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주위에는 우울증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얼마전 누나한테 전화가 와서 우울증이라고 하길래 1시간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든 크든 앓고 있는 우울증, 어떻게 해야 치유가 가능할까. 의문이 많이 들었던 요즘입니다.
우울증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는 달리, 우울하고 슬픈 감정과 의욕저하 등 다양한 신체적인 증상이 함께 나타나 지속되는 것”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시무룩 하고 의욕이 저하되어 무기력함을 보입니다. 자식들 다 키우고 혼자 남게 된 갱년기 주부들에게도 우울증은 많이 나타나며, 입시 경쟁의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정신과 진료 통계 조사를 보면 우울증으로 인한 상담 빈도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울증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정신질환의 하나가 된 것이죠.
오늘 법륜스님 즉문즉설에서는 우울증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아하, 그렇구나!" 드디어 명쾌해졌습니다. 우울증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함께 나눕니다.
▶ 질문자 : 저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고 거기다가 화가 나면 말을 못해요. 화를 내면 그 사람하고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감당 못 하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서 제 기분이 많이 좌우돼요. 그 사람이 화를 내면 제가 안절부절못하고 그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우울증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 법륜스님 :
똥을 잘 누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
우울증과 변비 증상이 상당히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똥 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울증은 첫 번째, 몸의 컨디션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변비약을 먹거나 굶거나 또는 관장을 하여 장이 잘 세척되면 증상이 좀 완화되기도 합니다.
내면에 ‘자기가 잘났다’ 하는 상을 쥐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우울증이 있다는 것은 지금 바깥 경계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내면에 자기가 잘났다 하는 어떤 상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 상을 갖고 있거든요. 그리고 남에 대해서도, 남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든지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은 현실의 모습과 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상은 현실의 모습하고 늘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남편하고 실제의 남편이 다르고, 내가 바라는 자식하고 실제의 자식이 다르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하고 현실에 있는 나하고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 차이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자학 증상이 생깁니다. 또 타인에 대해서도 이 차이가 너무 커지면 상대를 엄청나게 미워하게 되지요. 이게 바로 자기가 그려놓은 상에 그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자기가 그려놓은 상에 상대를 끼워 맞추려는 것에서 비롯
내가 나를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바뀌는데 상대가 쉽게 바뀌겠어요? 그러니까 미워하게 되고 미워하는 게 지나치면 보기가 싫어집니다. 또한 보기 싫어지면 헤어지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가족 관계이거나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이면 서로 안 보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인이 일어납니다. 미워하는 것과 살인은, 행위로 따지면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마음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미워하는 것 자체가 곧 살생입니다. 살생 죄업을 참회한다 하면 여러분은 ‘내가 언제 사람을 죽였냐?’고 생각하는데 미워하는 것이 이렇듯 죽여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상대의 행위가 내가 그려놓은 상과 크게 다르니까 늘 상대에 민감하게 대응하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기가 그려놓은 상과 실제의 자기가 크게 다르니까 현실에 있는 내가 너무나 꼴 보기 싫은 거예요. 그럴 때 가장 소극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부끄럽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이 정도는 세상사람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까 병 축에도 안 든다고 보는 것뿐이지, 근본적으로는 같은 증상입니다.
자기를 미워하게 되고, 심해지면 자기를 죽여 버리는 자살로 연결되기도
병이라고 해도 병이 아닐 수 있고, 병 아니라고 해도 병일 수가 있는데, 수행 차원에서 보면 다 병입니다. 중생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다 이미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에요. 사회에서 일정한 범위를 정해놓고 ‘여기까지는 병이 아니고 여기부터는 병이다’ 이렇게 정의하는데 실은 병과 병 아닌 것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심해지면 남을 만나지 않으려는 심리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심하면 우울증 초기 증상이지요. 더 심해지면 자기가 싫어지고 죽어 버리고 싶어지지요. 그래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자기를 미워해서 자기를 죽여 버리는 살인 행위가 자살이지요. 우울증이 심해지면 주로 자살로 연결되고 어떤 충동을 받으면 살인 행위도 일어납니다.
대인 관계를 넓혀서 자기에게 사로잡히는 데서 벗어나야
일반적으로 정신 질환에 걸리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너무 높게 상정해서 생긴 것이므로 하나는 자기가 못났다 하는 피해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잘났다 하는 우월 의식입니다. 이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은 늘 같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므로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대인 관계를 넓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사로잡히는 데서 벗어날 수 있는데, 우울증에 빠지면 자꾸 대인 관계를 기피하게 되니까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죠.
자식이 우울증에 빠지면, 부모는 그 원망을 다 받아주는 것을 수행으로 삼아야
그런데 자식이 우울증이나 분열증에 빠지면 그런 원망을 누구한테 합니까. 주로 부모한테 한단 말이에요. 그럴 때 부모가 수행이 되어 있어서 그걸 다 받아주면 1, 2년 지나면 해소되는데 보통 이것을 못 받아내지요. 그러니 증상이 자꾸 심해집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약간 우울 증상이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남을 무척 괴롭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옆에서 포용하고 도와줘서 내면의 피해의식이 어느정도 사라져야 회복 가능
서양의 우울증 치료법은 대부분 당사자를 치료하는 것인데, 불교의 치료법은 당사자가 해결 능력이 있을 때에는 당사자를 치료하지만 당사자가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부모에게 수행을 시켜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수행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이거든요. 수행이라는 것이 자기가 부처 되는 것인데 정신병은 자기 주체를 상실해 버린 것이니까 치료하기가 무척 어렵죠. 그러니 옆에서 이것을 포용해서 도와줘야 하고 그래서 내면의 피해 의식이 어느 정도 사라져야 합니다.
자신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자각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첫 번째, 본인은 자신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또 열등의식에 사로잡힙니다. 자아를 높이 설정해 놓으니까 현실에 있는 내가 보기가 싫어서 열등의식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이 허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만 놔 버리면 부끄럽다든지 창피하다든지 하는 생각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치료법으로는 엎드려 절하는 것이 제일 좋아
이것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엎드려서 절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맹목적이다 싶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설명을 해 주면 머리가 더 복잡해지거든요.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자신이 길가에 핀 들풀 같은 하찮은 존재임을 알게 되면 자아 분열이 치료됩니다.
자기 인생을 개척할 일거리가 있으면 금방 치료
그리고 자기 일거리가 있으면 금방 치료가 됩니다. 돈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 인생을 개척하고 애쓸 일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이 만병의 근원이었네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아상’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너는 아상이 강하다” 그런 말들도 많이 하죠.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르고, 그 차이가 클수록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상대에게도 기대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실제의 모습과는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미움의 감정이 커지고,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이다. 요약하면 이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에 이런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방황하는 실제의 ‘나’는 너무 많은 격차가 있었던 것이죠. 마음 공부를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우울증은 가볍게 치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분전환도 해보며 마음을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지셔서 밝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