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동국대학교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나섰다. 정문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길, 학생들끼리 소곤소곤 거리는 얘기들이 귀에 들려왔다. “야, 오늘 김제동 온대!”, “정말?”, “몇 시에 오는데?”, “대박!”, “가보자!”... 동국대학교는 기대감으로 술렁였다. 김제동은 전국 40개 대학을 순회하며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를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김제동의 재능 기부와 평화재단(이사장 법륜스님)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덕분에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동국대학교 본관 중강당이 빈자리 없이 빼곡이 메워졌다. 수업시간과 겹치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800여명이 자리했다. 일찍 자리를 메운 여학생들 중에는 제동 오빠에 대한 열성팬들도 많이 있었다. 장가 안 간 39살 남자 연예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일까. 이들의 제동오빠 사랑은 대단했다. 김제동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 앞에서 볼에 키스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드디어 김제동이 등장하자 열렬한 환호와 함성이 터졌다.
“사진을 계속 찍으시네요. 제 사진은 찍어서 집 앞에 걸어두면 도둑이 안 들어요. 하하하.
다트 놀이를 해도 되요. 눈에 맞추면 20만점. 정말 맞추기 어려우니까. 하하하.”
첫마디부터 청중을 웃음바다로 빠트렸다. 그는 사람을 웃겨서 죽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임을 강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강연 주제는 여러분이 정하세요. 어떤 이야기로 대화를 나눌까요?”
강연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찾아가는 대학마다 이렇게 묻고 그 학교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청중석에서 여러 가지 대답이 터져나왔다.
- 부조리에 대해서요.
“밖에 가을 하늘이 이렇게 청명한데 부조리요?”
- 연애에 대해서요.
“저한테 연애를요? 하하하.”
- 희망의 정치에 대해서요.
“여러분들이 자꾸 그러시니까 제가 정치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거예요. 얼마 전에 SBS 힐링캠프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저한테 누가 이런 글을 적어 놓았더라구요. “돈을 받았으면 말을 해라. 이 개XX야.” 하하하.”
-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죠?
“여기 불교학교지요? 하하하.”
학생들은 김제동에게 듣고 싶은 많은 주제들을 쏟아내었고, 이에 맞게 하나하나 응답하며 때론 재치있게 때론 감동있게 토크가 진행되어 나갔다. 많은 보수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김제동은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이런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때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필요한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강연의 대부분은 청춘들의 고민 상담이였다. 그야말로 힐링 토크콘서트라고 부를 수 있겠다.
“웃기는 것을 웃기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됩니다. 등록금 비싸니까 좀 내리자.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가리지 말고 애들 밥 좀 주자. 이랬더니 종북 좌파라고 그래요. 허... 참. 40개 대학 강연한다고 하니 학생들 선동한다 그래요. 허..참. 여러분들이 과연 저한테 선동이 돼요?”
정치 선동이라는 근거 없는 비판을 의식한 듯 강한 썰을 풀기도 했다. 학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김제동을 응원했다.
“연애요?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 고백하세요. 우리는 누구나 고백할 자유가 있어요. 그렇듯이 상대방도 내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면 가볍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연애 문제에 대해 답하면서는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너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정곡을 찔렀다. 막 사람들을 웃기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웃음 속에 잔잔한 교훈을 들려준다. 탁월했다. 힐링이 되었다. 이렇게 힐링이 되자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자기 고민들을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 질문 : 김제동씨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 위트를 얻으려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작게 보세요. 작은 눈으로. 하하하(웃음). 저는 지나가다 차창 밖을 보면 솔직하게 여자만 눈에 들어와요. 하하하.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제가 만약 결혼하면 내 아들은 등록금 60만원만 내고 살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 통일조국을 만들어서 내 아들은 군대 안가도록 여러분들이 좀 만들어주세요. 내 아들은 서울에서 평양 거쳐서 유럽으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 세상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것이 제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하지만 제 딸은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모든 걸 걸고 지켜줄 거예요. 왠지 내 딸에게는 미안할 것 같으니까요. 하하하(웃음).”
분단된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이렇게 무료로 콘서트를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한 보답을 통일한국 만들기로 화답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세상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온갖 비난 속에서도 더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을 강조했다.
“사람을 웃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을 웃기고 싶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을 좋아하세요. 세상의 그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을 웃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웃고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사람을 웃기는 방법은 사람을 좋아하는 겁니다. 그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위트 있는 남자가 되고 싶으세요? 김제동이 말하는 것처럼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져보세요. 저절로 위트 있어 집니다.
- 질문 : 평소에 콤플렉스가 많은 편이예요. 김제동씨는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하세요? 저는 여자니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많고, 능력이나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도 많아요. 원하는 과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저는 전문대를 12년 다녔어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그랬어요. “니 의대 다니냐?” 하하하. 제 처지와 비교해보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첫째, 지금 그만두고 다시 원하는 학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해라. 그런데 용기가 없다. 그러면 그냥 다니던 학과를 다녀라. 용기도 못 내면서 학과도 바꾸고 싶고 이걸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욕심이라고 그래요.
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을 제일 싫어해요. 아프면 중년이예요.(청중 웃음).
용기를 내어서 가버리던가. 아니면 현실에 만족하던가. 그렇죠?”
아프면 중년이다. 캬캬캭. 웃음 속에는 항상 교훈이 담겨 있었다. 김제동의 토크가 힐링토크인 이유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저를 보세요. 여러분은 열등감의 결정체를 지금 보고 계십니다. 도대체 잘 생긴 기준이 무엇이냐? 백분 토론 해보자. 코가 몇 센티여야 잘 생긴 것이냐? 눈이 작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은 저 같은 눈이 정상이예요. 우리는 기마 민족이예요. 눈이 큰 인간들은 말 타면 먼지가 눈에 다 들어와요.
나이 들어서 경로당 가보세요. 말 잘하는 것이 장땡입니다.(청중 웃음)”
학생들이 환호를 보냈다. 이 환호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공감이다. 장동건 같이 잘 생긴 연예인이 똑같은 말을 했다면 이렇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제동은 우리와 똑같이 작은 눈, 편안한 얼굴(?)을 가졌다. 많이 힘들지? 그래 연예인인 나도 많이 힘들어.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마음을 가져보니까 조금 행복해지더라. 김제동의 힐링 포인트는 바로 이거다.
“뭐든 나한테도 한 방이 있어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만 어떤 것을 만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을 뿐이지요. 외모완 관계없는 일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동안 자책하고 움크러져 있던 마음이 활짝 펴지는 것 같다. 힐링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다.
- 질문 : 지금 연애하고 있는데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취업을 못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요. 만난지는 3년 되었어요. 결혼을 꼭 하고 싶어요.
“많이 서운하죠. 그죠? 지금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다면 부모님 간섭을 좀 받는 게 맞아요. 그러나 정말 사랑한다면 (남자친구한테) 가세요. 부모님이 반대하면 부모님과 안 볼 생각을 하면 되지요. 그러나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책임은 누가 진다? 내가 진다. 그러면 자유로워집니다. 저는 결과와 관계없이 응원합니다.”
김제동은 우선 박수를 크게 보내주었다. 질문한 여학생은 김제동의 말이 큰 위안이 되었는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주위에서는 결혼을 반대만 하지 자신의 결정이 맞다고 확인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 질문 :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이세요? 저는 연애 문제가 후회돼요. 얼마 전에 헤어졌거든요.
“저는 대학교 때 첫사랑이 있었는데 2년 만에 헤어지고 난 후 맨날 술만 먹었어요. 그 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세월이 약이다? 개 코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그랬어요. 세월이 지금 안 가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해 드릴 말이 “세월이 약이다” 이 말 밖에 없어요. 그 여자 친구도 헤어지고 싶어할 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겠다 이렇게 됩니다.”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찐한 향기가 전해졌다. 내년이면 마흔을 바로보는 남자가 20대 청춘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 표현이었다.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극히 개인적인 고민 상담에서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하지만 김제동은 막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진심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왜 청년들이 김제동을 좋아하는지, 여러 가지 억압을 받고 방송을 그만두게 된 후에도 왜 대중들이 김제동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웃고, 눈물 아른 거리고, 고개 끄덕이다 보니 어느새 2시간 훌쩍 지나갔다. 마지막에 김제동이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담해 말했다.
“몇 일 전에 군부대에 갔는데, 철조망 위에 잠자리 일곱 마리가 앉아 있었어요. 가벼우니까 철조망 따위를 겁내지 않구나. 무거우면 찔릴 텐데. 그렇게 잠자리처럼 가볍게 가볍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친구가 입사시험에 떨어졌으면 ‘힘내라! 다음에 잘 될거다’ 그러면서, 내가 떨이지면 ‘너 같은 인간이 뭘 잘 하겠냐’ 이럽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잘 대해줘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입니다. 스스로에게 가장 잘해주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업에 스펙에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20대 청춘남녀들에게 이 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보다 김제동의 반짝이는 작은 눈이 더 예뻐 보였다.
△ 어깨동무합니다 콘서트를 준비해 준 자원봉사자 한명 한명을 꼭 안아주는 김제동.
강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학생들 몇몇에게 소감을 물었다. 최가연씨(20세. 동국대 북한학과)는 “같이 웃으면서 힐링 받는 느낌이었어요. 보통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강의가 많은데 김제동씨는 못난 부분을 드러내는 솔직한 모습으로 저희들을 힐링해 주는 것 같아요. 뭉클했어요.” 라고 했고, 김경아씨(23세. 동국대 화학전공)는 “정치 얘기 많이 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직접 들어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 푸근했어요. 언론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드는 구나 느꼈어요. 그런 기사 나면 선한 댓글 많이 달아주기로 했어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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