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작년 한해를 되돌아보며 2010년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던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연평도 포격 이후 떠들썩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설연휴 명절을 지내며 이제는  조금이나마 고요한 일상을 맞은 듯합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 차분한 마음으로 성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벼랑 끝에서 제발 반환점을 돌아주길 바래봅니다.


연평도에서 판문점으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얼룩진 2010년은 1953년 휴전 이래 남북관계에서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60년간 괄목할 경제성장과 민주화 성과로 선진국 문턱까지 다가선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허약한 평화의 기초 위에 서 있는가를 절감하게 해주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다만 휴전상태일 뿐이라는 사실과 그나마 휴전상태를 지켜주던 정전협정 체제마저 북한에 의해 무실화된 지 오래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작년의 무력충돌이 확전으로 치닫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역설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우리 군도 심기일전하여 국방태세를 다지게 되었다. 이제 이러한 대증적(對症的) 조치와 함께 근본적인 조치도 강구되어야 한다. 유사사태의 재발을 막고 한반도 평화의 튼튼한 토대를 놓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곧 판문점에서 남북한 간 고위급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작년 9월에 이어 4개월 반 만에 군사실무회담이 개최되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기대가 조성되고 있다. 당시에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았으며, 실제로 쌍방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설전만 벌이고 끝났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지난해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남북한이 연초부터 국면 전환을 위한 의중을 공개적으로 조금씩 주고받은 바도 있지만, 지난 1월 18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개최 문제가 비중 있게 다루어졌고, 이를 배경으로 이번 회담이 성사되었다는 인식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모두의 시선이 연평도에서 판문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워싱턴 G-2 정상회담과 판문점 군사실무회담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였던 냉전 구질서가 붕괴된 지 20여 년, 미국의 리더십 아래 전세계적 규모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을 넘기면서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형성되고 있다. 과거의 미소 양극체제는 적대관계가 기본이었지만 미중관계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상호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의 회담은 G-2회담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은 특별히 ‘세기의 회담’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한 중국과,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경제대국인 미국이 양국관계와 세계질서를 이끌어가는 기본전략에 관해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양국은 상호협력의 기본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확고하였고, 과거 미소 양극체제처럼 대결구도로 빠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였다. 중국의 인권문제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 문제 등 민감하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이슈도 있었지만 양국은 인내하면서 구동존이(求同尊異)의 자세로 21세기 새로운 국제질서를 대결이 아닌 협력을 통해 구축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G-2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파고는 적어도 향후 10년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미중 정상이 남북대화를 촉구했다는 것은 심대한 의미를 가진다. 2010년 한반도에서 발생한 남북 간 극심한 대치와 적대상황은 미중 간 대립관계를 부추겨 이로 인해 G-2가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헝클어버릴 위험성이 있으며, 따라서 한반도의 긴장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중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양국 정상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다음 달 열릴 것으로 보이는 판문점 군사실무회담은 한반도의 긴장 해소라는 국지적 과제를 다루지만 그 결과는 G-2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협력적 관계로 이끌고자 하는 미중의 전략과도 연결된 중대한 회담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100년 전 발칸반도의 사소한 불씨가 강대국 간 갈등으로 번져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재앙으로 이어진 역사적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번에 열리는 판문점 군사회담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는다면 지난해 G-20 서울회담 주최에 이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선도하는 나라로 그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판문점회담  ‘서울 불바다 발언’ 전후 정세의 재구성

1994년 3월 판문점에서는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있었다.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분단사에서 유명해진 남북회담 중 하나이다. 당시는 1차 북핵위기가 최고점을 향해 치달을 때였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곤두박이칠 때였다. 북한은 대미협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였고, 우리 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구하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상황인식과 대응에 현재와 유사한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북한과 악수할 수 없다”는 자세로 북핵 폐기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출범 직후 1993년 5월 북한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제의하였다. 이에 북한은 통일문제 해결을 위하여 쌍방 정상이 만나는 문제와 남북 사이의 현안 등을 타협하기 위한 특사 교환을 역제의하였으며, 양측의 제의가 절충되어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10월부터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실무대표접촉은 10월에만 3차례 개최되었지만 양측 주장이 팽팽하고 전제조건 논쟁이 벌어져 이후 4개월여 중단된다. 이 기간에 북한은 대미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하였고 우리 정부는 선(先)남북대화론으로 이를 견제하며 대북제재 주문 등 강경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러나 12월 북한이 핵사찰 재수용을 미끼로 미북협상을 요청하자 미국은 1994년 2월 뉴욕접촉을 통해 남북대화 재개를 조건으로 미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합의를 해주게 된다.
      
미북합의 직후인 3월 남북대화가 재개되지만 북측의  ‘불바다 발언’을 끝으로 결렬된다. 남북대화 결렬 직후 대북강경론이 드세지고 전쟁위기로 치닫지만 카터의 방북으로 국면이 전환된 후 10월 제네바합의 때까지 우리는 한반도 문제 논의의 주도권을 미국과 북한에 내어주고 그들 간의 협상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한반도 상황에서 우리는 조연에 머물렀고 남북관계도 냉각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북한은 우라늄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IAEA 사찰관의 복귀를 허용한다는 미끼로 핵협상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선(先)남북대화나 북한의 진정성 확인을 조건으로 협상국면으로의 조기전환을 견제하며 강경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당시와 비슷하다. 선(先)남북대화론이 핵협상국면 전환을 견제할 수는 있지만 일단 남북회담이 개최되면 핵협상 재개는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정황마저 유사하다.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회담을 통해 1994년 3월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 앞에 놓인 2011년 2월의 당면 과제이다.


판문점 군사실무회담에 거는 기대

이번 남북회담에서 한반도 긴장완화나 평화와 관련된 본질적 문제를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에 대한 논의만으로도 긴장감은 충분하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북한에 요구하는 것도, 북한이 응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회담 이후 후속될 다양한 협상국면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담 전후 상황관리를 잘하는 일이 보다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반성문을 받는 일에 감정적으로 흥분하여 ‘불바다 발언’식으로 회담이 흘러간다면 한반도 상황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 1994년의 교훈이었다.

이번에 북한이 반성문을 제대로 쓴다 해도 향후 실천되지 않으면 실질적 의미는 없다. 과거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이나 1996년 강릉 잠수함사건에 대해 공개사과한 후에도 북한은 반복해 도발하고 있다. 북한을 개과천선시킨다는 식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전략적 자세가 아니다. 북한의 진정한 태도변화는 남북관계의 적대적 구조가 본질적으로 변화되어야 가능하다.    

북한의 사과가 불필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북한 정규군이 공개적으로 남한영토를 포격하고 민간인까지 살상한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의 필요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북한에게 통렬한 반성문을 받아내 5 · 24조치 이전으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데 그치기보다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고 비핵화와 긴장완화를 통해 21세기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주도적으로 기여해나가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전에 물밑접촉 등을 통해서라도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북한으로서도 수용할 만한 대안과 이후 후속회담들에 대해 남북 간에 ‘진정성 있는’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이 모두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하게 냉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진단위원회에서 발행할 글입니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벼랑 끝에서 이제 반환점을 돌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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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pe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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