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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빌린 돈 안 갚는 동생들, 제가 미쳐서 죽을 지경" 법륜 스님의 답변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800여 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2016년 첫 번째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5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답변에 강연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동생들이 너무 미워서 괴롭다고 하소연한 할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할머니는 며칠에 걸쳐 질문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며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펼치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많았지만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10원 한 장 빌리거나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말하기를 빚을 얻어 장사를 해 보았더니 잘 되어서 조금만 돈이 있으면 다시 해 보겠다고 해서 제가 ‘한 번에는 못 주고 나누어서 주겠다. 너희들도 내 사정을 잘 알지 않느냐. 이자는 안 주어도 좋으니 본전은 꼭 갚아라. 잘 살아봐라’ 하고 약속한 지가 벌써 오래 됐습니다. 강산이 몇 번 변했어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 동생들은 본전도 갚지 않으면서 오히려 ‘욕심 많다. 지독하다. 죽으면 갖고 가느냐’ 하면서 여기저기 입질을 하고 다니니... 저는 다투기도 싫고 해서 왕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안 보고, 안 들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분노가 치밀고 한이 쌓입니다. 남편은 악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속을 뒤집는 말만 던지며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저는 여태 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인덕이 없으면 좋은 일을 해도 지탄만 받는다던데 제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을까요? 제가 속이 좁고, 이해만 바라기 때문일까요? 스님, 저 좀 깨우쳐주세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73세입니다.”

 

 

“제가 하나씩 물어볼 테니까 대답을 해 보세요.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못 받았다’ 이게 요점이지요? 어쨌든 동생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그만두고 본전만 갚으라고 했는데, 동생들이 안 갚았다는 게 요점이잖아요 그런데 빌려간 돈을 안 갚았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동생들이 ‘돈 좀 준 걸 갖고 뭘 그러느냐? 동생한테 줬으면 그만이지!’ 그런다는 거예요?” 

 

“그런 것도 아니고요. 아주 정말 화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욕심이 많다. 지독하다. 죽을 때 돈 가지고 가느냐, 그것 없어도 사는데’라고 한대요. 또 중간에서 이리저리 말을 전하며 입질하는 동생이 형제간에 이간질을 하고 다니니까 제가 미쳐서 죽을 지경입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주면서 이자는 됐고, 본전만 달라고 했는데, 본전을 안 주는 것까지도 괜찮지만 동생들이 질문자더러 욕심이 많다며 도리어 욕을 한다는 거네요. 안 갚는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다가 욕심이 많으니 어쩌니 하면서 내 욕까지 해서 분하다는 것이지요?”

 

“예. 분하다기보다도 화가 나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뭐라고 그럽니까? 

 

“남편은 뭐 그냥... 앞에서 말했잖아요. 대화도 안 된다고요. 남편은 그냥 놀기만 좋아하시고, 양반이라 편하게 사시거든요.”

 

“질문자가 벌어서 남편도 먹여 살렸어요?”

 

“예, 그랬으니까 남편이 이런 문제에 관여를 못 하지요. 얼마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남편 모르게 동생들한테 빌려줬어요?”

 

“몰래 빌려주지는 않았어요. 줬다고는 했어요. 액수만 말 안 했지요.”(모두 웃음)

 

“남편은 얼마 줬는지를 모르니까 ‘그걸 갖고 뭘 그러냐?’고 하는 거지요. 자기하고 상의하고 준 것도 아니고, 질문자 마음대로 줬으니까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낫겠네요.”(모두 박장대소)  

 

 

“그런데요, 이게 벌써 강산이 몇 번 변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서운한 걸 몰랐는데요, 이제는 제가 이렇게 주저앉아서 일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코드를 안 꽂아도 앉아있으면 머리속에서 영화 필름이 저절로 돌아갑니다.”

 

“늙으면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외국인이랑 결혼해서 외국 가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젊을 때는 외국 남자랑 살아도 되고, 외국에서 살아도 괜찮다가, 나이가 들어 60이 넘고, 70이 넘으면 음식도 옛날보다 밥이나 김치나 된장찌개를 더 먹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외국인인 남편도 나이가 들수록 치즈나 고기를 더 먹겠지요? 그러다 대부분 먹는 것 때문에 싸우고 이혼을 합니다. 그걸 ‘회귀 본능’ 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어릴 때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 모셔봐서 아시겠지만 늙으면 늘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단 말이에요. 질문자는 73세라고 했는데 만약 83세가 되거나 93세가 되면 계속 이 얘기만 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아들도 ‘듣기 싫다’, 손자도 ‘듣기 싫다’고 하게 될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한 맺힌 일이 있으면, 그걸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업식이라고 하는데, 그 상처는 계속 덧납니다. 육체도 다치고 난 뒤 날이 흐리면 쑤시고 저리듯이 늙으면 늙을수록,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이 떠오르고, 갈수록 화는 더 납니다. 그래서 건강만 나빠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돈 안 받고도 지금까지 살았잖아요.”

 

“잘 살았지요. 그런데 괘씸해서 그렇죠..”

 

“왜 괘씸해요?”

 

“하는 짓이 너무 미워요. 내 것 주고도 뺨맞는 격이니까요. 그래서만 미운 것도 아니고, 남편과 대화도 안 되는데, 어쩌다가 남편이 막 내 속을 뒤집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 제가 화가 치밀어서 제 머릿속이 또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줄 때 자기가 번 돈이라고 영감하고 의논도 안 하고 턱 줘놓고 얼마 줬다고 말도 안 하니까 영감님은 그게 섭섭해서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스님. 제가 돈 액수를 안 밝혔으니까 다행이지, 밝혔다면 남편이 저한테 돈을 더 뜯어내려고 했을 겁니다. 그랬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는 ‘조금만 줬다’ 라고만 얘기했던 거예요.”

 

“질문자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자꾸 화를 내면, 남편은 돈을 조금 주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벌써 잊어버렸는데, 늙어서 자꾸 그 얘기를 꺼내니 남편도 점점 듣기가 싫어지는 겁니다.”

 

“아니오, 남편이 듣는 데서는 얘기를 안 합니다. 저 혼자 문 닫고 지랄을 하지요.”(모두 웃음)

 

 

“그럼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첫째, 내 돈을 줬지요? 둘째, 그 돈 생각하느라고 계속 괴롭지요? 그럼 누구 손해예요?”

 

“그래서 스님한테 찾아 왔지요.” 

 

“질문자가 바보예요. 형제간에는 원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에요. ”

 

“제가 원체 바닥부터 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동생들의 힘든 사정이 너무 잘 이해가 됐거든요.”

 

“그럼 질문자는 동생들이 지금까지 계속 힘들어서 밥도 못 먹고 사는 게 좋아요? 그래도 좀 먹고 사는 게 좋아요?”

 

“먹고 사는 게 좋죠.”

 

“그럼 동생들이 전부 밥도 못 먹고 구걸하면서 살면, 질문자는 동생들한테 ‘왜 너희들, 그 돈 안 돌려주느냐?’ 라고 할까요? 안 할까요? 만약에 동생들이 지금도 갚을 형편이 못 된다면,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섭섭할까요? 안 섭섭할까요? 동생이 돈 줄 형편이 못 될 정도로 가난하다면 질문자가 동생한테 이렇게 화가 날까요? 안 날까요?”

 

“그런데 제 형편이 지금 형편만 같으면 안 줘도 상관없는데, 그때는 제가 정말 살기가 힘들었는데도 돈을 줬거든요. 그게 너무 답답해요.” 

 

“질문자는 형편이 어려운 동생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그 동생이 지금은 잘 살면서도 질문자의 돈을 안 갚고, 고맙다는 소리도 안 하니까 화가 난다는 건데, 질문자 생각대로라면 동생이 쫄딱 망해서 거지가 돼버려야 속이 시원하겠네요. ‘거봐라! 내 돈 안 갚으니까 네가 그렇게 됐지!' 하면서 속이 시원할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모두 웃음)

 

 

“뭘요, 지금 보니까 심보가 그런데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 아니면 내 돈을 안 갚더라도 동생이 밥 먹고 사는 게 좋아요? 동생이 내 돈을 안 갚을 바에야 싹 망해 버리는 게 속이 시원하겠어요? 내 돈을 못 갚더라도 내 동생이니까 잘 사는 게 좋겠어요?”

 

“제 욕만 안 하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동생이 자꾸 질문자를 욕하니까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지요.”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게 좋겠죠?”

 

“그러니까 저도 그걸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그러니까 그냥 내 돈 안 갚는 동생이 벼락 맞아서 팍 죽어버리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그래도 재산 좀 가지고 사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사는 게 좋지요.”   

 

“그러면 됐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동생이 내 돈 안 갚는 거는 괘씸하지만 벼락 맞아서 팍 망해 버리는 거보다는 그래도 내 돈 가져가서 저렇게 먹고 사는 게 좋은 일이다’ 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질문자의 공덕으로 동생들이 그렇게 잘 살면 좋잖아요. 그걸 질문자가 자꾸 괘씸하게 생각하면 동생들이 망해요.”(모두 박수)

 

 

“그래서 제가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어요?”

 

“‘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건 참 보기 좋다’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게 보기 좋구나. 우리 어머니가 보시면 나를 얼마나 예뻐하시겠느냐?’ 하고 기도를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질문자를 보면서 ‘네가 동생들을 잘 거둬서 동생들이 잘 사니 고맙다. 나는 너한테 잘 못해 줬는데 너는 동생들한테 잘해 줘서 고맙다’라고 하실 거예요.”

 

“어머니가 다 보시고 돌아가셨는데요.”(모두 웃음)

 

“돌아가신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서 질문자를 보고 좋아할 거라고요.”(모두 웃음)

 

“아버님도 ‘그만 좀 줘라. 너도 망한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너무 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줬는데도 못 사는 게 나아요? 준 거 받아서 잘 사는 게 나아요?”

 

“제가 그렇게 기도하면 화나는 마음이 없어지겠습니까?”(모두 웃음)

 

 

“내가 도와줬는데도 못 사는 게 좋아요? 내가 도와준 걸 근거로 해서 잘 사는 게 좋아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잘 사는 게 좋지요.”

 

“그렇게 알면 기도할 게 뭐 있어요? ‘아이고, 좋다’ 그러면 되지요.(모두 박수)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

 

“아니에요. 분이 안 풀린다기보다도 진짜 너무 화가 나요.”(모두 웃음)

 

“이 세상은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된다고 했지요. 내 자식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데, 동생들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게 부처님, 하나님이 아니에요. 지금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위기인데도 내 뜻대로 바로 잡지 못 하고 살고 있는데, 질문자한테 돈 좀 빌려서 안 갚는 동생들 고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겠어요?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모두 웃음) 그러니 그걸 고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렇게 잘 사니 참 고맙다. 내가 도와준 보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

 

“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 (모두 웃음과 박수)


 

“용서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용서를 할 게 없다는 걸 깨우쳐야 됩니다. 제가 ‘동생들을 용서하시라’ 하는 얘기를 한 게 아니에요. ‘동생들이 망해 버린 것보다는 그래도 내가 준 돈 받아서 잘 사니까 좋구나’라고 생각을 바꿔버리면 용서해 줄 게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진실을 딱 깨우치면 그냥 한 여름밤 꿈에 불과합니다. 그걸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니 ‘네가 잘못했지만 내가 용서해 준다’는 말은 영원히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나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건 ‘저들은 못된 놈들이지만 용서해 주시라’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질문자도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머리에는 ‘옳다, 그르다’는 관념이 꽉 박혀있으니까요.”

 

스님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답답함을 하소연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활짝 웃었습니다. 하소연이 계속 되자 청중석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분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할머니가 활짝 웃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공개된 강연 자리가 아니라면 사실 할머니의 답답함을 더 들어드려야 하는데...” 하며 미안한 마음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다시 한 번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