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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대선 세 후보들의 통일정책 비교해 보니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각 후보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 만한 각종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른 분야의 공약들에서는 서로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대북·통일 정책 공약들은 서로 엇비슷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얼마 전 모 중앙일간지는 세 후보 대북·통일정책 공약의 60%가량이 기조가 같거나 비슷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대선 후보들의 중도 수렴적 통일정책

 

현재 유력한 세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달리,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교류·협력을 확대한다는 중도 수렴적인 특징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 특히 통일정책과 남북정상회담, 북한 핵문제, 서해북방한계선(NLL), 개성공단, 북한인권 문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세 후보의 정책 방향이 매우 유사하다.

 

 

통일정책에서도 표현은 다르지만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후보는 평화정착을 이룬 뒤 경제공동체 건설, 정치통합으로 나아가는 3단계 통일론을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는 남북경제연합과 평화협정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가는 한반도 평화구상을 내놨다. 안철수 후보도 분야별 협의체 복원과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문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문 후보는 인수위 때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취임 첫 해의 6·15에 맞춰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내걸었다. 안 후보는 남북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고, 박 후보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북한지도자와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선 세 후보 모두 ‘불용’, ‘불인정’, ‘폐기’의 입장을 밝히면서 6자회담과 양자회담의 병행을 지지했다. 안 후보는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내놓았다. 박 후보는 억지와 다각적인 협상을 통한 북핵 해법을, 문 후보는 9·19공동성명에 따른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북핵 해법을 제시했다.

 

최근 여야당이 논란을 벌인 NLL 문제에 대해서도 세 후보는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박 후보는 “NLL을 반드시 지킨다”는 전제 위에서 조건부로 공동어로수역의 설치를 지지했다. 문 후보는 “NLL을 지키면서 공동어로수역을 추진한다”, 안 후보는 “NLL을 확고히 지키면서 서해 평화정착을 실현한다”고 밝혔다.

 

교류·협력과 관련하여, 문 후보는 조건 없는 금강산관광의 재개, 개성공단의 활성화와 제2의 개성공단 조성을 공약했다. 안 후보는 대화를 통한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남북경협과 접경지역개발의 연계, 북방경제의 개척을 강조하고 있다. 박 후보는 북측의 사과를 전제로 한 금강산관광 재개, 호혜적 경제협력과 지하자원의 공동개발,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인권과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세 후보의 입장이 엇비슷하다. 안 후보는 남북인권대화와 더불어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을 내걸고 있다. 박 후보는 북한인권법 제정과 함께 북한주민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후보도 북한인권 문제의 공론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과 세 후보의 유연한 대북정책

 

이처럼 세 후보의 통일·대북정책이 서로 비슷하게 된 것은 보수·진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인상을 줄 경우 중도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고려에 따른 측면도 있다. 어느 후보가 국민들의 관심을 끌 만한 공약을 내놓으면 다른 후보들도 뒤따라 유사한 공약을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책내용이 유사하더라도 단서를 붙여 실천하기 어려운 공약들도 눈에 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공약(公約)이 나중에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선 공약의 이면에 있는 세 후보들의 실천의지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제시된 정책들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시기’, ‘조건’, ‘방법’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세 후보가 모두 남북한이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해 온 합의사항들을 존중하면서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큰 방향에서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선결조건을 내세워 대화와 교류를 연계하고 대북 강경압박정책으로 일관해온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세 후보 모두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사실 동북아 역학관계의 변화와 국가발전의 비전, 그리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동력 확보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세 후보의 정책은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누가 차기 정부를 이끌더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과정의 순로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와 같이 한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구상이 재집권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견인할 경우 앞으로 4~5년간 유연한 대북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보수유권자들을 의식해 대북 강경발언을 이어갔지만 대북 원칙론자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교체를 앞두고 있는 등 대북정책 기조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당초 오바마 1기 행정부는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적극적인 대북 관여정책을 취할 것으로 기대됐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북·미 직접대화와 자신의 방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내걸었었다. 하지만 북한이 2008년 4월 5일 장거리우주로켓을 발사하고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한·미 간 대북정책 조율과정에서 한국정부의 ‘그랜드바겐’ 구상이 받아들여지면서 오바마 1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적극적인 관여보다 ‘전략적 인내’의 기조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결과, 오바마 대통령의 4년 재임 기간 동안 6자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경수로 건설과 우라늄농축시설 가동이 진행되는 등 북핵 상황이 악화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무색해졌다. 이처럼 ‘전략적 인내’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차기 한국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적극적으로 미국 측을 설득한다면 재집권으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한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대북 관여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MB정부, 임기 중에 ‘5·24조치’ 해제로 남북관계의 걸림돌 없애줘야

 

현 정부는 말로는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을 분리하여 대응하고 호혜적인 남북경협을 추진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5·24조치’로 인해 북한주민의 고통만 가중되었고 남측기업의 손실이 더 컸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는 ‘5·24조치’의 해제를 주장해 왔다. 그런데 11월 1일 북한정책포럼이 주최한 조찬간담회에서 박근혜 캠프를 대변해 나온 유력 의원이 “현 정부가 물러나기 전에 ‘5·24조치’를 해제해 차기 정부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이렇듯 야권 후보들뿐 아니라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도 ‘5·24조치’의 해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만큼 이명박 정부가 임기 종료 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재개 등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 ‘5·24조치’를 선언적으로 해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민간인에 대한 방북허가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남북교류를 터 나갈 수도 있다.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오는 12월 19일 직후 차기 정부를 위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무렵이 ‘5·24조치’를 해제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본다. 그렇게 하면 이명박 정부는 나름대로 원칙을 지켰다는 최소한의 체면을 차릴 수 있고, 차기 정부는 그만큼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차기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차기 정부는 급변하는 동아시아정세에 대응하기에도 할 일이 많다. 만약 현 정부의 임기 중에 이 조치가 해제되지 못하고 남북대화가 재개되지 못할 경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극심한 정치공방 속에서 남북관계의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다면 현 정부는 그에 맞는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부디 마지막 책무만큼은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61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