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갈등을 못 풀면 국민통합도 어렵고 남북통일도 어렵습니다. 강정마을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첫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은 한가위 명절을 맞이하여 강정마을 주민 500여명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으로 찬반의 대립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마을주민들이 한가위를 맞이하여 어제(1일) 하루 만큼은 근심걱정 잊어버리고 신나게 함께 어울렸다.
법륜스님과 평화재단 자원봉사자들은 추석 3일 전인 28일 제주도 강정마을에 도착하여 집집마다 가정 방문을 하며 찬성 반대를 떠나 마을주민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갖자며 이번 한가위 마을잔치의 취지를 알리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당일 강정천 옆 축구장에는 50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을잔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오전 11시30분부터 평화재단 봉사자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준비한 점심식사가 제공되었다. 음식을 담고 배달해주는 봉사자들의 바쁜 손놀림에 마을주민들은 연거푸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속속들히 외빈들도 도착하고 국수 한그릇을 거뜬히 먹은 주민들은 삼삼오오 무대 앞에 모여들었다. 오후1시부터 풍물패의 신나는 꾕과리 소리와 함께 평화의 마을잔치가 시작되었다. 행사를 주관한 법륜스님은 풍물패가 등장하자 함께 손을 흔들며 풍물패 뒤를 따라가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어 한껏 흥을 돋구어 주었다.
소박한 마을잔치였지만 찾아온 손님들은 화려했다. 우선 존경받는 세 종교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독교에서는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 천주교에서는 문정현 신부, 불교에서는 법륜스님이 각각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어 종교를 떠나서도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을주민들에게 솔선수범하여 보여주는 감동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 잔치를 주관한 법륜스님이 마을주민들에게 전하는 호소는 간곡하였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인해 절반 이상 없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더 걱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갈등으로 생겨나는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더 쉽지 않다는 겁니다.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더욱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자연환경의 파괴보다도 인간 심성이 파괴되고 있는 이 문제를 더 시급한 과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마을주민들 사이에서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갈등을 반목하다 보니 동네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짓는 재도 함께 지내지 않게 되었고, 가족끼리 제사도 함께 지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충격은 외부에서 주었는데 갈등은 내부끼리 하게 되면서 서로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날 행사장에는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소수만이 참가하였다. 대다수가 반대하는 주민들이었다. 소수파가 되어버린 찬성하시는 분들은 마을잔치에 참여하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마을 안에서 또 다른 소외계층이 되어 있었다.
“강정마을 주민 여러분들, 찬성하는 소수 분들의 아픔을 좀 이해하시고, 미워하기 보다는 그분들까지도 껴안아주는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화합한다면 틀림없이 이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법륜스님은 마을의 화합을 우선 첫 번째로 강조했다. 화합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마을주민들에 대한 호소와 더불어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호소도 있었다.
“주민들의 요구와 정부의 정책 사이에서 누군가는 이 갈등을 조율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정치입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를 풀어준다면, 농사짓고 고기 잡는 주민들이 5년동안 한을 품고 이렇게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강정마을에는 이런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면서 강정마을 갈등의 해결은 앞으로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많은 갈등들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강정마을이 강정마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합리적으로 잘 해결된다면 이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국민화합이 첫출발 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남북이 하나 되는 길로 가는 해결책이 될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하 정부 관계자들, 행정부 관계자들, 해군관계자들 분들께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이 아픔과 간절함을 다시 한 번 제고를 해주셔서 주민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 분함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마련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동안 강정마을에 수많은 외부인들이 와서 행사를 했었지만 이처럼 화합의 메시지를 호소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이 마을잔치가 얼마나 마을주민들에게 필요한 자리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뜨거운 박수와 감동의 순간이 지나가고, 김제동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김제동씨는 주민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본인이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웃기기도 했지만 그 속엔 강정마을의 해법도 녹아 있었다. 서로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이야기했다. 특히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이 오시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런 제안도 했다.
“제가 다음에 다시 강정에 올 때는 찬성하는 분들만 따로 모아놓고 토크콘서트를 하겠습니다.”
다음 콘서트를 제안하자 마을주민들은 크게 호응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무대에서 내려올 땐 신나는 노래도 들려주었다.
이어서 막걸리잔과 술안주가 나오고 노래반부에 맞춰 주민들이 나와 노래도 부르는 등 잔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갔다. 그동안 마음고생 했던 것들이 어찌 오늘 하루만에 다 풀어질 수 있으랴. 하지만 오늘이 그 첫출발이 되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듯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주민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우리 마을이 먼저 화합해야 한다는 말에 많이 공감 했수다. 육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러왕 많이들 와신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거든. 마음이 많이 상했으니까 쉽지 않을수 있지만 오늘이 계기가 된 것 가탕. 고생하신 봉사자분들 너무 고맙수다예.”
화합해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해 봤다는 마을주민의 이 말에 오늘 행사의 취지가 참 훌륭했구나 하는 점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벽에 금이 갔으니 조금만 더 힘을 합치면 마을도 화합이 되고 강정마을도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갈등을 해결해 나가본 이 경험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갖가지 갈등들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도 가져보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도 접근해볼 수 있구나 하는 새로움도 있었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런 감동도 있는 한가위 강정마을 큰잔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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