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전국연속 100회 강연 현장에 왔습니다. 즉시 묻고 즉시 답하는 즉문즉설 형식으로 강연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100회 중 22번째 강연날인 오늘은 대전에서 강연이 이뤄졌습니다. 강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매일 오전과 오후로 전국을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식사 하다가 갑자기 코피가 쏟아졌습니다. 희망플래너가 아니라 코피플래너가 되었네요.ㅠㅠㅠ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어느 고등학교 상담사 분의 질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해주는 직업을 가지신 분인데, 막상 본인의 진로가 불안정해서 걱정이라는... 질문하는 순간 함께 있던 청중들이 빵 터졌습니다. 법륜스님이 “자기는 학생 진로 상담해 주고, 스님한테 와서는 자기 진로 상담한다”고 하시자 또 한번 청중들은 크게 웃었습니다.
- 질문자 : 고등학교에서 상담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간제이다 보니까 계약이 될지 안 될지 또 이 직업이 없어진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미래가 굉장히 불안해요. 저도 불안한 상태인데, 학생들은 오히려 저에게 진로상담을 굉장히 많이 옵니다. 제가 확신을 갖고 학생들 상담을 해줘야 하는데 정작 본인인 제가 확신이 없어서 이 직업을 계속해야 되나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청중들 하하하 웃음)
- 법륜스님 : 자기는 학생 진로 상담해주고, 스님한테 와서는 자기 진로 상담 하고... (청중 하하하 웃음) 괜찮아요. 솔직해서 아주 좋네요.
- 질문자 : 네.
- 법륜스님 : 여기서 스님 강연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요. 이때 갑자기 ‘집에서 나올 때 가스 불 안 끄고 나왔나, 냄비 얹어놓고 그냥 나왔나’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죠. 불안은 지금 일이 아닌 미래의 일을 현재로 가져 와서 마치 지금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할 때 생겨납니다. 반면에 괴로움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옛날에 엄마한테 맞았던 일, 누구한테 성추행 당했던 일,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그 일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인데 그걸 생각하면 그것이 나한테는 지금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할 때 생겨납니다.
TV에서 드라마를 볼 때 사람이 죽는 걸 보면 눈물이 나지요. 그런데 TV를 탁 꺼버리면 어때요? 아무것도 없지요. 거기 기계만 하나 덜렁 있잖아요. 그런데 왜 울까요? 내가 거기에 몰두해 있으면 내가 그 장면 속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그 장면에 푹 빠져들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요. 과거의 생각들이 올라와서 거기에 빠져들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요. 미래의 어떤 것도 지금 일어난 일 같이 빠져들면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요. 그러니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지나가 버린 일이예요. 지금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어떤 경우가 됐든 이미 지나가 버리고 없어요.
만약에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도 이미 지나가 버리고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어디에 남아 있느냐? 그때의 마음의 상처가 디스켓에 딱 담겨서 내 내부에 보관하고 있어요. 그러다 그때 생각을 하면 비디오가 딱 켜져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정이 욱 올라오는 거지요. 어떤 남자가 내 손을 잡으면 어릴 때 성추행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때가 연상 작용이 일어나면서 그 장면이 확 떠오르니까 이 남자는 손만 잡았는데 나는 벌써 성추행을 당할 때의 무서움이 일어나면서 극렬하게 반응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데 엄청나게 장애가 되는 거예요. 상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무 놀라게 되는 것이고요.
지나간 과거의 많은 상처들을 여러분들이 간직하고 있고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현재 삶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참회 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한 기억만 있지 거기에 감정적인 반응은 안 일어나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에 늘 빠져듭니다. 생방송 안 듣고 계속 옛날 것만 찾아서 본다 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 보면 앉으면 내내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술만 한 잔 먹으면 옛날 얘기하잖아요. 옛날 비디오를 꺼내 계속 돌려보는 거예요. 나이가 오십인데도 아직 열 살 때 그 얘기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지나간 과거를 지금으로 끌고 오지 않으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오지도 않는 미래를 지금에 끌고 오지 않으면 근심 걱정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알아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항상 습관이 앞서서 작용을 해버려요. 그러나 이런 기본 원리를 알게 되면 이것은 실재가 있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 환영을 보고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죠. 그래서 지금에 깨어 있어라 하는 겁니다. 환영 속에 살지 마라.
질문하신 분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 나가서 직장에 충실하면 돼요. 그게 뭐 임시직이든 정규직이든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다만 매일매일 생활하면 돼요. 내년에 짤리겠다 해도 내년 되면 그냥 연결될 수도 있고, 연결될 거다 해도 잘릴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짜르고 연결하는 것을 내가 해요, 다른 사람이 해요? 다른 사람이 하지요. 그건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일이 벌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요. 그래도 짤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상황이 일어나면 갈 걸 대비해서 다른 직장 몇 개 정도만 체크해 놓으면 돼요. 안 그러면 조금 쉬면서 그때 가서 찾으면 돼요. 몇 년 돈 벌었는데 한 달쯤 쉬어도 괜찮아요. (질문자 하하하 웃음) 그러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생긴다... 스님 얘기 듣고 어떤 생각이 들어요?
- 질문자 : 현재에 충실하자 항상 다짐은 하는데 막상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 법륜스님 : 쉽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나는 안 된다 이렇게 포기해야 될까요? ‘쉽지 않다. 안 된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불안이 일어나면 ‘어, 내가 또 환상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해야 해결이 되지요. ‘쉽지 않다’ 든지 ‘깨어 있어야지’ 이런 얘기는 도움이 안 돼요. 환영을 ‘환영이구나’ 사로잡힘을 ‘사로잡힘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사로잡히면 근심걱정이 일어나지만 사로잡힌 줄 알아차리면 근심걱정이 사라지지요. 넘어지면 ‘넘어졌구나’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지 ‘안 넘어져야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안 넘어져야지’ 이런 생각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열심히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졌구나’ 하고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일어나서 또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걸어가면서 ‘넘어지면 어떡하나, 넘어지면 어떡하나, 넘어지면 어떡하나’ 그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 질문자 : 감사합니다. (웃음)
질문자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습니다. 청중들의 큰 박수가 이어집니다. 가벼운 대화 속에서 삶의 지혜가 깊이 베여있었습니다. 불안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서 지금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네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이미 지나가고 없다. 정말 명명명 명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슴에 콕 새겨두었습니다.
마지막에 현실에서는 잘 안 된다는 질문도 참 좋았습니다. 답은 알고 있지만 늘 우리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이니까요. 하지만 스님의 일갈이 참 명쾌했습니다. 넘어졌으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지 ‘안 넘어져야지, 왜 넘어졌을까’ 이런 생각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요.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그렇게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라... 아, 정말 단순하고 힘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도 오늘부터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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