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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남편에 대한 시어머니의 지나친 사랑, 불편해요

설연휴가 끝났네요. 아쉽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설연휴 덕분에 오랜만에 부모님도 찾아뵙고 친척들과 정겨운 이야기도 나누면 좋았을텐데 저는 많이 우울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불편한 마음 때문에 서로 다투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 명절엔 삼촌들이 아예 고향에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저희집 뿐만 아니라 요즘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가족이 붕괴되고 갈등이 골이 커지는 가정들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설연휴를 지내서 그런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도 이런 가족 갈등에 대해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슴에 남는 질문과 답변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갈등 사이에 놓인 한 여성분의 질문이었는데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비슷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으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질문자 :
시어머님은 자식에게만 헌신하며 살아오신 분이고, 남편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어머님의 사랑이 지나친 간섭으로 보였고, 사십 넘은 아들을 품안 자식으로 대하시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런 갈등이 표면화될 때쯤 남편이 불면증과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치료과정에서 남편이 어머님과의 관계를 매우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머님은 당신 사랑이 아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걸 아시고는 한동안 거리를 두셨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많이 좋아지자 어머님이 다시 연락을 하고 찾아오십니다. 머리로는 어머니의 처지와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 법륜스님 : 남편 없이 아들에게 의지하고 정을 쏟으며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아들도 어머니의 아픔을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에 효도하고 싶은 애틋함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 격입니다. 여자 둘이 한 남자를 두고 사랑싸움을 해도 남자가 견뎌내기 힘든 법인데, 남편에게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고 하나는 사랑하는 엄마가 아닙니까? 둘 다 절대 버릴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남편이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겁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할 때 그 사이에서 아이가 겪는 갈등과도 같습니다. 엄마나 아빠 어느 한쪽도 아이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에게, 고부갈등이 있으면 그 사이에 낀 남자에게 병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미 발병 했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니까, 질문자가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가 건강하게 제 명대로 살 수 있도록 이혼을 해주는 편이 낫겠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포기하기란 아내가 남편을 포기하기보다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지금 어머니도 당신 사랑이 아들에게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멀리하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엄마가 자식으로부터 떨어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자식 낳아 키워보면 알게 됩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자식의 나이를 따져서는 계산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이 건강하게 살도록 헤어져 주는 게 좋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입니다. 어머님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겁니다. 아들이 아프면 멀어졌다 좋아지면 다가오고, 다가오면 다시 건강이 나빠질 테지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속에서 남편도 나도 평생 갈등을 겪으며 살아야 합니다.

만약 이혼이 쉽지 않다면 이혼한 정도의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같이 살아도 마음에서 이혼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포기하는 겁니다. 내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우선시하세요. 어머니가 언제든지 오시고 마음껏 아들과 함께 있을 수 있게, 어머니가 집에 오시면 나는 자리를 비워드리겠다는 마음을 내야 해요. 남편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게 무조건 어머니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함께 산다 해도 큰 지장이 없고 남편도 아무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당신이 효도를 해야 우리 아들도 나한테 효도를 합니다, 마음껏 효도하세요”하고, 어머니가 이것저것 간섭을 하면 “남편의 성격이 그렇군요. 식성이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하고 늘 고맙게 받아들이세요. 어머니를 주인이라 생각하고 나는 어머니 안 계실 때 잠깐 빌려 쓴다는 자세로 살면 됩니다.

그렇게 살려면 같이 살고 그게 아니라면 이혼하는 게 낫습니다. 어머니 떼어 버리고 온전히 남편과 살겠다는 건 욕심입니다. 엄마와 자식의 정을 끊는 건 천륜을 끊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아들 보러 오고 아들이 어머니 집에 가는 걸 불편해하면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매일 기도를 하면서 “이 사람은 당신 아들입니다. 당신이 주인입니다. 저한테도 이렇게 혜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시면 남편도 나도 어머니도 편안해질 겁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질문자가 환하게 웃음을 보이며 “감사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엄마·자식 관계를 끊는 건 천륜을 저버리는 태도이니 남편이 눈치 안보도록 먼저 배려하는게 현명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막막했는데, 법륜스님의 답변을 듣고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고 행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렇게 스님 말씀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남편의 병도 치료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회복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크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