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오늘도 시작합니다. 살다보면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죠. 이럴 때 스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스님에게도 무기력한 시기가 있었고 그 극복 방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철없는 청춘이 질문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하루나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무기력해져서 자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함에 빠져들 때 어떻게 벗어나오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스님께서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20대에 약간 무기력해지면 이렇게 했습니다. 무기력한 정도가 비교적 덜할 때는 제가 주로 활동했던 경주로 가서 황룡사 터나 김유신 장군 묘 옆, 혹은 무열왕릉 묘 옆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었어요. 눈 감고 가만히 누워서 1,300년 전에 그 사람들이 활동했던 모습을 영화 보듯이 주욱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좋았던 것도 지나고 봤을 때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예컨대 연애하다가 헤어진 일이 역사 속 인물에게 더 잘된 일일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이 실패한 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인 경우가 역사에는 많습니다. 그렇게 옛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무기력은 그렇게 해결을 했는데, 심한 무기력은 단식을 했습니다. 5일 이상 굶으면 몸뚱이가 ‘뭘 먹어야지, 어떻게 해 봐야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살려고 하는 욕구야말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무기력은 배부를 때 생기지, 배고프면 절대로 안 생깁니다.(청중 웃음)
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일어납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줄을 매고 목에 딱 거는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면 ‘아이고, 잘 됐다. 안 그래도 죽으려던 참이니 나를 물어 죽여라’ 이러지 않아요. ‘사람 살려’ 소리지르며 줄행랑을 치지요. 자살하려고 목을 매달려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도망갑니다. (청중 웃음)
무기력한 것은 의식의 문제지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식도 생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존의 욕구가 더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이 약간 무기력해지면 자기 목숨을 자기가 죽일 수 있습니다. 남도 죽일 수 있듯이 자기도 죽일 수 있는 겁니다. 남을 죽이면 살인이고 자기를 죽이면 자살인데, 그건 정신이 약간 고장나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생존 자체가 위협에 부딪치면 무기력은 날아가 버립니다.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서 말해 보자면, 질문자가 좀 굶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직접 굶어 봤는데 4~5일을 넘어가면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저절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무기력이 극복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몸의 한계를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제가 외면한 것을 생각해서 ‘저들은 굶어죽는데 어떻게 나만 밥을 먹을 수가 있겠어? 나도 같이 굶어야겠다’ 해서 30일 굶다가 중지한 적도 있어요. 최대로 굶어본 건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때에 북한에서 또 대량아사사태가 일어나서 70일을 굶은 일입니다. 그래도 안 죽었습니다.
70일까지 굶어도 안 죽더라고요. 대신, 그렇게 굶을 때는 정신이 맑아야 됩니다.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심한 노동을 하거나 극심하게 분노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기력이 빨리 소진됩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단식을 하면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해 보니까 말이 잘 안 나와서 강연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49일이 넘어가니까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명상을 하면서 단식을 계속 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거든요.
또 여러분들은 단식이라고 하면 굶는다고만 생각하는데 안 그렇습니다. 단식을 하면 하루에 300그램의 순수한 살코기만 먹고 삽니다. 무슨 말일까요? 자기 살코기를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식은 채식이 아니라 육식입니다. 몸무게를 재보면 하루, 이틀, 삼일은 무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대변이 빠지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하루 평균 300그램씩 몸무게가 빠집니다. 매일 똑같지는 않고, 몸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소변이 잘 안 빠지면 어제와 몸무게가 똑같고, 소변이 빠져버리면 500그램이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기초 체온을 유지하고 생각을 하고 약간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주는 게 300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니까 평균 200그램씩 빠지고, 조금 더 명상을 하니까 평균 150그램씩 빠졌습니다. 머리 쓰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명상을 하면 머리도 거의 안 쓰고 대화도 안 하니까 에너지 소모량이 적어져서 체중감량의 정도도 덜했던 겁니다.
저는 굶으면 굶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마음에는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늘 연구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할 때 뭘 먹느냐? 복식은 언제 하느냐?’ 이런 연구를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굶는 데 무슨 방법이랄 게 있겠습니까? 안 먹으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복식’은 문제입니다. 음식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욕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명과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몸이 어떻게 작용하고, 뭘 먹으면 설사를 하고, 뭘 먹으면 속이 불편한지, 양이 어떻게 느는지, 이런 걸 본인이 체험해 보면서 연구하는 게 제일 확실합니다.
질문자 나이에 한 5일 굶으면 아마 일어날 거예요. 무기력 할 때 제일 좋은 것은 굶는 거예요. 무기력하다는 건 살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약 먹거나 목매서 죽지 말고 그냥 굶어 죽으려고 해보면 됩니다. (청중 웃음)
정신이 확 사로잡혀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죽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되지만, 굶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죽을지 살지를 자기가 다시 판단하게 되니까 ‘아이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력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질문자가 찾아서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무기력해 보였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스님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던 답변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무기력증에 대해서 질문했던 참가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참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신 것 같고, 무기력은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내년에 스님이 강연을 오시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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