 하염없이 서로를 부등켜 앉기도 하고 반가움에 손을 꼭 붙잡은 채 쉴새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후에는 노래자랑이 열렸다. 북한은 예능이 발달된 나라다. 어릴 때부터 엄한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 실력들이 장난이 아니다.

 

 

▲ 노래 실력을 뽐내는 새터민들.

 

"♬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이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 우리 민족 우리네 땅 평양만 왜 못가... ♬ 얼씨구."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가 연이어 울려퍼진다. 새터민들의 마음 속 한이 노래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노래가사처럼 왜 평양만 못 가나. 남한 주민들과 북한 주민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것은 무엇일까? 노래를 들으며 계속 그 생각을 했다.

 

흥겨운 노래자락도 끝이 나고 선물도 다 나눠드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들 아쉽다며 악수에 악수를 거듭 한다. 선물을 한 보따리 받아들고 정문을 나서는 새터민 이금순씨(가명. 58세)에게 오늘의 소감을 물어봤다. 곧바로 눈물을 글썽이며 답한다.

 

"오늘 즐거웠어요. 스트레스 받은 것 확 풀었어요. 더군다나 2년 반 만에 하나원(탈북자 남한정착교육기관)에서 같이 만났던 언니들을 다 같이 만났어요.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 정착을 더 잘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면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내년에 또 오고 싶어요."

 

이금순씨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며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또 다른 새터민 어머님은 "추석 때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잠 못 이루었다"고 하셨다. 언제쯤 이 어머님의 가슴 저 밑에 쌓인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내 가슴도 그냥 아려왔다. 이렇게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놀이도 해보고 고향 친구들도 만나 마음껏 놀 수 있었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종일 행사 준비하느라 고생한 남한 쪽 자원봉사자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새터민들을 만나며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다는 이숙영씨(좋은벗들 자원봉사. 47세)다.

 

"새터민들이 다들 크게 만족하시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해요. 새벽부터 준비했고 정말 정성을 기울였거든요. 행사를 준비하며 새터민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이가 어린데 남편은 없고 엄마가 혼자서 돈을 벌어 사는 집이 있었어요. 추석 때 뵈었을 때 정말 우울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오늘 행사에 와서는 많이 웃기도 하고 한층 밝아져 있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그냥 눈물이 났어요."

 

이숙영씨처럼 이렇게 자원봉사로 참여한 남한 사람들은 200여명이다. 남한 주민들과 북한 주민들은 이렇게 작은 통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새터민들도 남한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새터민 김정숙씨(가명. 45세)는 자워봉사에 대한 생각을 적극 내비쳤다.

 

"나도 여유가 생긴다면 여러분들처럼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를 꼭 해보고 싶어요."

 

통일의 핵심은 마음의 통일이다. 이렇게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며 만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찐한 감동이 느껴진다. 정치적으로는 아직 미완의 통일이지만, 오늘 통일체육축전에서는 남북한 동포 간에 작은 마음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 삶 속의 통일을 일구어가는 이 분들의 모습을 보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