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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추석 명절, 강정마을 집집마다 방문해보니

전 국민이 고향으로 향하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가족들과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고 전도 부쳐먹고 차례도 지내고 그럴 테지요. 이런 즐거운 추석 명절임에도 싸늘한 긴장과 침묵이 흐르는 마을이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입니다.

 

추석을 하루 앞둔 29일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았습니다. 오는 10월1일 평화재단(이사장 법륜스님) 주관으로 강정마을 한가위 큰 잔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차를 타고, 그리고 완도에서 제주시까지 배를 타고.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강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라는 노란색 깃발들이 예리함 긴장감을 품어내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 추석에 찾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나부끼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정류장 한쪽 표지판에 마을 회장이 전하는 공지 사항이 보입니다. 법륜스님과 김제동씨가 10월1일 추석 다음날 강정마을을 방문하여 마을잔치를 연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곳에 내려오기 전, 대한문 앞에서 열린 '두개의 문' 촛불문화제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두개의 문'을 연출했던 홍지우, 김일란 감독을 만났었습니다. 홍지우 감독에게 추석 때 강정마을에서 마을주민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잔치가 열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드렸더니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라며 굉장히 우려를 많이 했었습니다. 

 

오랜 기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극하게 대립해 왔던 마을 주민들이 닫힌 마음을 열고 마을잔치를 통해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까요?  법륜스님이 마을 주민들에게 보낸 초대장이 이번 행사의 취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아름답고 소박한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강정마을이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되면서 어느새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마을이 되어버렸습니다. 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이웃사촌이, 아버지처럼 따르고 자식처럼 사랑했던 삼촌과 조카가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평화로웠던 농어촌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아온 강정마을 사람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서로 견해가 다르더라도 이웃으로 다시 만나 옛날처럼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고, 그래야 후손들도 서로 화합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모두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 뼈를 묻고 살아온 강정마을 사람들입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그동안 지쳤던 마음, 분노했던 마음, 미워하고 원망했던 마음들을 다 내려놓고, 예전처럼 꽹과리 소리에 맞춰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한 판 놀아보았으면 합니다. 견해 차이를 떠나 옆집, 앞집, 뒷집 사람, 아들의 친구, 친구의 아버지로 만나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고 막걸리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던 강정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앞으로 계속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자리입니다"

 

주민들은 이런 행사의 취지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또 얼마나 참석할까요? 봉사자들과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마을주민들의 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강정마을 주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마을잔치를 알리는 평화재단 봉사자들.

 

강정마을은 전체 500가구 정도 있는데, 평화재단 자원봉사자들은 골목 골목 한집도 빠지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잔치에 오라고 알려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마을잔치 들으셨어요? 법륜스님과 김제동씨가 와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막걸리도 한 잔 기울일 거예요. 그동안 마음 고생 많으셨죠? 찬성 반대를 떠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놀러오세요."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을 하느냐 반대를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180도 달랐습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마을잔치 참가를 꺼려하는 분들이 많았고, 반대하는 주민들은 기꺼이 오시겠다고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 한가위 맞이 마을잔치를 연다고 하자, 갑자기 집에 들어오라며 하며 하소연을 털어놓은 강정마을 주민.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땐 하염없이 하소연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김제연씨(주부, 42. 가명)는 얼마전 40일 동안 구치소에 있다가 나왔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추석 명절이지만 지금 마을 분위기가 말이 아니야. 우리 앞집과는 제작년까지만 해도 같이 전도 부치고 떡도 나눠먹는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어. 작년 마을회장이 구속되면서부터 찬성 반대가 갈라지고, 앞집이 찬성을 하면서부터 그 때 이후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내고 있어."

 

그러면서 앞집을 증오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습니다. 마을잔치에 오라고 말했더니 앞집에서는 뭐라 그러던가요 하며 묻습니다. 제가 "아무말 안하시고 그냥 초대장 잘 받으시던데요" 하니까

 

"! 저 집은 틀림없이 마을잔치에 안 올거야"

 

하며 혀를 찼습니다. 심지어 친척끼리도 서로 얼굴 안 보고 산다는 등 갈등이 더 심각한 집도 많았습니다. 해녀 출신이었다는 김정자(64)씨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해녀 출신들이 가장 먼저 찬성을 하기 시작했어. 해군 쪽에서 해녀들에게 먼저 접근했나봐. 15천만원을 보상금으로 줄테니 이제 해녀질 안해도 돼 이렇게 설득했데. 다 속아넘어갔지."

 

처음엔 그렇게 약속해 놓고 실제로 받은 보상금은 7천만원부터 12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래. 아무것도 모르고 완전 속아넘어간 거지. 가장 많이 받았다는 7천만원이라 해도 평생 해녀질 안해도 될 정도의 그런 돈은 아니거든. 이미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해군기지가 건설 안 되면 다시 보상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합의서도 작성한 것 같아. 그러니 어떻게든 해군기지가 건설되기를 바라겠지."

 

단순히 해군기지 건설 찬반 여부를 떠나 마을주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과 상처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7천만원 받았고, 어떤 사람은 12백만원 받았데. 이렇게 차별 지급하는 것은 말이 안 돼. 또 경찰들은 (반대하는) 우리들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괴롭혀. 불시검문해서 음주 단속을 마구 하고...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어떤 이익이 있나? 마을이 송두리채 없어질 거야. 열심히 농사지은 땅과 바다. 우리 아들 딸에게 물려줄 것들이 모두 다 사라지게 되었어."

 

주민들의 정부와 해군, 경찰에 대한 적개심은 상당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평화재단 봉사자들의 가가호호 방문으로 이 분들의 마음은 조금씩이나마 녹는 듯 했습니다. 답답해하는 심경 한편으로 화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뜻 내비쳤습니다.

 

"마을이 화합되려면 해군기지 건설이 찬성이든 반대이든 어떻게든 결론이 나야 해. 하지만, 이렇게 마을잔치를 정성스럽게 열어주니 작은 계기는 될 수 있겠지. 그런 측면에서 법륜스님의 그 마음이 고마워."

 

어떤 분은 봉사자들이 하루종일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했습니다.

 

"마을 전체를 다 돌아다니시며 이렇게 알리수? (놀라는 듯한 표정) 이 정도로 정성을 들여 준비하는 줄은 몰랐어. (마을잔치에) 안 갈수가 없네."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봉사자들의 열정으로 얼어붙은 마음은 조금씩 녹아나고 있었습니다. 한편 찬성하는 입장에 계신 주민들 몇몇은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그런 곳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는 잔치에 대해 눈치를 보는 듯 했습니다. 반대하는 분들이 80%이상 되고 찬성하는 분들은 20% 남짓합니다. 그러다보니 혹시나 마을잔치에 갔다가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는 상황입니다.

 

 

△ 집집마다 방문하며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정성껏 주민들을 만나는 평화재단 자원봉사자들.

 

한가위 강정마을 마을잔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실지는 확실치 않은 듯 보입니다. 특히 찬성하는 쪽 주민들은 아직도 꺼림직하고 눈치보이고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니 101일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내일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찬성쪽 반대쪽 주민들을 모두 한분 한분 찾아뵐 계획입니다.

 

강정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해군기지 건설 여부를 떠나서 400년을 평화롭게 살아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서로에게 입은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비록 많은 분들이 못오시더라도 서로의 상처가 봉합될 수 있는 작은 계기라도 되길 기원해 봅니다. 한가위 강정마을 소식이었습니다.

 

계속하여 강정마을의 101일 마을잔치 소식을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