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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대학시절에 연애 한 번은 해야 하는데, 아직...

오랜만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저에게는 항상 큰 위안이 되어 준 법륜스님의 강연이었습니다. 최근 바쁘게 일하느라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는데 도저히 힘들어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 들어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은 특히 젊은 청년들이 많이 와서 ‘연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습니다. 오랜만에 마음껏 웃어보고 마음 편안해지는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문답 중에서 재미도 있었고 큰 깨우침을 얻게 된 내용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사랑에 대해서도 조급함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20대 때에는 사랑와 연애에 대한 감정에 가슴이 콩닥콩닥 요동치기까지 하지요. 대학교 3학년 여학생이 연애를 아직 못해봐서 조급함이 올라온다는 질문을 했는데, 질문도 너무나 재미있었고 법륜스님의 답변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질문자 : 대학 시절에 눈물 나는 연애 경험도 한 번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그런 일이 없어요. 대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가 중압감이 심하거든요. 취업도 걱정거리예요. 졸업하기 전에 기필코 한 번은 연애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은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라는 마음이 한쪽에서 떠올라요. 왠지 지금 조급한 마음에 시작하면 그대로 뒤엎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거든요.

 

- 법륜스님 : 대학 다닐 때 연애를 꼭 해봐야 한다는 그런 법칙이 어디 있어요? 왜 수많은 것 중에 연애예요? 딴것도 해볼 일 천지 아닌가요? 대학 다닐 때 봉사 활동도 한번 해봐야 하고, 전국 일주 여행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꼭 해봐야 할 일들이 많은데 연애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걸 꼭 해보겠다고 목표까지 세워요?

 

- 질문자 : 그런 거 다 해봤는데, 아직 연애만 못 해봤거든요.

 

- 법륜스님 : 왜 사람을 사귈 생각보다 먼저 연애를 할 생각만 할까요? 연애보다는 먼저 사람을 사귀려고 해야 하죠. 사람을 사귀는 동안 연애 감정이 생기면 그때부터 연애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나는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는데 상대는 아닌 때도 있겠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연애 한번 못 해봤으니 나는 무조건 연애를 해야 해.’ 이렇게 마음먹는 건 너무 목적의식만 앞서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존중하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너를 애인으로 만들 거야. 이렇게 접근한다면 상상만으로도 험악하지 않습니까? 하나의 생명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사람을 일종의 수단으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의 시작은 ‘연애해야 한다.’라는 목적보다는 ‘사람을 좀 알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접근하세요. 남자라면 여자가, 여자라면 남자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은 왜 다른지 조금씩 배우게 될 겁니다. 조금씩 인간관계를 늘려 가다 보면 내 취향과 비슷한 습성을 지녀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생기겠죠. 그러면서 연애 감정이 생길 거고요. 더욱 발전해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결혼까지 단계가 성숙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조금 열어놓고 살아야 해요.

 

인간관계에도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운동을 예로 들어볼까요? 운동장에 가서 파트너를 만들어 한번 뛰어보는 겁니다. 공도 던져보면서 안 들어가면 안 들어가는 대로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연습하는 거죠. 자꾸 반복하다 보면 기술이 생기겠죠?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사랑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망설이는 이유는 결과를 너무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귀는 일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괜찮은 사람처럼 호감이 생기면 먼저 이야기를 걸어볼 수도 있고,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대답해주는 겁니다.

 

사람 중에는 자란 환경 탓에 누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대답은 하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지요? 목구멍까지 간질간질 말이 걸려 나올 것 같은데 죽어도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연습만이 살길입니다. 상대에게 먼저 말을 걸고 말해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별로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소심해서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술을 마시면 과음하고 의식을 잃고서는 다음 날 기억도 못 할 사랑 고백을 펼치기 쉬워요. 맨정신으로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면 그 힘으로 말이 술술 풀리거든요. 혹시 주위에서 평소에는 말이 없고 조용하던 사람이 술을 마시고는 사랑을 고백하든,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폭발하듯 늘어놓으면 딱 알아차리세요. 이 사람이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어 있던 기억으로 평소에는 말을 대범하게 하지 못했는데 술을 마시면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며 반복할 소질이 있나 보다 하고요. 평소 가슴에 숨겨놓았던 말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 말들이 술의 힘을 빌려서 나오다 보니 반복은 필수고 무한정 늘어지게 많아지는 거죠.

 

이런 행동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보다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능숙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말문을 열어두는 연습을 해요. 평소 입을 꽉 다물고 조용히 있는 사람을 흔히 착하다고들 평가하죠. 하지만 이렇게 말을 안 하는 사람일수록 머릿속은 생각이 더 많습니다. 평소 조잘조잘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떠드는 사람은 오히려 생각이 적은 사람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말이 없는 사람일수록 순간적으로 돌출적인 행동을 합니다. 감정이 억압되어 있다가 순간 터지기 때문이죠.

 

평소 우울해하며 주로 혼자 지내는 성격의 사람일수록 자꾸 밖으로 나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업(業), 카르마를 변화시켜야 해요. 연애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에서 긍정적인 사고는 좋은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팔이 한쪽 없고, 다리가 한쪽 불편하다거나 눈이 한쪽 안 보인다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다만 불편할 뿐이죠. 하지만 정신적으로 움츠러드는 문제는 육체적인 장애보다 더 치유하기 어려워요. 수행을 해도 치유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은 항상 나만의 것입니다. 남자 친구가 배신하고 떠났다고 내 인생이 남자 친구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안 좋은 상황에서도 내가 반대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그렇게 사물을 보면 상처나 고통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닙니다.

 

연애하다가 헤어졌을 때 상대가 나를 배신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인간은 서로 소통해서 사귀다가 그 관계를 그만둘 수도 있어요.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네 자유잖아요? 여기에 거래를 붙여 손익계산을 하니까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너는 이만큼만 해줬다는 계산이 자꾸 튀어나옵니다. 그러고는 저놈이 나를 배신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문자만 보내고 울며 지내죠. 그러면 그럴수록 나만 불행해져요.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노하면 내 삶만 자꾸 파괴됩니다. 이 파괴는 배신한 상대가 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겁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것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고 곧 내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입니다. 사랑을 계산하지 마세요. 헤어지는 경험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 헤어짐에 대처할 때 ‘당신과 만나서 그동안 즐거웠다. 내가 당신 덕분에 변하는 사람의 심리를 배우기도 했어.’라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결국 내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방황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틀리면 고치면 되지. 몰라도 괜찮아. 모르면 물어서 배우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면 발걸음이 앞으로만 나갑니다. 뒤로 넘어졌을 때도 주저앉지 말고 자주 바뀌니 연습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여기세요.

 

우리는 헤어지자는 말도 내가 먼저 상대에게 해줘야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이별의 말을 하기 전까지 기다리면 내가 바보같이 멍청하게 있다가 당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먼저 이별의 말을 하고 가는 것은 내 마음만 다스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먼저 그런 말을 해버리면 상대에게 고통을 준 잘못에 대해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모두 빚으로 남습니다. 반대로 상대가 먼저 이별의 말을 남기고 알아서 빨리빨리 가주면 내가 도덕적으로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어요.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해요.

 

인생을 항상 내가 주인이 돼서 살면 골치 아프게 이런 문제를 내가 자꾸 선도해서 할 필요가 없어요. 좋아하는 거는 내가 선도해서 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산을 좋아하면 산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역시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좋습니다. 상대를 좋아하면 내가 좋아요. 내가 너를 좋아하면 네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요.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를 대고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괴로운 거예요. 성인 말씀 중에 “내가 행복해지려면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라.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라. 도움받으려 하지 말고 도움을 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럴 때 내가 행복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고, 나를 주인으로 서게 하는 가장 쉬운 길이에요.

 

왜 사람을 사귈 생각보다 먼저 연애를 할 생각만 할까 라고 묻는 그 첫마디에 ‘꽝’ 하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연애 한번 못 해봤으니 나는 무조건 연애를 해야 해.’ 이렇게 마음먹는 건 너무 목적의식만 앞서는 자세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저도 지금껏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연애를 해야한다는 목적의식이 너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편하게 만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죠. 그런데 법륜스님 말씀처럼 ‘연애해야 한다’ 라는 목적보다 ‘사람을 좀 알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다가갔다면 더 마음이 편하게 열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관계에도 사랑에도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