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었던 어제(25일), 관악구에 위치한 ‘쑥고개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아닌 스님이 강론을 하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법륜스님과 그를 따르는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 회원 50여명이 김홍진 신부님이 있는 쑥고개 성당을 방문한 것. 종교는 다르지만 이들의 만남은 오래 되었다. 매년 석가탄신일이 되면 김홍진 신부님 일행이 정토회 초파일 행사를 방문했고, 매년 성탄절이 되면 법륜스님 일행이 성당을 방문했다. 종교계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엊그제는 교회를 방문한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었었는데, 이번엔 성당을 방문한 이야기다.
쑥고개 성당에서는 미리 떡과 과일, 차를 정성껏 준비하고 이웃 종교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떡’이 아침을 못 먹고 나온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숙고개 성당 성탄절 미사에 참석한 법륜스님.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성탄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탄 미사가 거룩하게 진행되던 도중, 김홍진 신부님이 오늘의 특별한 손님을 깜짝 소개했다.
“오늘은 공동체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아마 성탄일에 가장 바쁜 스님이실 겁니다. 전 국민의 멘토인 법륜스님입니다. 스님 일어나 주시죠. (큰 박수) 박수에 화답하는 의미로 스님의 좋은 말씀 들어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이 강론을 하는 연단을 법륜스님에게 넘겨주자,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이 또한번 큰 박수를 보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성당에서 강론을 하고 있는 법륜스님
법륜스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의 첫모습을 상기시키며 어떻게 해야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예수님은 추운 겨울에 태어나셨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 따뜻한 봄날 화려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 받는 곳에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심이 돈독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 학자나 수많은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분의 오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인 동방박사는 그분의 오심을 알아보고 가장 먼저 그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가장 고통에 신음하는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뜨지 않으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도 우리가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 겸손하고 지혜의 눈을 뜰 때만이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우리가 평소 하찮게 보는 그런 것들 속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입니다.
제가 동방박사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습니다. 하하하”
‘동방박사 입장’ 이라는 표현에 청중들이 빵 터졌다. 큰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 땅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땐 환영받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탄압받고 들어왔어요. 공부할 때가 없어서 절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나중에 발각되어서 천주교 신앙자도 처벌되었지만 장소를 제공하고 동조했다는 이유로 스님들도 많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천주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만 기릴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다가 애꿎게 죽은 스님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함께 좀 해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애꿎게 죽은 스님들’ 표현에 또 한번 청중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법륜스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의미에 대해 크게 강조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추운 곳 어두운 곳에서 아주 어려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돌아가실 때도 십자가에 못 박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태어나실 때나 돌아가실 때나 이 세상에서 봤을 때는 실패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감정을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없이는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육신은 비록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어도 그의 영혼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일래야 죽일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 아닌가. 꼭 오래 살아서 많은 말씀을 해야 성공이 아니고, 짧은 기간 활동하다가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그분의 영혼은 이 세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사셨기에, 결국은 돌아가시고 나서 소위 ‘부활’이라고 하는 더 큰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죽일 수 있었어도 그의 영혼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뇌리에 ‘꽝’ 하고 박혔다. 지금까지 보도 듣고 읽어본 모든 예수님의 말씀이 이 한 문장에 오롯이 새겨져 강렬하게 다가왔다. 청중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패배해 상실감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올해 2012년은 5년간 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중요한 해였습니다. 자기가 지지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분들은 기쁜 일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지하던 사람이 당선 안 된 분들은 상실감이 아주 많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상실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상실감이 더 큰 성공으로 들어날 날이 언젠간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하셨듯 오늘의 패배가 패배가 아니고 새로운 성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짧은 순간에 빠져서 좌절하지 마시고 역사를 좀 길게 보시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안 되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예수님이 그러했듯 진실한 노력은 쌓이고 쌓여 언젠간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은 마지막으로 다함께 이런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지지한 분이 대통령이 된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 분이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제는 19일 이전의 것은 놓아버리고 새로 당선된 분이 국정을 올바르게 잘 이끌어주기를 우리가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내가 싫어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그리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 내고 국민을 행복으로 이끄는 그런 일을 잘못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내가 지지했다 하더라도 비판을 해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찬성했든 반대했든 이미 결정난 일은 받아들이고, 그러나 그 분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지 못할 때는 나라를 바르게 이끌도록 비판적인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새로 대통령이 되신 분도 당선될 때는 지지 세력에 의해서 되었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반대 세력까지 포함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반대 세력의 아픔을 충분히 껴안아 주었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만백성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듯 우리 또한 찬반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입장을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 슬픔을 갖고 계신 분들은 오늘까지만 슬퍼하시고, 예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새로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려운 가운데서 인류에게 희망을 주셨듯이 우리 또한 그분을 따르는 사람답게 주위에 희망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오늘 예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형제자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법륜스님은 좋은 대한민국이 되도록 다같이 기도해주실 것을 당부했다. 또 새로운 지도자가 국민들의 아픔을 감싸안아 줄 것을 기도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MBC기자들, 이분들은 오직 정권교체 하나에 지푸라기 잡듯이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니 자살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도 따뜻한 성탄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도록 함께 우리가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북녘 땅에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오늘의 기쁜 소식이 함께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법륜스님의 기도는 간절했다. 함께한 자리한 정토회 불자들과 천주교인들 모두도 함께 기도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이들의 이런 기도를 하늘에서 보신다면 참으로 기뻐할 그런 모습이었다.
법륜스님 "추운 겨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오신 기쁨이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도중에 많은 성당 신도님들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법륜스님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김홍진 신부님은 법륜스님의 강론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스님, 감사합니다. 59%의 멘붕 상태에 빠진 관악 주민들에겐 희망의 말씀을, 41%의 승리한 관악 주민들에겐 나라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자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제가 강론할 때는 박수 안치시죠? 하하하. (청중 웃음) 뭐 강론할 때 박수 안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올 때는 사진 안 찍고, 왜 스님이 나올 때는 사진 찍고 그래요? 차별하지 맙시다. 하하하. (청중 웃음) 이렇게 기쁜 날 스님과 함께, 또 정토회 식구들과 함께 예수님 탄생을 기뻐하는 것. 정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치가 많으신 신부님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농담을 던졌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를 힘차게 부르며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성탄절 미사를 마쳤다.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은 서로 종교의 형식이 다르다. 또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와 쑥고개 성당 신도님들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다름을 배척이 아닌 ‘조화로움’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근본 힘은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이해’다. 반반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이 상처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오늘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훈훈한 성탄절 풍경이었다.
덧붙여, 대선 후 '멘붕'을 치료해주는 법륜스님의 책 3권을 추천드립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한 '쟁점'들에 대한 법륜스님의 명쾌한 해법이 담겨 있는 '쟁점을 파하다', 법륜스님의 대한민국 미래 100년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는 '새로운 100년', 즉문즉설의 원리가 담겨 있는 '금강경' 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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