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륜스님 즉문즉설

늦은 입대, 21살 선임 괴롭힘 견딘 군생활 비법 [희망블로거페스티벌]

저는 29살에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8살 차이가 나는 21살 선임을 만나 정말 군생활 다운 군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ㅠㅠㅠ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처음 100일은 너무나 힘겨운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수행법’이 담긴 책 한권을 계기로 제 군생활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29살 이등병의 군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마침 오늘 일요일이여서 군인들이 인터넷을 많이 할 것 같네요. 군생활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어봅니다.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29살이 되고 나서야 허겁지겁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의 5주간 군사훈련은 걱정했던 것보단 나름 행복했습니다. 가끔 버릇 없는 조교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예의 바른 조교들의 친절한 통제와 나이는 어리지만 같은 생활관 전우들과의 우정도 싹텄고, 무엇보다 밤10시에 취침해서 새벽6시까지 잘 수 있는 충분한 취침시간, 그리고 규칙적인 식사 모두가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고통의 시작은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였습니다. 덜컹거리는 군용트럭 짐칸에 실려 도착한 자대는 다음날 있을 훈련준비로 시끌벅적였습니다. “신삥 왔다!”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고, 앞으로 생활하게 될 3포대 행정반으로 들어갔습니다. “29살입니다.” 했더니 열댓명의 선임들이 제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거짓말 하지마, 민증 까봐.” 해서 민증을 보였더니 "진짜네" 하며 민증을 그만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 중 한 선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는데, 바로 저의 맏선임이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막내 생활만 1년을 했고, 후임을 1년이나 기다렸는데… 고작 들어온 후임이 29살이라니…” 하며 절망했다고 합니다. ㅠㅠㅠ 절망할 만도 하지요. 다소 미안한 마음을 안고 29살의 이등병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맏선임은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이었습니다. “나이가 29살이나 쳐 먹고 왜 이리 행동이 굼뜨냐” 부터 시작해서 잔소리가 쌓여 갔습니다. 하루는 생활관 청소를 마치고 점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임이 들어오더니 "청소 똑바로 했느냐" 물어서 "예, 그렇습니다" 했더니, TV 선반 뒤에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스팀 기계에서 먼지를 손가락으로 묻혀내더니 "이게 청소한거야?" 하며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결국 점오 마치고 다시 청소를 해야했고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몇 번을 복창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선임의 기분이 안 좋을 때 마다 자주 일어났습니다.ㅠㅠ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저한테 욕을 하고 있는 친구가 21살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군대와서 정말 제대로 당하는 것 같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교 경전 중에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는 구절이 있는데, 사회에 있을 때는 아무런 의미없이 다가 왔던 그 구절이 얼마나 간절해지던지요.

첫 야간 근무를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30분 전에 당직자가 깨우면 신속히 일어나서 환복을 하고 10분 전에 선임 총까지 꺼내서 챙겨 두어야 합니다. 이 때 선임보다 환복이 늦거나 선임보다 늦게 행정반에 들어가면 큰일니다. 어떤 욕을 얻어먹을지 모릅니다. 바짝 긴장을 했던 탓인지 제 근무시간인 새벽2시… 당직자가 생활관 문을 여는 소리를 듣자 마자 일어나서 총알처럼 빠르게 환복을 하고 행정반으로 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선임은 미리 전투복을 입고 잤는지 저 보다 더 빨리 행정반에 나와 있는 겁니다. ‘아… 어떻해… 큰 일났네’ 식은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곧 “개념이 없다. 29살이 되어서 왜 그렇게 느려터졌냐?”는 갈굼이 쏟아집니다. 새벽2시 초소에 나가서 보름달을 보며 2시간 동안 개념 없다는 소릴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21살짜리 선임한테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에 잘 때까지 행동 하나하나 사사건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군생활을 180도 바꿔 준 한 권의 책을 만납니다. 「힘내라 청춘」... 면회를 온 선배가 주고 간 이 책을 받아 든 이후, 괴로울 때 마다 저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고 낡아질 때까지.


책 속에서 한 병사가 법륜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저를 유독 괴롭히는 선임이 있습니다. 저를 괴롭힐 때나 제가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 표정이 안 좋으면 “표정이 썩었다”고 뭐라 하고, 심할 때는 때리기도 합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중에 전역해서 회사에 취직하면 상사가 생길 테지요. 그런데 그때 가서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표를 던지고 나와 버리면 내 손해가 막심하잖아요. 그러니 그런 걸 지금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선임이 나에게 어떻게 해도 그 선임에게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는 것을 목표로 세워보세요.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임이 나빠서 화가 나는 줄 알았는데, 내가 화를 일으키는 거구나. 일체유심조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 선임을 스승으로 삼아서 공부해 보세요. 그러면 엄청난 은혜를 입을 거예요. 군대에서 이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수행생활 10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겁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5리를 억지로 끌려가지 말고 10리를 가주는 마음을 내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군대에 끌려와서 억지로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노예가 되지만, 군대 온 것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적극적으로 전환시키면 내가 주인이 됩니다.”


책 속에 이 구절이 저의 눈을 멀게 하고 저의 귀를 멀게 했습니다. 29살 이등병에게 21살 선임의 집요한 괴롭힘은 너무나 저를 힘들게 했지만,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깜깜한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는 연습을 해보라니… 선임을 내 인격 수양을 시켜지는 코치로 생각해 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제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 해결법이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희망의 빛으로 여겼던 것은 21살짜리 선임의 전역 날이었습니다. ‘저 친구가 전역하는 순간 난 해방이다’ 이 생각 밖에 못했습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글을 읽고 나서 진정한 해방은 저 친구가 전역하는 날이 아니라 저 친구에 대한 나의 불만을 내려놓는 날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의 군생활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못살게 구는 이런 사람과도 어떻게 좋은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 생각을 내려놓고 저 선임이 하라는 대로 한 번 해보자.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때리면 맞고, 그 선임이 어떻게 해도 그 선임한테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또 욕이 날라오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 때마다 “어, 또 내가 경계에 걸려서 넘어졌구나!” 하며 제 모습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화가 나면 바로 알아차리고, 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 내가 이럴 때 화가 잘 나는구나’ 제가 어떤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체크해보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더 조심하게 되더라구요.

선임도 저의 변화된 모습을 눈치 챘는지 저에게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임이 라면을 먹고 싶다 하길래 PX에 달려가서 라면을 싹 대령해 드렸더니, “야, 너 정말 많이 변했다” 하며 칭찬을 해줍니다. 내일 휴가를 나간다고 하길래 전투화를 반짝반짝 닦아 드리고, 전투복에 칼각을 잡아 드렸더니, “어쭈~” 하며 웃습니다. 지적을 할 때마다 제일 먼저 “예, 죄송합니다.” 부터 했더니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저의 군생활은 점점 행복으로 변해갔습니다. 저를 안 좋게 봤던 병장들도 “형~” 하며 농담을 던집니다. 제가 경직된 자세로 “왜 그러십니까. 여기는 군대입니다. 형이라고 절대 부르지 마시지 말입니다.” 했더니, “형, 나는 다음달에 전역이야. 민간인으로 봐달라구.” 하며 사적인 자리에서는 존댓말을 쓰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 오해가 있었던가 봅니다. 우리 부대에 저 보다 앞서서 이곳에 온  29살짜리 이등병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이 대우를 안 해준다고 선임이랑 한 판 싸워서 하극상으로 영창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끝끝내 아무도 건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부대에 계급 질서가 많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들어온 29살짜리 이등병은 초반부터 군기를 잡아서 족쳐 놓아야 한다는 모종의 결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휴~ 이런… 제가 바로 그 타켓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어려운 공격들을 지혜롭게 대처했고, 나중에 선임들과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모범병사로 발탁되어 각종 포상휴가를 많이 받아서 또다시 선임들의 안 좋은 눈총들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역하는 순간까지 오히려 인생의 선배로서 전역하는 선임들에게 진로 상담도 해주고 고민상담도 많이 해주었네요. 초소 근무를 저랑 같이 나가고 싶어하는 선임들도 있었습니다. 한 밤 중에 2시간 가량 초소근무를 같이 서면 저에게 여러 가지 인생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법륜스님의 책에서 읽었던 여러가지 상담 사례들을 떠올려서 선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임들은 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29살에 군대가서 21살 선임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괴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선임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 보는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 항변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화가 안 나는 마음공부를 한다는 차원에서 군생활에 임하면 군대만큼 마음공부 하기 좋은 곳이 없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 군대가 내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지만, 내가 집에 안 가겠다고 해버리면 아무리 군대라도 내 자유를 속박할 수가 없습니다. 군대라는 내게 주어진 조건을 내 삶에 유리하게 적용시키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괴롭히는 선임을 만나도 이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그 선임을 나의 마음공부 스승으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갈등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코치 역할을 그 선임이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럼 하루가 다르게 그 선임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제 경험입니다.^^

이 맘 때쯤이면 호국훈련이 있겠네요. 저도 작년에 호국훈련 하느라 추위에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나네요. 외롭고 힘들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해보세요. 언제 이런 추위를 경험해 볼 것이며, 언제 이렇게 체력단련을 해보겠습니까. 오직 젊은 시절 군대에서만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겁니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오늘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60만 국군 후배들이여, 힘내라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