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캠프는 지겨울 정도로 민주당에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왜그러나 싶을 정도다. 대체 뭘 요구하는지도 아리송하고 모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앞뒤 맥락을 살펴볼 때 안철수 본인이 직접 이름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이 둘을 겨냥해서 민주당 쇄신 요구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해찬과 박지원은 민주당의 쌍두마차다. 왜일까?
두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이해찬의 경력이다. 1952년생, (만 60세) 충남 청양 출신. 1970년대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출판인, 언론인, 국회의원, 교육부 장관, 특위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총리, 청와대 정무특보, 당대표 등등. 야권 정치인으로서 거치지 않은 자리가 없을 정도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투옥 경력도 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며, 막후에서 민주당의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교육부 장관 시절 이른바 ‘이해찬 세대’를 탄생시켜 욕을 겁나 먹었던 적이 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 표어로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교사사회에 경쟁 요소를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교육부장관 이해찬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그를 정계 은퇴수준까지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나지 않고 남았다. 이유는?
이해찬이라는 인물은 민주당에서 전략적으로 절대 버릴 수 없는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쥐락펴락하는 강호 최강의 고수가 이해찬이다. 공대 출신임에도 교육부 장관에 임명돼 엄청난 개혁안들을 추진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정치적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장관 말 안 듣기로 소문난 교육부 관료들의 보수성은 유명하다.
현재 민주당 혹은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 ‘안철수 불쏘시개론’과 같은 구도와 전략은 사실상 이해찬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회한 정객으로 민주당의 실질적인 1인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위나 역할, 권위 면에서 어느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로, 괴팍한 성격도 관계자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일명 ‘버럭해찬’이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왕 뒤에서 군림하는 상왕정치란 표현까지 쓰는 사람도 있다.
다음은 박지원의 경력이다. 1942년생, (만70세)전남 진도 출신.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망명 중이던 김대중을 만나 정치적으로 따르게 됐다. 1992년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당대변인,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부 장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대북 불법송금 등 혐의로 3년형 선고 받고 2007년 말 복권돼 이듬해 총선에 목포에서 무소속 출마, 당선되는 저력을 발휘한다. 민주당으로 복당하여 1년 만에 정책위원회 의장, 그 이듬해인 2010년에 원내대표로 당선되며 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사업가 출신으로 조직력이 탁월하고 무엇보다 민주당의 기반인 호남을 사실상 휘어잡고 있는 인물로, 민주당의 심장부인 호남의 표심이 경선의 향배를 가른다고 할 경우 밑에서부터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지휘자라고 볼 수 있다. '호남의 황제'라고 부를 수 있겠다.
▲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가 각각 지역구인 충남과 호남에서 표밭다지기를 하며 퇴진론의 칼날을 피해갔다. ⓒ데일리안
안철수가 기대하는 '쇄신요구'의 효과
안철수가 단일화를 깨 가면서까지 민주당에 쇄신요구를 하면서 여론이 피로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연작전'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안철수의 민주당 쇄신 요구는 오히려 민주당 내에서 이에 대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전북 지역의 민주당 출신 전-현직 지방의원 지방단체장 230여명이 연서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게 지난 14일이었고, 15일에는 원로급 전직 국회의원들이 민주당 내에서 안철수 지지의사 표명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정치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민주당이 이해찬과 박지원 쌍두마차에 의해 조직되고 기획되는 체제임을 안다는 얘기다. 문제의식이 있지만 워낙 강고한 구조가 쉽게 안 바뀌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안철수에 의해서 흔들리는 낌새를 포착하고 내홍을 격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해찬과 박지원, 이 두 거물급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계파정치의 구태로 비난받고 참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국회를 장악하는 건 정치의 절반을 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정당의 조직 구조를 거칠게 살펴보면 이렇다. 국회의원 또는 국회의원 후보 출신 지구당위원장이 지방의원 지자체장 후보 공천권도 갖고 있다. 지자체 선거에 나가려는 지역 인사들은 국회의원한테 잘 보여야 되고, 조직 동원해 줘야 되고, 당에 헌금도 내야 한다. 국회의원은 다시 중앙당의 핵심 인사들에게 잘 보여야 되고, 대통령 또는 전직 대통령을 정점으로 해서 위계구조가 짜이게 된다.
새누리당은 영남 기반으로, 민주당은 호남 기반으로 이런 식의 ‘봉건질서’가 구축돼 있는 것이다. 외국이라고 다를 건 없지만 우리나라는 정당 가입은 물론 정치에 대한 혐오가 심해서 사실상 ‘민의’가 공천을 비롯한 당내 민주주의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당원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고 당내 인사들(국회의원, 중앙당 핵심인사들)이 공천심사는 물론 당직자들 인사도 좌우한다. 이게 당헌과 당규에 의해 절차상으로는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당가입률이 엄청 낮아 정당에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왜곡된 정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걸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구조를 깨려면?
이걸 깨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비례대표(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확대해서 민의가 정당지지율에 직접 반영되는 식으로 정치구조가 바뀌는 게 있어야 된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진짜로 해결해줬으면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지역 계층 세대 안 가리고 달려가게 만든다. 1:1 싸움에서 상대방이 50%, 내가 30% 지지율 얻어도 그게 사표가 아니라 효과를 가지게 되니까. 지역구조 깨지고 자연스레 영남당 호남당 충남당 이런 게 약해지는 것이다.
둘째, 당장의 기득권 구조를 깨기 위해선 인석쇄신이 있어야 한다. 이건 위에 첫 번째를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민주당에서 이런 법안을 자진해서 발의할 가능성이 낮고 새누리당이랑도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에 의석 부족 이유를 대다가 흐지부지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 거대 양당구조가 존속되는 이유는 이게 20년째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지지부진하다 분열이다 부정이다 작살나고, 캐스팅 보트 가질 수 있는 제3당이나 녹색당 같은 가치 정당이 대안 정당으로 발울 못 붙이는 건 결국 지금의 정치제도 때문이다. 거대한 두 개의 정당이 사실상 파이 나눠먹기 게임하듯 권력을 갈라먹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치세력이 상호 견제할 수 있어야 국민들이 호구로 전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안철수 현상은 정치혁신에 대한 열망이 국민들의 지지율로 나타나는, 자주 오지 않는 기회다. 혹자는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에 비하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는 건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찬과 박지원을 '잡아야' 하는 이유
이해찬 박지원은 민주당 권력구조의 핵심인물이다. 뛰어난 정치인들이고 이 사람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고 민의가 왜곡되는 구조가 문제라는 거다. 구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차적으로 이런 견고한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구조를 공격하고 흔드는 과정에서 민주당 내에선 동의하는 의견들이 분출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이걸 알고 계속 때리는 것이다. 국민들은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걸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왜? 이해 당사자인 민주당이 직접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라는 인물에 주목하기보다 안철수가 표명하고 실천하는 시대적 역할에 주목하면 안철수의 주장에는 그 당위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 전라북도 전현직 시장군수도의원 및 시군의원 230명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정치의 미래 안철수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지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뉴스1)
만약 민주당이 쇄신되면 단일화에 가속도 붙고,
단일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새누리당에게도 큰 파장.
안철수로 단일화 될 경우 이것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판이 짜이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쇄신돼서 단일후보가 대통령 되면, 민주당 쇄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누리당도 사실상 박살이 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의 쇄신을 단일화의 조건으로 걸고 있지만 사실은 이 매듭을 풀어내면 우리나라 정치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때만 되면 나타나서 떡볶이 먹고 사라지는 이상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한진중공업에, 쌍용자동차에, 학교폭력 현장에, 청년취업문제에, 4대강 사업 반대에 매달리는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정치는 원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권력이해관계를 놓고 싸우는 것처럼 되어버린 정치판을 이제는 국민이 필요한 곳에, 주민들이 겪는 문제에,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실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더욱 힘쓰게 만들고, 그 이해관계를 조정해나가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정치쇄신이 중요한 건 단지 승리하기 위해서, 후보를 물리적으로 합쳐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내 삶이, 우리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우리나라가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학적인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정치쇄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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