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로 많은 대중들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해 온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이 2013년 계사년 새해 첫날 아침,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고공 철탑농성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는 수행공동체 정토회 회원 50여명도 함께 했다.
대법원이 '불법 파견'으로 인정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36)씨가 현대차 울산공장 옆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지 1일로 77일째 접어 들었는데도,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사 협상은 제자리를 맴돌며 해를 넘겼다. 최씨와 천의봉(31)씨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사내하청의 불법 파견 인정과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에 나선 뒤 현대차는 사내하청업체와 함께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6차례 특별교섭을 벌였으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혹한 속 77일째 새해 첫날 아침, 철탑 위 고공농성장 찾은 법륜스님
이 과정에서 천의봉 사무국장은 동상의 전단계인 동창에 걸리기도 했으며 최병승씨는 산소부족으로 인한 신체마비 증상을 겪은 뒤 의료진의 건강검진까지 받기도 했다. 결국 두 명의 농성자는 차가운 송전탑 위에서 새해를 맞게 되었다. 이들을 위문하고 격려하고자 법륜스님은 새해 일출이 있은 직후 가장 먼저 이들을 방문한 것.
▲ 크레인을 타고 철탑 위로 올라가고 있는 법륜스님.
▲ 법륜스님이 최병승씨와 천의봉 사무국장의 두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
농성장 현장은 살얼음 같은 칼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법륜스님은 곧바로 크레인을 타고 철탑 위로 올라갔다. 최병승씨와 천의봉 사무국장이 머리를 빼곰히 내밀고 법륜스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철탑 위에 오른 법륜스님은 두 농성자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괜찮아요? 희망을 가지세요. 힘을 내세요. 2013년 오늘부터는 희망을 갖고 살아봅시다."
그러면서 법륜스님은 소정의 기금을 최병승씨에게 전달했다. 크레인으로 내려가는 법륜스님을 향해 두 농성자는 방긋 웃으며 하트 모양으로 팔을 그렸다.
▲ 철탑 위의 두 농성자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법륜스님의 품에 안겼다.
법륜스님은 "얼굴이 맑아서 다행이다" 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래로 내려온 법륜스님은 다시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한분 한분의 손을 꼭 잡아주며 인사를 건넸다.
먼저 민주노총 강성신 울산 지역본부장이 법륜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특히나 위에 올라간 두 분이 불심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한 분 오셔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현재의 농성 상황도 간단히 브리핑 했다.
"철탑에 올라간 지 오늘이 딱 77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금 현대차에서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을 은폐하려고 신규 채용이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채용하고 싶은 사람만 골라서 신규채용을 합니다. 신규 채용에 고졸 이상 학력이여야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같이 투쟁했는데 학교를 안 나왔다고 해서 대상자가 안 되고, 심지어 현대차에서 일하다가 산재를 당해서 장애를 받은 사람들에겐 또 '장애'라는 이유로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투쟁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들의 요구입니다. 저희는 저희만 정규직으로 전환되겠다고 투쟁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천만명이 넘는데 이제는 같은 노동자 내에 또 다른 계급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식들 또한 일회용품으로 취급 당해서는 안 된다, 이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법륜스님 일행이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김응효씨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이 싸움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010년에 해고가 되고 징계를 받고 가압류를 맞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11명이 분신을 시도하셨고, 그렇게 저희는 한발 한발 전진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께서 좀 더 관심 깊게 저희를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현장에 있던 많은 노조원 분들이 법륜스님에게 즉석에서 격려의 말씀을 청했다.
▲ 법륜스님이 계사년 새해 첫날,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철탑 농성장을 찾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했다.
"살아있는 부처님, 고통 받는 여러분들께 새해 첫 예불을 올리고자 왔다"
법륜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스피커를 통해 저 높이 철탑 위로 격려의 메시지를 또박 또박 전했다.
"오늘은 2013년 새해 첫날입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오늘 구름 한 점 없이 아침 해가 맑게 떴습니다. 지난해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오늘 아침 해가 떠오르듯이 그렇게 밝은 희망으로 2013년이 여러분께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희들은 오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려고 출발을 했어요. 그러다가 '살아있는 부처님인 여러분들께 첫 예불을 올리자, 또 이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첫 예불을 올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하자.' 이렇게 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철탑 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부처님' 이라는 말에 노조원들 몇몇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박근혜 당선자, 100% 대한민국 만들려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 헤아려야"
법륜스님은 지난 대선 결과에 그 누구보다 참담해 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마음도 헤아렸다. 그러면서 박근혜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새해를 맞이하여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아마 지난 선거에서 뭔가 변화가 있으면 희망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했을 텐데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약간은 절망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곳곳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그런 정치가 되어야 100%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눈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서 이런 아픔을 해소하는 그런 정치가 새해에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박근혜 당선자에게는 100% 대한민국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원했고, 현대차 노조원 분들에게는 희망을 잃지 말 것을 기원했다.
"뜻대로 안 된다고 포기해서 안돼, 다만 노력할 뿐"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은 앞으로의 노력도 강조했다.
"세상사라는 게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의 뜻이 이뤄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들은 꾸준히 노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이런 어려움에 충분히 함께 동참하지 못한 것을 저희들도 깊이 반성합니다. 새해에는 여러분과 함께 더 큰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이런 지난한 노력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칼바람에 장갑을 낀 채 터벅터벅한 박수를 보내며 노조원들이 크게 환호했다. 법륜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철탑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천의봉 사무국장이 법륜스님의 격려에 큰 목소리로 가장 먼저 화답했다.
"바쁘신데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고 여기 철탑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차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을 지키라고 여기 올라왔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꼭 승리해서 내려가겠습니다."
철탑 아래 법륜스님 일행 모두가 손을 흔들며 "힘내세요, 파이팅!" 외쳤다.
▲ 법륜스님과 수행공동체 정토회 회원들이 철탑 위에서 인사하는 두 농성자 최병승씨와 천의봉씨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철탑 위 농성자들 "법륜스님 뵙고 마음이 포근해졌다"
이어서 철탑 위에 최병승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손을 흔들며 법륜스님의 격려에 화답했다.
"반갑습니다. 스님. 저희 어머니도 절에 자주 다니시는데 저희 어머니 뵙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2010년 12월 8일 수배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다음날인 12월 9일 우리 동지들이 25일간의 파업 투쟁을 풀고 내려오는 날, 저는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뉴스에서 동지들이 울면서 내려오는 거 보면서 저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 내려가는 그 날, 다시는 울고 싶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우리 조합원들 한 번씩 안고 싶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고, 웃으면서 막걸리 한 잔 먹고 싶습니다.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 한 번 "힘내세요. 파이팅!"을 법륜스님 일행 모두가 함께 외쳤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들에겐 한자락 희망의 아침 햇살과도 같은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그 어떤 일출 명소보다도 더 아름다웠던 새해 일출의 현장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법륜스님 일행이 탄 차가 출발을 하려는데, 철탑 위 두 농성자가 또 소리쳤다.
"법륜스님 뵙고 마음이 너무 포근해 졌습니다."
차가운 철탑 위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었지만, 법륜스님이 불어넣어 준 온기는 철탑 위 두 농성자에게 오늘 만큼은 환한 웃음을 선물했다.
대선이 끝나자 쌍용차 국정조사는 선거용으로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 대선후보는 아직 없었다. 새해 아침, 갑자기 몰아닥친 폭설과 한파에도 이들을 잊지 않고 찾은 이는 법륜스님이었다.
대선 후 '멘붕'을 치료해주는 법륜스님의 책 3권을 추천드립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한 '쟁점'들에 대한 법륜스님의 명쾌한 해법이 담겨 있는 <쟁점을 파하다>, 법륜스님의 대한민국 미래 100년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는 <새로운 100년>, 즉문즉설의 원리가 담겨 있는 <금강경>.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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