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일 오후3시, 부산KBS홀에 4천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요즘 어떤 행사를 하더라도 시민들 몇 천명이 몰려드는 인기를 구가하는 사람은 연예인과 걸그룹을 제외하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연예인도 아니면서 강연을 한다고 하면 수천명의 인파가 모여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법륜스님이다. 복잡한 인생 고민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즉문즉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춘콘서트를 기획하고 주관한 인연으로 신문지상에는 안철수의 멘토로 많이 불려지고 있으나, 그의 진면목은 대중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즉문즉설의 탁월함에 있다. 법륜스님을 만나기 위해 부산KBS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았다.
추석 연휴에 제주에 귀거하며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해 위로잔치를 열었다는 법륜스님은 “강정마을 안에 38선이 그어져 있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과거를 돌아보면 진짜 못 살 것 같지만, 미래 이익을 생각해보면 같이 나아가야 한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한발 한발 화합을 향해서 나아가자”며 강연의 서두를 열었다.
무려 3시간 동안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일반 시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공감가는 질문들이었다.
“남편의 이혼요구에 집을 나와 원룸에서 지내며 가정을 돌보고 있어요. 막막합니다.”
“행정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연락을 기다리고 있어요. 만약 떨어지면 어떡하죠?”
“결혼하고 나서부터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왕따를 해서 힘들어요.”
“저 보고 신기가 있다고 해요.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신경이 쓰입니다.”
“화병에 가슴에 응어리가 있어요. 어쩌죠?”
“집에 고3 아들이 있어요. 실업고 진학해서 취업도 했는데 직장 생활을 많이 힘들어해요.”
“배신을 많이 당하다보니 사람들이랑 벽을 쌓게 되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아이를 한 명만 낳았어요. 학교 학생수가 적어 더 놓아야할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쾌했고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청중들에게 감명깊게 다가가서 더 큰 박수갈채를 받았던 질문과 답변 한 가지를 소개한다. 위에 질문은 모두 질문자가 손을 번쩍 들고 직접 마이크를 잡고 현장에서 질문을 했지만, 이 질문은 직접 말하기가 어려웠는지 쪽지를 적어 질문이 이뤄졌다. 법륜스님이 쪽지에 적힌 질문을 대신 읽어주었다.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고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직접 질문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남편이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너무 포악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자식의 일입니다. 엘리트인 아들이 화를 못 삭여서 직장에서 힘들어 주위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살맛이 안납니다. 제가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해줘야 그 성난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요?”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포악한 남편으로 힘들게 살아왔고 이제는 아들이 그 전철을 밟아 똑같이 포악해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프다는 내용이다. 청중석에서 연거푸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법륜스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하십시오. 왜냐하면 이 여자분에게는 남편이 굉장한 미움의 대상이예요. 그래서 지금 살기가 힘든 거예요. 남편이 이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애를 키워보면 애도 딱 자기 애비를 닮습니다. 술주정 하면 술주정 하고 성질 급하면 성질 급해지고 딱 내림으로 닮습니다. 그러니 애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꼬라지도 보기 싫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꼭 유전자가 내려가듯이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내려가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의 질환은 유전자로 내려가지만 정신적인 질환은 반드시 남편의 행동이 아내에게 투영이 되어 엄마로부터 자식에게로 넘어갑니다. 아버지에게서 자식에게 바로 가는 게 아닙니다. 엄마를 거쳐서 자식에게 내려가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엄마가 거울입니다. 남편에 대한 안좋은 영상이 엄마에게 비쳐서 아이에게 넘어갑니다.
아버지가 이런 행동을 안 하면 아들에게도 이런 정신질환이 안 나타난다 이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런 행동을 해도 엄마가 그것을 거울로 반사를 안 해주면 아들에게 안 나타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제 말 이해가 되셨어요?”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 하고 답했다. 심리 분석이 아주 깊이 있게 녹아있는 답변이었다. 아버지가 포악해도 엄마가 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아들에게 전이되지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참 신선하다. 법륜스님은 계속 답변을 이어갔다.
“아버지의 행위가 아이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엄마를 통해서 아이에게 영향을 줍니다. 만약 아버지가 갓난아기를 안고 키웠다면 아버지의 영향이 아이에게 직접 가지만, 아이를 엄마가 안고 키운다면 남편의 행위가 아내를 투영해서 가게 된다. 남편이 바락바락 성질을 내는 것을 보고 내가 화를 못 참았기 때문에 아이를 화를 내는 거예요. 남편이 화를 바락바락 내도 아내가 전혀 거기에 영향을 안 받고 ‘아이고 우리 남편 성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십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걸 반사를 안 해버리면 아이는 전혀 영향을 안 받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직접 영향을 준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라는 겁니다. 원인 제공자는 나지 남편이 아니예요. 그러니 아이에게 조금 도움을 주려면 누가 고쳐져야 해요? 내가 고쳐져야 합니다. 내가 고쳐지려면 내가 남편에 대한 미움이 없어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의 화가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미 벌써 아이가 어릴 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이의 심성이 그렇게 형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아이는 심성 자체가 화기가 차 있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자기도 통제가 안되는 화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누가 이 잘못을 저질렀냐? 질문자가 저지른 겁니다. 그러니 아들의 고통을 내가 감수해야 되요. 이미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고칠 길이 없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부터라도 내가 남편에 대한 증오심을 버려야 해요. 남편에 대한 증오심을 버리려면 남편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내가 긍정적으로 보고 내가 잘못 보고 한 것에 대해 참회를 해야 되요.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면 ‘아이고, 화나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를 하세요. 성인인 내가 내 성질을 바꿔버리니까 자식도 자신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내가 바뀌면 아들에게 희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오늘부터 남편에게 정말 참회가 되는지를 연습해 보세요. 100일 하든 1000일을 하든 참회가 되면 아들에게 희망이 있는 거예요. 내가 안 되면 아들에게 희망이 없는 거예요. 나도 안 되는데 아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엄마가 기쁘게 살아야 해요. 엄마가 기쁘게 살면 아버지가 엄마한테 나쁜 짓을 했다는 거예요? 안했다는 거예요? 안했다는 것이 됩니다. 아이들이 엄마의 기쁨을 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놓을 뿐만 아니라 아빠에 대해 미움도 안 생기는 겁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미움이 약해지는 겁니다. 정말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느냐 생각해보세요. 밥 챙겨주고 옷 해주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한 미움을 심어주면 아이들이 크면 이것이 아빠한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향합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다시 엄청나게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겁니다. 딱 끊어야 합니다. 자식을 정말로 사랑하면 오늘로서 딱 끊어야 합니다. 절대로 불행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면 안 되고, 아빠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 ‘아이고, 여보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히려 기도하세요. 그래야 내 인생도 풀리고 애들 인생도 풀립니다.”
남편의 포악함이 모든 불행의 원인인 줄 알았는데, 그 포악함 조차도 내가 반사를 안해버리면 아이에게 전혀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인가?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답변을 듣는 청중들의 표정도 점점 밝아져 갔다.
법륜스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런 부부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남북관계의 비유로 다시 풀어나갔다. 부부 갈등의 해법을 남북 관계의 해법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지금 국제 정세를 보면 남북한이 딱 손잡고 통일을 해나가면 중국의 부상과 미중의 경쟁 속에서 우리의 길이 확 열려요. 길이 훤히 보이는데도 우리는 계속 ’저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북한 욕만 하고 있잖아요. 한국은 북한 때문에 미국에 붙고, 북한은 한국 때문에 중국에 붙고. 그러면 미중이 경쟁하는 속에 우리는 그 하위변수가 되어서 다시 한반도는 분쟁지역이 되고 새로운 100년은 또다시 고통 속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냥 놔두면 90% 이렇게 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것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법륜스님의 그 헌신성에 감응한 듯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과거에 연연하면 어떤 갈등도 풀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미래의 이익을 보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기 살아온 대로 하면 이게 안 바뀌어요. 여기에 무언가 결단이 있어서 방향이 바꾸어 줘야 해요. 그런데 긍정적인 조짐이 일어나고 있어요. 질문자가 이렇게 질문한 것도 긍정적인 조짐이예요. 저한테 안 묻고 그냥 살았으면 그대로 가는데, 물었으니까 지금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힘들지만 방향을 틀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왜 지나간 얘기만 하고 있어요? 다 지나간 얘기예요. 지금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겁니다. 지금까지 실패한 것을 경험으로 삼아버리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과거에 연연하면 앞으로의 삶은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100년의 휴유증에 끌려서 그냥 가면 또 새로운 100년은 분단 속에 살아야 되지만, 과거 100년을 보고 돌이켜서 ‘우리는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없다’ 이렇게 마음을 크게 바꾸고 방향을 틀면 새로운 100년은 희망의 100년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무언가 희망이 오도록 우리가 바꿔봅시다.“
다시 또 청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시계를 보니 강연을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났다. 장장 3시간 동안이나 선 채로 문답을 이어간 터였지만 스님의 목소리는 더욱더 높아져만 갔다. 강연이 길어지자 몇몇은 도중에 자리를 뜨기도 했지만, 남은 청중들은 귀를 더욱 쫑긋 세웠다. 몰입의 진풍경이었다.
“오늘부터 집에 가서 그 철전지 원수인 남편을 향해 ‘여보, 제가 부족했습니다’ 해보세요. 남편한테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무슨 손해날 것이 있어요? 그러면 이 아이도 좋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그랬어요?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거라 했잖아요. 얼마나 쌈박해요? 이런 정도로 생각을 확 바꿔야 됩니다. 원수였던 제 남편을 성인으로 만들어버리면 아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단하다. 철전지 원수로 여기던 남편과의 화해를 주문한다. 게다가 부부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면서 남북관계의 해법까지 연결시킨다. 법륜스님은 대중들의 인생고민을 풀어주면서 개인들의 고민 해결이 사회참여로 맞닿아 지는 것도 늘 바라는 것 같다. 부부갈등, 연애문제, 이혼, 바람핀 남편 이런 것으로 시작했지만, 강연의 말미엔 항상 남한과 북한이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야 한다는 말로 귀결되어 진다. 훈훈한 감동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법도 얻고,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법도 얻었다. 머리와 가슴이 꽉 채워지는 뿌듯함이 올라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즉문즉설... 하는구나. 즉문즉설의 매력에 흠뻑 빠진 3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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