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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반복되는 북핵 위기와 공허한 협상의 기억, 해법은?

북한 핵문제가 또다시 중대 국면에 들어섰다고 한다. 풀릴 듯 꼬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지쳤다고나 할까, 답답할 뿐이다. 이와 관련한 과거의 합의들과 그것이 이행되지 못한 시비전말은 너무 복잡해져 전문가도 피곤할 지경이다.

 

여기서는 다만 현재의 국면을 핵시대(Atomic Age)에 인류가 펼쳐온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에 비추어 해석해 보고 이 문제에 둔감해진 우리 모두의 자성과 북한의 자세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반복되는 북핵 위기와 공허한 협상의 기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재앙 이후 인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비록 동서 냉전은 이것을 이상주의자의 비현실적 꿈으로 만들 뻔했지만 다행히 탈냉전 시기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1986년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미국에 핵무기 전량 폐기를 제의하고,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전격 제안은 미국의 ‘별들의 전쟁계획(SDI)’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대개의 해석이지만, 여하튼 양국은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을 통해 1, 2단계 감축에 합의했다. 해외배치 중거리 핵무기는 1992년까지 전량 폐기 또는 철수시켰다.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은 이를 배경으로 합의되었다.

 

다자간에도 1995년 ‘핵비확산조약(NPT)’의 무기한 연장에 성공하고,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의 체결도 이루어졌다.

 

아쉽게도 이러한 흐름은 21세기에 들어와 일시 중단되었다. 2001년의 9.11테러는 미국의 핵정책을 크게 바꾸게 된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계(MD)’를 구축하기 위해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을 탈퇴했다. START 이행도 중단되고, 미국 의회는 CTBT의 비준도 거부했다.

 

미국은 <핵 태세보고서(NPR)>를 발표하여 불량국가로 분류된 국가에 핵 선제공격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핵 보유국의 핵무기 감축과 비보유국의 핵무기 보유금지라는 NPT 정신에 대한 중대 도전이었지만 테러와의 전쟁 중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이다.

 

이 시기 핵태세를 강화하는 미국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과의 핵협상은 인류의 비핵화 노력에 비추어 본다면 솔직히 공허하기까지 하였다.

 

인류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북핵 개발

 

▲ 광명성 3호 발사 전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러나 어수선했던 ‘테러와의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관심이 새로워지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구호만 내걸었지 별스런 업적도 없던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취임 초 “유일한 핵무기 사용국인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 데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한 발언은 그것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미국과 러시아는 신 전략무기감축협상(New START)을 통해 3단계 핵군축에 돌입했고, 유엔안보리는 2009년 핵보유국 정상이 모두 참석하여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결의안’(1887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운명의 시계(Doomsday Clock)는 미국의 원폭계획을 추진했던 핵 과학자를 중심으로 핵의 치명적 위협을 경고하기 위해 시카고 대학이 고안하여 발표하는 시계다. 1947년 23시 53분에 첫 시각을 맞춘 이후 1953년 미국과 소련의 동시 수폭실험으로 23시 58분까지 진행되었지만 탈냉전 시기에 23시 43분까지 되돌릴 수 있었다. 현재 운명의 시계는 23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수포가 될 뻔했던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인류의 노력이 2009년 가을 이후 어렵게 되살아나고 있다. UN은 이런 결의를 기초로 해서 2010년 워싱턴, 2012년 서울에서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확산방지를 주제로 한 ‘핵안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북한도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과 세계사의 흐름을 주목하고 있으리라 본다.

 

생전 김정일 위원장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이를 이루려는 목표는 변함없다”라고 강변하였지만 그의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제1비서는 헌법에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데 이어 주변국과 전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에 역행해서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2009년 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던 시점과 3차 핵실험을 앞둔 지금의 상황은 전혀 새로운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작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 2호기를 실은 은하 3호를 발사함에 따라 유엔안보리는 지난 1월 23일 북한의 로켓 발사를 규탄하고 로켓발사 유예와 핵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 2087호를 채택했다.

 

당초 북한은 로켓 발사에 대해 평화적 목적을 띤 것으로 주장해왔고 최근 북중관계에 비추어 안보리 제재논의가 의장성명 정도로 매듭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형식(결의안)과 내용(Catch-All) 모두 경제제재로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 됨에 따라 북한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안보리 결의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보복의 의미로 3차 핵실험의 단행을 시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방위원회는 아예 ‘앞으로 계속될 로켓발사와 높은 수준의 핵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속내를 모두 밝혔다.

 

김정은 제1비서는 ‘국가안전과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와 당중앙 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자주권을 위한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하면서 이번 국면의 승부를 자신의 정권기반에 연결시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남측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보복의 불벼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반응이 되풀이되는 것을 약자의 엄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이번 3차 핵실험이 실행된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은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국제사회로 하여금 협상의 방식과 내용을 새롭게 모색해야만 하는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할 것이다.


묵인할 수 없는 북핵, 포기할 수 없는 협상

 

북한은 한편 한국과 일본의 우주개발 계획에 대해 미국이 편파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마치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북한만 국제사회에서 부당하게 대접받고 있는 듯이 주장하며 동정과 호응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북한은 지난 시기와 달리 이제 핵개발을 둘러싼 명분 싸움에도 내세울 여지가 별로 없어졌다.

 

북한은 지금까지 NPT를 탈퇴한 유일한 나라이며, 21세기 들어 모든 국가가 핵실험을 중단한 가운데 핵실험을 시작한 유일한 나라다. 북한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노력이라는 최근 시대정신에 대놓고 역주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직시해야 한다.

 

정전협정 60년, 북한 핵문제 해결의 단초는 평화체제

 

▲ 판문점에서 대치 중인 북한군과 한국군. (연합뉴스)

 

북한의 핵개발 의도는 분명하다. 핵무기를 체제안보의 담보로 삼겠다는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나름대로의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계산, 즉 핵개발 포기의 궁극적 대가 또는 조건이 평화라고 한다면 진행(정전상태) 중인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수립하자는 것이며, 평화의 이름 아래 체제를 보장해 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평화와 체제 보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핵개발을 통해서 이를 추구하는 것은 목표와 수단의 조합이 잘못된 것이다.

 

이 점에서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에 대처해온 관련 국가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궁극적 의도인 평화문제 논의를 지연시키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목표와 수단을 아직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정전협정 발효 60년이 된다. 늦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라는 큰 틀에서 북핵문제를 바라볼 의미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핵포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평화와 안정을 잃게 되거나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2개 국가를 인정해야 하는 민족사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북핵 문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정전을 대체하는 평화체제하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으로 핵문제 해결의 단초를 발견하기가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법은 ‘핵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사적 과제와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의 교차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며, 또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67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