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명쾌한 인생 상담 강연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이 이번엔 ‘투표하기 싫다’는 대학생의 질문에 응소했다. 이같은 질문에 법륜 스님은 “최악과 차악 밖에 없다고 투표를 안 하게 되면 결국 세상을 최악에게 내맡기게 된다” 며 믿을 사람이 없어 투표하지 않겠다는 대학생에게 “누가 더 나은가를 보지 말고, 누가 더 나쁜가를 보고 그 사람을 빼고 찍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즉문즉설 강연은 지난 31일, 홍익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홍문관에서 열렸다.
“저는 대학생입니다. 주변 친구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취업, 연애, 학점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요. 총선이 다가오니까 TV나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꼭 해야 한다는 독려 캠페인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투표를 왜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제는 투표하라는 얘기도 듣기 싫습니다. 투표도 하러 가기 싫고요. 투표를 왜 해야하는지 이유는 얘기하지 않고 무조건 투표하라고만 합니다. 과연 우리가 투표를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답답합니다.”
“우리에게는 투표를 할 자유도 있지만 안 할 자유도 있어요. 투표를 한다고 칭찬할 필요도 없고, 안 한다고 야단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투표를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을 물립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 국민은 대리인을 뽑아서 자신의 권한을 그에게 위임하는 거예요. ‘네가 우리를 대신해서 권한을 위임받아 국가 경영을 좀 해라’는 건데, 이것을 ‘대의 정치(代議 政治, representation)’라고 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한 사람한테만 주면 그가 횡포를 부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삼권분립 정신에 입각해서 입법권은 국회, 집행권은 행정부, 사법권은 사법부로 분산시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 5000년 동안 왕이 통치하는 국가에 살아온 습관 때문에 지금은 법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명시해 놨는데도, 관습적으로 우리가 채용한 직원인 대통령을 왕인 양 착각합니다.
대한민국을 회사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주주, 즉 회사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주주 모두가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는 없으니까 주주총회를 개최해서 대표이사를 선출하고, 그 대표이사한테 회사경영을 위임합니다. 만약 그 대표이사가 회사경영을 신통치 않게 하면 다음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바꿔야하지요. 그런데 소액주주들은 주주 총회에 참석해봐야 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 주주총회에 빠져버려요. 그러니까 주식을 조금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 마치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주식의 5퍼센트를 가지고 또 회사를 움직이는 거에요. 또 언론을 장악하여 여론을 주도하면 국민들은 거기에 세뇌되어 주권행사를 하니까 결국 나라가 다수 국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년 동안 부산에서 새누리당이 대선이나 총선에서 60퍼센트 득표하고 반대당들이 합해서 40퍼센트를 득표했다면 열 명 중에 6명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네 명이 반대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대한 4명의 의사는 지난 20년 간 한 번도 국정에 제대로 반영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걸 사표(死票)라고 하는데, 이는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당에서 지명하면 이미 투표하기 전에 당선은 결정된 것이나 같습니다. 북한 선거와 비슷하지요. 다만 얼마나 지지를 많이 받느냐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이에요.
이러니까 특히 젊은 사람들이 투표하러 잘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라고 해도 투표율이 60퍼센트에 득표율이 51퍼센트라면 전체 열 명 중에 3명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 겁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현 박근혜 대통령까지 득표율과 관계없이 10명 중에 3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은 아무도 없습니다. 총선은 투표율이 그나마 50퍼센트도 안 되는 곳이 많습니다. 투표율 50퍼센트에서 51퍼센트 혹은 52퍼센트 득표했다면 10명 중에 2.5명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됐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려면, 첫 번째로 사표를 방지하는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독일의 경우 정당투표율이 40퍼센트면 거의 40퍼센트의 의석이 배정됩니다. 그러니까 사표도 거의 없고,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고, 석패율(惜敗率)이라고 해서 애석하게 떨어진 사람은 비례대표에서 구제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에요. 두 번째는 가능하면 투표에 많이 참여해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시켜야 합니다. 80퍼센트가 투표해서 50퍼센트 득표했다면, 그래도 10명 중에 4명은 지지했으니까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10명 중에 2명만 지지해서는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하기가 좀 어렵지요.
이런 모순 때문에 정치실망, 정치혐오를 하게 되면, 그래서 투표를 안 하게 되면, 소수의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에 의한 지속적 독재, 다시 말해서 민주시스템에 의해서 실질적인 권력독점이 가능하게 됩니다. 지금 열 명 중에 2혹은 3명의 지지만 받으면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직을 갖고 있거나 언론을 장악한 사람이 조직 관리해서 1명, 언론 관리해서 1명, 돈 풀어서 1명을 잡으면 권력이 그들한테 장악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가 나뉘기도 하지만 연령에 따라서 나뉘기도 합니다. 50대를 기준으로, 50대 미만은 조금 진보적 입장이라면 50대 이상은 보수적인 입장인데, 50대 이상과 미만의 인구수가 거의 같습니다. 옛날엔 젊은이가 많았는데, 요즘은 젊은이가 점점 줄어서 다음 선거에서는 50대 이상이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대 이상은 투표율이 거의 70퍼센트이고, 70대 이상은 거의 80퍼센트인데, 20대는 30, 40퍼센트도 안 됩니다. 인구 구성도 그런데다 여론조사에서는 의사표시를 하는데 막상 투표는 안 하니까, 여론조사에서 보수가 뒤져도 막상 개표해 보면 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투표 안 하는 건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이 국가에 제대로 반영 안 되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불평은 많이 하는데 권리행사는 안 하니까 그런 걸 다 계산해서 정책을 고안하는 겁니다. 특정정당이 왜 노인들을 위한 시책을 많이 내놓겠어요? 노인들은 투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을 위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투표를 해야 합니다. 투표를 안 하면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원하는 사회나 국가를 만들 수 없어요.
2015년 연말에 군사전문기관에서 발표한 군사비 관련기사 보셨어요? 세계에서 무기수입을 제일 많이 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랍니다. 전 세계 무기거래액이 718억 달러, 즉 80조가 좀 넘는데, 그 중에 한국이 78억 달러, 즉 9조 원 정도 수입해서 1위입니다. 1년 치 무기구입 계약액이 그렇다는 겁니다. 무기 구입 분야에서는 우리가 매년 2, 3위를 해 왔으니까 1위 했다는 게 크게 놀랄 일도 아니겠지요. 그 78억 달러 중에 70억 달러가 미국 제품 구입액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남북이 충돌해서 긴장이 고조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금방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긴장만 고조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무기 구입은 안 해도 되는 겁니다. 그렇게 군사비에 예산을 많이 쓰면 여러분의 복지를 위한 비용, 즉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이나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은 후순위로 밀리거나 적게 배정될 수밖에 없겠지요.
돈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개발하는데 24조원이나 써버렸잖아요. 일부 구간만 먼저 개발해 본다든지, 한 두 개 강만 먼저 해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개발을 했다면 반값등록금은 실현됐을 겁니다. 인도처럼 가난한 나라에도 대학의 학비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제가 대학에 보냅니다. 학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래도 못 가는 아이들은 그 아이가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진학을 못 해서 그렇지, 학비 때문에 못 가는 건 아닙니다. 우리로 치면 학비가 1년에 20만 원도 안 드니까요. 그러니까 반값등록금 실현은 제도의 문제이지, 정부가 가진 돈이 없어서 실현 못 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 거냐는 문제, 즉 재정정책의 문제입니다. 이런 걸 법으로 정할 수도 있고, 행정으로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대통령을 뽑거나 그렇게 할 국회의원을 뽑아야 가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평만 하고 투표를 안 하면 문제는 개선될 수 없어요. 그래서 투표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투표하시라는 겁니다. 그래도 안 할 거예요?”
“할 거예요.”
“두 번째는 ‘누구를 찍어요?’ 하는데 어느 쪽이 나은지를 잘 알 수가 없으면 어느 쪽이 더 나쁠지를 봐서 그 사람을 빼고 찍으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투표하는 데 흥이 안 나는 건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에 손해가 좀 덜 나고, 덜 어지러워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우리가 차선책이라도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참정권’은 대한민국의 국채와도 관계되기 때문에 우리가 참정권 행사를 안 하면 사회는 점점 전제국가로 가게 됩니다. 헌법에 우리의 이런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 권리를 행사 안해서 나라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이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겠지요. 우리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권리를 줬는데 권리행사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욕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권리행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투표를 해야 하는데 귀찮다고 기권하면 개선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항상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 조직을 갖고 있는 사람, 돈을 갖고 있는 사람, 이 세 부류가 국정을 주무르는 겁니다. 민주의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독재 같은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민주화하려면, 재벌의 경제독점을 막아야 하는데 지금 국가권력이 재벌에게 포로로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럼 이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힘, 시민의 힘’입니다. 시민이 선거를 통해서 재벌의 하수인이 아닌 사람을 선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이 사표방지를 해야 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혹시 정당과 개인을 따로 찍어도 된다는 거 아세요? 예를 들어 내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면 진보정당을 찍되, 진보정당 후보자를 찍으면 사표밖에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은 차악을 선택해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예.”
“사표를 막기 위해서는 정당은 내가 원하는 차선을 찍고, 개인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투표를 안 하거나, 지지하는 정당대로 개인도 그냥 찍으면 표가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당 지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은 여당이 되는 겁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의 반대가 많았는데도 지금까지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원이 더 많이 당선되었지요. 그러면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자기들이 지지받았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변경하지 않을 겁니다.
첫째는 제도의 모순인데, 우리가 그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이 제도를 유지하면 유리한 사람이 안 바꾸려고 하는 겁니다. 이 제도 하에서라도 다수가 참여해서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해서 과반을 막아내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에 표가 왜곡되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자체를 바꿀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번에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헌법에 불일치하는 선거법이었기 때문에 선거법을 강제로 변경해야 했는데, 여·야 이해관계 때문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구역 몇 개만 조정하는 걸로 끝내버렸지요.
여러분 개인의 삶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사회라고 하는 그릇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속에서 개인적인 몸부림, 우리끼리 경쟁하고만 있습니다. 이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갈수록 의식이 부족해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좋은 의미의 사회변화의 동력은 다 젊은이로부터 나왔는데 지금은 젊은이로부터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젊은이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안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의식이 부족하고 둘째, 투표에 참여를 안 해 버리니까요.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를 살펴보았을 때, 혁명을 일으킬 때인가? 불만이 많지만 혁명을 일으킬 때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이 시스템에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투표를 안 하면 변화의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대학생 여러분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연인과 같이 손잡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한 뒤에 데이트해도 되잖아요. (모두 웃음) 안 그러면 투표하는 사람한테 5만 원씩 주고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5만 원씩 벌금을 내라고 하든지요. (모두 웃음) 그렇게 투표를 하라고 강제하거나 유혹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자발적으로 하는 게 의미가 있지요.
그러면, 하긴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선이 있으면 좋고 차선이 있어도 좋은 데, 차선도 없을 땐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당과 개인을 나눌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당은 비례대표이니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찍고, 개인은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지혜를 성경에서는 뱀 같은 지혜라 하고, 우리 말로는 영리하다고 합니다. 착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영리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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