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웬일로 북측이 우리 쪽에 수해지원을 해달라고 손을 내미나 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작년에 이어 이번 대북 수해지원도 이루어지지 못해, 현 정부에서의 남북관계는 수해지원조차 못하는 관계로 끝나게 되고 말 것 같다. 남북 쌍방이 모두 동북아 질서의 재편기에 우리 민족이 어떻게 활로를 찾고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

 

수해지원조차 못하는 남북관계

 

지난 7, 8월에 발생한 장맛비로 북한에서는 사망 223명, 실종·부상자 594명 등 81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약 12만 정보의 농경지 피해를 입었으며, 살림집 파괴·침수가 5만 6,000여 가구, 건물 파괴·침수 피해가 2,400여 채, 이재민이 약 23만 명 발생했다고 북한매체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밝혔다.

 

유엔기구들의 조사활동으로 북한의 피해상황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국제구호기구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잇달았다. 국내외 여론의 압력을 느낀 우리 정부도 수해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9월 3일 북측에 수해지원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에 북측이 일주일 만에 수용의사를 밝혀오면서 추석 즈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기대마저 부풀었다.

 

△ 폭우로 북한 강원도의 한 지역이 집 처마 밑까지 잠길 정도로 피해를 입은 모습.(조선중앙통신 AP연합. 2007년)

 

그러나 남북 양측에서는 수해지원 물품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북측은 북한적십자사를 통해 수해로 무너진 교량과 가옥의 재건을 위해 시멘트나 건설장비, 그리고 쌀을 요청하면서 “지난해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작년에 우리 정부가 50억 원 상당의 초코파이 192만 개, 영양과자 30만 개, 라면 160만 개를 보내겠다고 제의했다가 북한의 거부로 무산된 사례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밀가루 1만 톤과 라면 300만 개, 의약품·기타 물품 등을 보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고려해 초코파이, 영양과자는 제외했지만 올해에도 북측이 요구한 시멘트, 복구장비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국 북측이 이를 거부하여 올해 수해지원도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산가족 상봉의 꿈도 함께 무산된 것은 물론이다.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인도적지원, 북한에 분배 투명성 요구 더 어려워져

 

이토록 우리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마저 인색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북측의 요구에는 ‘5.24조치’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천안함 문제에 대해 사과 표명을 하지 않은 채 수해를 구실로 시멘트, 건설장비와 같이 ‘5.24조치’를 넘는 요구를 넣어 이 조치를 약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옹색하면서도 원칙이 없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2010년에 ‘5.24조치’ 이후였는데도 불구하고 수해지원 물품으로 시멘트 1만 톤의 제공을 약속(실제는 3천 톤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작년과 올해에는 굳이 이를 제외시킨 것이다.

 

미 국무부조차 정치적 고려는 배제하고 지원대상국의 수요와 분배투명성의 원칙 등을 감안해 인도적 지원을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 정부에 들어와 우리의 대북지원이 북한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입장 때문에 북한에게 분배 투명성의 확보 등 인도적 원칙을 강제하기가 어려워진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당국과 북한주민의 분리’라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마저 실종되어 버렸다.


북한, 남방정책에서 북방정책으로 전환

 

문제는 북한주민의 고통과 남한의 전략부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수해지원조차 못하는 한심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경제협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북한은 기존의 남방정책을 포기하고 북방정책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중 교역액은 2010년에 34억 6천만 달러에서 2011년에는 62.5%나 늘어난 56억 3천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교역액에는 국경에서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밀무역을 제외한 것이어서 실제의 교역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은 개성공단이 정상 가동되고 생산액도 늘었기 때문에 여전히 2위를 기록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남북 교역액은 17억 1천만 달러로서 2010년에 비해 10%나 감소하였다. 2010년의 통계에는 ‘5.24조치’가 발표되기 이전의 교역액이 포함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감소폭은 그보다 더 큰 셈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때만 해도 북한의 대외교역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중국 교역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면서 북한은 한·미·일에 기대했던 남방정책을 포기하고 중국, 러시아에 기대어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북한판 북방정책에 따라 이제는 북·중 교역을 넘어 경제특구의 공동개발이라는 초국경 경제협력의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2010년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압록강과 두만강 부근에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경제특구를 만들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 뒤, 양측은 북·중 경제협력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 장성택, 천더밍)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8월 장성택의 방중 때 라진·선봉과 황금평·위화도에 각각 관리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남북관계 단절, 중국에 의존해 가는 북한! 이것은 평화통일에 큰 장애

 

최근에는 중국 측이 라진항 6개 부두 가운데 4개의 50년 장기사용권을 갖고, 청진항도 3개 부

두 중 1개를 차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당초 라진항은 남·북·러를 중심으로 하고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 물류 협력의 중심항으로서 우리 측에서 전략적으로 개발하고자 계획한 곳이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 협력 사업은 모두 중단되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중국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라진항의 성격도 변했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이제 라진항뿐만 아니라 청진항도 동북진흥계획의 큰 틀 속에서 중국의 주도 하에 동북3성의 관문항으로 개발되고 있다. 중국 길림성은 ‘창지투(長吉圖) 개발계획’에 따라 훈춘시에 국제물류단지를 대규모로 개발하고 있다. 지난 9월 10일에는 포스코, 현대그룹 등 한국기업들이 훈춘에 국제물류단지를 조성하기로 했고, 훈춘과 라진 간에 새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제 중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참여하는 형태로 동북아 개발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판 북방정책은 한국이 배제된 채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 측이 참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제회생을 위해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해 가는 북한을 말릴 재간도 없다. 이처럼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평화통일에의 길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강대국 간 대립과 담합을 막는 길, 남북협력이 해법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각변동의 원인 중 하나는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일본의 상대적인 쇠퇴에 따른 동아시아 세력관계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역내 교역비율이 55%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지각변동의 중심에 모두 중국이 위치해 있다. 이것은 향후 동아시아 질서가 중국의 향배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중국과 관련된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도 새로운 동아시아 해양질서를 구축하려는 중국의 의도와 관련이 있다. 최근 중·일 간 갈등도 그동안 일본 경제력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제했던 중국이 일본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과거사나 해상영토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에 크게 확대된 것이다. 전후 일본이 미국에만 의존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중·일 충돌에서 주변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상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 2010년 직후 천안함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외교적·군사적 영향력을 확인한 바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북한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경제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 한국의 대중 교역액(홍콩 제외)은 2,206억 달러로서 미국과 일본의 교역액을 합한 2,088억 달러보다 많다. 2003년 한·중 교역액이 한·미 교역액을 추월한 이래, 한국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대중 교역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중 교역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무역수지 면에서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2011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는 308억 달러로서, 만일 대중 무역흑자 478억 달러가 없었다면 대일 무역적자 286억 달러를 상쇄하기 어려웠을 정도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만 플러스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경제가 좋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한국경제도 곧바로 침체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중국경제가 기침만 해도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우리의 올바른 외교전략 선택이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주변강대국 간의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어도 문제고, 그렇다고 주변강대국끼리 한반도문제를 놓고 담합해도 문제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문제가 갈등의 중심에 서서 강대국 간의 대립이나 담합의 빌미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의 안정화로 민족자결권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질서 재편과정에서 민족적 이익을 넓히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지름길이다.

 

남북관계의 회복과 안정화는 당면한 대중국 의존도를 완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처해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고 지경학적 가치를 높일 수 있게 해 준다. 일찍부터 러시아는 중국의 극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러 가스전 및 철도 연결사업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한 공히 과도한 중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이를 적극 활용하여 동북아 개발협력의 중심을 한반도로 끌어들여야 한다.

 

민족의 활로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안정화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간의 신뢰회복이 중요하며, 그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의 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민족공동체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될 수 있다. 이번 대북 수재지원을 둘러싸고 보여준 우리 정부의 태도가 더욱 아쉬웠던 것은 바로 격동하는 동아시아 질서 재편기에 우리의 전략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58호에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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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pe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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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ㄱㄱㄱ 2012.09.27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불가

    포탄떨어뜨리는놈들인데 뭐하러 도와줌?

    현실적으로 생각하죠 이건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