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내에서는 대북 강경대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선제타격론에서 독자 핵무장, 미 전술핵무기 반입, 미사일방위(MD) 참가, 한·일 군사협정체결, 전시작전권 환수 중단 등 생각해 볼 수 있는 강경책은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대북강경론은 대부분 실제로는 비현실적인 방책들일 뿐만 아니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3차 북핵실험 후 쏟아지는 대북강경론
첫째, 선제타격론은 핵무기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은 뒤 반격하기보다, 먼저 핵미사일기지를 공격해 무력화시킨 뒤 전쟁을 하겠다는 발상으로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부 장관이 지적했듯이 북한의 핵시설과 핵무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제타격은 불가능하며, 이를 뒷받침해줄 국제법적 근거도 없다.
둘째, 독자 핵무장론과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반입론은 북한 핵무장에 맞불을 놓는 방안이다. 전·현직 여당 대표마저 주장하는 독자 핵무장 주장은 전력의 40%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게 되는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의 핵전략과 관련된 전술핵무기의 반입은 우리의 간여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셋째, 미사일방위 참가론과 한·일 군사협정 체결론은 거시적 국가발전전략을 내다보지 못하고 북핵위기에만 매달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암수를 자청하는 하책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발상은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거나 친일파들의 간책(奸策)일 뿐이다.
끝으로, 전시작전권 환수 중단론은 ‘남의 다리 긁는 격’으로 북핵문제와 무관한 대책이다. 이 방안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지만, 선제타격론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안보우려 해소에 일시적 도움이 될지 모르나 북핵해법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 무대책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북한 3차 핵실험 발표 보도를 보고 있는 서울 시민들 (뉴시스)
현 한반도 정세는 최저점 이후의 과도국면
이와 같은 대북강경론의 배경에는 당장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현 정세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결과를 낳아 오히려 정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이 가정에 대한 정밀한 검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가 중대국면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섣부르게 위기국면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이미 작년 4월 13일 은하3호 로켓을 발사했을 때부터 예견되어왔던 일이고, 정부당국이나 전문가들은 12월 12일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에 대해 유엔안보리 추가제재가 결의되면 곧바로 단행될 것이라고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만약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나 전문가가 있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를 예견해 놓고도 이제 와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라면, 마치 1차 핵실험이 ‘부시의 핵’이었듯이 2, 3차 핵실험이 ‘이명박의 핵’임을 감추기 위한 책임 떠넘기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안보무능을 보여준 대표적 정부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안보무능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북한붕괴론 등 객관적인 정세를 왜곡하며 무모한 대북강경책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박근혜 새 정부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대북강경론 말뚝박기’를 시도하고 있는 점은 민족공동체의 앞날을 생각할 때 대단히 우려스럽다.
지금의 국면이 과연 위기인가? 진정한 위기는 예측가능한 일이 발생했는데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하고 과잉 대응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때 초래된다. 지금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모순이 폭발하여 최저점을 때리고 조정을 기다리는 과도국면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기 위한 분수령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균형'을 잡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11년 『Foreign Affairs』에 발표한 글에서 대외정책의 기조를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정책기조에 입각한 대북정책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기초로 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 남북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정책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다소 흔들리는 듯이 보였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핵실험이 확실하다면 옛날 같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올해 2월 13일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유화책이 아니며, 이런 안보상황까지도 고려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변화될 것이 없다”고 말해 수정론을 부인했다.
2월 14일 박근혜 당선인은 고노(河野洋平) 일본 중의원 전 의장과 접견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줄 때만이 이 프로세스는 진전될 수 있다”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현재 상황은 이런 생각을 진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밝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태도는 ‘균형’이 잡혀 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태도변화와 같은 남북 간의 신뢰를 ‘전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상황에서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대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태도변화 없이 대화를 시작하면 남북관계의 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고 있는 박근혜 당선인 (뉴스1)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필요할 때
이처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이 핵에 대한 태도를 바꿀 때까지 대화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남북 간의 신뢰를 쌓아가면서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한다는 국제정치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실제로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역시 ‘전략적 인내’를 주장하면서도 북한과 공식, 비공식 대화를 이어갔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7월과 10월, 2012년 2월 3차례 공개적으로 북·미 대화를 가졌고, 뉴욕채널을 통해 수시로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4월과 8월에는 백악관 NSC 관리들이 비공개리에 특별기를 타고 북한에 들어가 대화를 가졌다.
비록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로켓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더라도, 미국은 추가제재조치 마련과 2기 외교안보라인의 정비를 끝낸 뒤 또다시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존 케리 국무장관은 대화파,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전쟁반대론자이며, 2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이 내건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외교적 업적을 기대하면서 대화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2월 25일이면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박 당선인은 북한과 관련된 과거의 아픔과 기억을 뛰어넘어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를 갖고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동해선 연결, 남북축구대회 등 주요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신뢰는 선불이 아니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결과로 얻어지는 후불이다. 신뢰가 있어서 대화한다기보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고조된 지금이 오히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제 6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새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 지침서 - 남북 문제 해법을 찾는! <현안진단 2013>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간의 대북 정책 및 대응을 발판삼아 박근혜 새 정부가 나아가야할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지침을 담았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의 view 추천을 꾸욱 눌러주세요.
'한반도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 최악의 남북관계 물려받은 박근혜, 해법은? (0) | 2013.03.06 |
---|---|
삼일절, 1919년 그때처럼 4대 종교가 모였다 (6) | 2013.03.03 |
MB정부 5년 분석하니 北 핵실험 해법이 보이네 (12) | 2013.02.15 |
반복되는 북핵 위기와 공허한 협상의 기억, 해법은? (0) | 2013.02.06 |
한홍구 "100:0에서 51:49가 되기까지" (4)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