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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아랍 시민혁명 교훈은 북한 '민심(民心)' 잡기

  아랍지역에 휘몰아친 시민혁명 열풍이 ‘민심’ 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시민들이 수십 년간 압정을 행한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물러났다고 민주주주의가 자리 잡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민들이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저항을 조직하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거보를 내딛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 튀지지의 재스민 혁명

 '재스민 혁명',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에서 내전으로 발전한  ‘재스민 혁명’ 은 아랍지역의 정치변동을 일으키는 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재스민 혁명’ 은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는 점에서 20세기 말에 진행된 동아시아․남미․동유럽 민주화와 21세기에 발생한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등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중동지역이 주목된다. 예멘, 알제리, 시리아, 바레인, 요르단,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 중동의 인접 국가들이 ‘재스민 혁명’ 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 지역 독재의 상징이기도 한 사우디아라비아마저 변화의 바람에서 비켜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스민 향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얀마 같은 동아시아 국가나 대다수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대중에게로 퍼져 나가 민주주의의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힘이다.

 북한 토양의 진단 - 계획경제의 파산이 남긴 것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아랍 시민혁명이 촉발된 배경에는 구조적으로 경제적 침체와 실업, 소수 지도층에 의한 자원의 독점적 배분과 빈부격차의 심화, 독재정권의 감시와 억압기제로 인한 정치적 자유의 부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에도 이 같은 요인이 존재한다. 실질적으로도 북한의 경제적 위기나 정치적 억압은 아랍 국가들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심각하다. 물론 이러한 요인의 존재 자체가 곧바로 시민혁명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요인이 지닌 상대적 의미와 작용 메커니즘이 다를 수 있고 무엇보다 사회구조나 대외환경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요인들의 존재는 북한에도 잠재적이나마 대중적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북한 경제는 성장의 동력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만성적 식량위기와 에너지 부족, 생산설비 노후화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제도적 차원에서도 시장 지향의 개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폐쇄적인 체제의 속성상 대외경제 개방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라진선봉자유무역지대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특구조성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현재 그나마 그럭저럭 가동되고 있는 특구는 개성공단이 유일하다. 최근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에 발맞추어 라진선봉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가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북한경제 회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외부자본의 대규모 유입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각종 불법행위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과 제재를 자초하고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계획경제는 사실상 파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신 자생적인 시장경제활동이 그마나 주민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있다. 사실 북한에서 시장경제활동은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면서 북한경제 성장에 일정하게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이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우려해 일부 시행했던 개혁조치조차 철회하는 상황에서 시장경제활동은 그야말로 자생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희망을 시장경제활동에서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지닌 자원은 군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이 배타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인민경제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1차 상품을 수출해 식량과 설비를 도입하는 후진국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음을 감안하면 주요 광물의 수출은 매우 중요한 외자유입 또는 경화획득의 통로이다. 하지만 주요 광산은 군부나 당이 장악하여 자신들의 기관 유지와 사적 축재를 위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이용하는 실정이다. 대다수 주민의 궁핍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정권과 체제 유지를 위한 핵심 기관이나 그곳에 속한 소수 권력층이 정치적 차원에서 자원을 독점적으로 배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활동은 주민 사이에서도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도 지배층의 특권적 경제영역이 존재하였지만 사회 전체적 차원의 빈부격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이라는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전, 공식적인 계획경제가 그나마 작동하던 1990년대 초에는 최하위 서비스 부문 사무원과 최상위 당부장이나 내각 상급의 보수 차이가 7배 정도였다. 주택 배정부터 소비재 공급까지 국가가 제공하는 다른 혜택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계획경제가 작동하는 한 전체 주민 간 빈부 차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계획경제가 사실상 파산하고 시장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국가공급에 의존하던 대다수 주민이 궁핍화의 길을 걷는 동안 수백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부자들이 등장하였다. 일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수입업자-도매상-소매상 간에 분화가 일어나고 취급 품목과 수익도 자본의 크기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제도 미비에 따른 불확실성은 대자본의 독점적 수익구조를 강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 북한은 시장경제활동의 제도화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사적 관계망이 시장경제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각종 자원의 통제권․단속권․인허가권을 가진 관료들의 부패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 북한의 장마당

 북한의 정치과정에도 ‘민심’ 은 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독재정권의 통제․감시, 물리적 억압 기제와 조치들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당과 각종 사회단체에서 행하는 조직․사상적 통제와 인민보안부․국가보위부 같은 공안기관이 가하는 법적․물리적 탄압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 이후 국가공급체계가 무너지면서 당의 조직·사상적 통제가 사실상 형식놀음으로 전락하고 대신 공안기관의 물리적 통제와 억압이 주요한 주민통제 수단으로 등장했다. 당생활총화보다 각종 비사회주의 검열이 판을 치고 있다. 한마디로 주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기회와 방법을 박탈당했다고 할 정도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지배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이면 주민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 불만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도  ‘재스민 혁명’ 이 확산되고 있는 아랍지역과 마찬가지로 대중적 불만이 상당히 팽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공론화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잠재적 형태로 정권에 비판적인 ‘민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튀니지에서 발생한 한 청년의 분신과 같은 적절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 1990년 전후 동유럽 국가와 현재의 아랍지역에서처럼 철권통치를 유지하던 독재자들이 민심에 무릎 꿇는 일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개연성은 충분하다.

  상황이 이렇기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민심’ , 즉 여론의 향배를 항상 주시하면서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주민의 마음을 잡기 위한 기제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아랍지역의 민주화 열풍에서 확인되고 있듯이 정권과 체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민심’ 임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자신들이 강조하는  ‘군중노선’ 에서 이미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북한 정권은 사상혁명을 강조하고 당생활총화 등으로 주민을 세뇌시키면서 다양한 물리적 억압기제를 구축하여 주민의 사상과 의식, 일상적인 생활세계까지 철저히 지배하고자 노력해왔다. 즉 북한 정권이 주민에 대한 통제 메커니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민심’ 이 정치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9년 화폐개혁과 함께 시행하려고 했던 시장폐쇄가 주민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고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박남기 당 재정계획부장이 숙청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북한 정권은 권력의 3대 세습을 추진하면서  ‘민심’ 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후계자가 정당성을 확보하여 권력기반을 창출할 수 있을지는 근본적으로 주민들의 동의와 지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민심’ 을 장악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법적․조직적․사상적으로 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생활향상으로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지기반을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2010년 1월 1일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 는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면서  “민심을 틀어쥐고 민심에 맞게 사업을 전개”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다시 한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 면서  “민심을 틀어쥐고 그에 맞게 사람과의 사업을 심화시켜 나가며 인민들의 생활상 문제들을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한다” 고 거듭 강조하였다. 북한 정권이  ‘인민생활 향상’ 을 강조한다고 해서 국가적인 자원 배분이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조정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 정권도  ‘민심’ 을 의식하여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같은 시장개혁과 2009년 화폐개혁과 같은 국가의 경제적 지배력 강화, 즉 지배집단의 특권강화와 인민생활 향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누가 북한 민심을 잡을 것인가?

  북한에도  ‘민심’ 이 존재하고 정권은 그  ‘민심’ 을 장악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누가 얻을 수 있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 변화뿐 아니라 통일의 향배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김정일 정권이 특권적 지위에 따른 자원배분을 지속하면서 억압적 기제를 강화해 사회경제적 통제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강제로 장악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은 현재와 같이 그럭저럭 버티기를 지속할 것이고 그러면 소위  ‘북한 문제’ 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핵개발도 이에 기여할 것이다. 그 최대 수혜자는 김정일 부자와 측근의 권력 엘리트들일 것이다. 최대 피해자는 1차적으로 북한 주민이고 2차적으로는 남한과 국제사회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주민의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이 정치적 저항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점증하기 때문이다. 즉 결국에는 북한 정권과 체제의 안정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가와 정권․체제의 불안정이 표면화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북한도 단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어려운 아랍지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비용은 아랍의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클 것이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대남 인식이나 의존도, 내부 군사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독일과 같은 흡수통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의외로 낮을 수 있다.

  다음으로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을 통해 주민 생활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마음을 얻으려는’  경우이다. 이때는 북한 정권과 주민 모두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우리와 국제사회도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김정일 정권이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로 북한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이탈하는 가운데, 이를 발판으로 북한 지배블록 내의 개혁지향적 세력이 강경세력을 적절히 누르며 주민의 요구를 수용한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남북관계나 북미․북일 관계 개선 등으로 북한의 안보우려가 일정하게 해소되는 상황을 전제로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남북관계 개선에 힘입어 남한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아울러 북한이 굳이 핵개발에 매달릴 필요도 감쇄된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평화적인 통일의 전망이 열리게 된다.

  최근 흡수통일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한 후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군사적․재정적 대책을 쏟아내면서, 북한이 완전히 붕괴되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접수’ 할 수도 있다는 인식과 주장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이 그에 부합하는 전형적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독일이 서독의 제도가 동독에 이식되는 방식으로 소위 흡수통일을 달성한 것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과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즉 서독이 동독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통일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우리 사회 일각의 기대처럼 북한이라는 국가가 일시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의 통합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면 통일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역으로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미래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여긴다면 통일은 현실적인 의제로 급부상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통일이 현실화되기 이전이라도 북한 내부의 정치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은 가장 중요한 대북정책의 목표일 수 있다. 북한의 현 상황을 타파하면서 개혁개방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열쇠를 북한 주민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접촉하고 교류해야 한다. 북한 주민과 접촉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간접적으로 접촉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대북전단 살포나 대북방송과 같은 심리전이다. 북한 당국이 대북전단 살포나 휴전선상의 대북방송 재개 등에 매우 민감하고도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방식이 일정한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식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이라고 했다. 직접적인 접촉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그 방법은 교류와 협력이다. 과거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확대되면서 북한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의 숫자가 금강산 등 관광인원을 제외하고도 연간 18만 명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연간 18만여 명의 우리 국민이 북한 전역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북한 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을 접하거나 우리와의 교류협력에 참가하는 북한 주민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 실효성은 대북전단 살포와 비견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교류협력, 특히 경제협력 과정은 북한 주민들의 대남 의존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이다. 2010년 기준으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은 121개이고 거기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4만 6000여 명에 달한다. 2008년 북한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개성시 전체 인구는 30만여 명이고 그 가운데 도심 인구는 19만여 명이다. 북한의 가구당 인구를 4명으로 본다면 개성시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2 또는 개성시 도심인구의 대부분이 개성공단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의 변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현재 한반도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두고 김정일 정권과 남한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대북제재 일변도의 정책기조하에서 사실상 북한 방문과 교류를 차단하면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 확대는 불가능하다. 이는 북한의 변화를 더욱 늦추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제재로 식량부족이 심화되면 굶주리는 것도 주민들이며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도 주민들이다. 대신 북한 정권은 정치적․사회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거나 긴장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외부 위협론이 적극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갈등이 내부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오히려 통합을 제고시킬 수 있다. 핵개발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랍지역의 시민혁명과 민주화 바람을 보면서 북한에 이 같은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그럴수록 북한 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확대할 수 있다면 북한 정권과의 대화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면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끝)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현안진단 제19호>에 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