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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퇴치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성하 기자님이 쓰신 “대북지원과 자존심 사이, 무엇을 택해야 하나” 라는 글을 방금 읽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지금은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을 하면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주 기자님의 주장과는 상반된 저의 생각을 5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정부에서는 지금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식량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런데 주 기자님은 오늘 발행한 글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야 함으로 지금은 식량 지원을 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에 근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대북 적대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권에서 시행한다는 것은 나라의 자존심이 꺽이는 굴욕이 되므로, 다음 정권부터 지원하자 이런 뜻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첫째, 국가의 “자존심”이 수백만 어린이들의 아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일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꼭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 3개월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가원수가 복수를 맹세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그 원칙을 깨고 쌀을 싸들고 올라간다면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입니까. 나라에는 국격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법입니다.”  - 주성하의 저널로그 블로그에서 발췌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 보십시오. 북한에서는 지난 5월부터 굶어서 죽는 아사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수많은 생명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복수를 천번 백만번 맹세했다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어서 식량을 지원하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수십만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원칙을 무너뜨려 자존심이 좀 상하겠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아프리카도 아니고 우리와 5천년을 함께 해온 같은 민족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굶어죽는 인민을 살리는 일차적 책임이 북한 당국에 있다지만, 작금의 상황은 이미 북한 정부의 능력을 벗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떤가요? 남한 정치권과 각계각층에서 남북통일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으로부터도 억압받고 소외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굶어죽도록 그대로 놓아두면서, 과연 어떤 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인민들이 다 굶어죽은 뒤에 통일을 하면 무얼 하겠습니까? 정녕 사람들은 필요 없고, 북한 땅에 있는 자원만 필요한 것인가요? 아니면 북한 영토만 취하자는 것인가요?

둘째,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이 정말 국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인가요?

“대대적인 식량지원을 하면 북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적어지겠죠. 북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쌀을 주느라 구겨질 한국의 자존심은 어찌 합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저는 지금은 단연코 북한을 생각하기보단 먼저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국격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 주성하의 저널로그 블로그에서 발췌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국격을 먼저 생각하셔야 한다고 하셨는데, 바로 옆에서 사람이 굶어죽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북한 주민 수십만명이 아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채 외면한다면 그것은 국제적으로도 비판 받을 일이며, 역사적으로도 엄중히 평가받아야할 사안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북한 주민의 식량난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북한 지도자와 당국을 비난만 한다고 해서, 굶어죽는 북한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식량 지원을 해서 북한 주민들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둘 것인지 그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셋째, “인도적 지원”을 말할 때 "인도적"이란 말의 뜻을 알고 계신가요?

“지금 이 상황에서 북한에 식량지원은 당분간 할 수 없다는 저의 말은 북한 주민들도 먼 훗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여기서 쌀이 썩어나가더라도 어떻게 줄 수가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을 지킬 때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 주성하의 저널로그 블로그에서 발췌

생명이라는 것은 지금 죽으면 끝입니다. 나중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든, 정치적인 협상을 하든.... 그건 나중 문제이고, 우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인도적 지원에서 “인도적”이란 말의 뜻은 조건 없이, 정치와 이념을 떠나, 오직 보편적인 인권차원에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북한이 먼저 무릎을 꿇고 식량을 달라고 해야 주는 게 맞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연 북한이 그렇게 나올까요? 제가 보기에 북한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한과의 관계를 끊고 민족적 자존감에 손상을 입더라도, 중국에 더 의존하려고 하겠지요.

제가 북한 사람이라고 해도, ‘같은 민족이면 뭐하나, 사람이 굶어 죽어도 신경도 쓰지 않는데. 이럴 바에야 중국에 붙어서 살 길을 찾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북한보다 못 살 때, 북한 공세에 대비해 36년이나 우리나라를 강제 지배한 일본과도 손을 잡고 체제유지에 힘을 썼지 않습니까? 지금 북한도 중국에 의탁해서라도 자기 체제를 유지하려고 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북한이 중국에 예속의 길을 걷지 않게 하려면, 남한과의 관계 통로를 열어 두든지, 아니면 식량지원을 통해 민심이라도 잡아서 후일을 도모하든지 해야 하는데, 지금 남한 정부에서는 아무런 방책도 없이 북한 몰아 붙이기에만 열중해 왔던 것입니다. 정치, 군사적인 문제는 앞으로 남북 양측 정상이 직접 만나 사과를 받든지 해결을 하도록 하고,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살리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넷째, 인도적 식량 지원이 우상화 소재로 정말 쓰일까요?

“그런 저들에게 “김정은 동지가 남쪽 괴뢰군함을 침몰시키니 적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쌀을 갖다 바치려 오고 있다”는 좋은 우상화 소재를 제공하지 못해 안달이 나는가요.“  - 주성하의 저널로그 블로그에서 발췌

물론 북한 정권은 우상화 소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정말 그것을 김정은,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일까요? 내 자식, 내 부모가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남조선에서 쌀을 지원해줬다 하면, 남조선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함과 따뜻함을 느끼지, 김정일에게 그 감사함을 느낄까요? 제가 만난 탈북자들은 남조선에서 보낸 쌀을 보고 너무나 큰 감사함을 가졌다고 수없이 이야기했었습니다. 예전처럼 우상화에 놀아나는 북한주민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립하고 있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젊은 세대, 나이 든 세대의 문제도 물론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 등 정치, 안보, 군사적 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릴지언정,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살리자는 것은 지금 남한 국민들 중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북한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북한 농업개혁과 시장의 합법화입니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과 한반도 평화관리 문제입니다. 북한과 친하다는 중국도, 우리와 친하다는 일본과 미국도, 자국의 안보를 지키고 경제 이익을 위해서 행동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나라의 국가 이익을 위해, 또 우리 민족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것인가요? 거기다 같은 민족이라는 남한은 쌀 한줌 도와주기는커녕 남는 쌀을 가축 사료용, 가공용으로 쓴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니, 이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크겠습니까?

다섯째, 밀가루 300톤 싣고 방북한 종교인들의 행동이 과연 부질없는 짓일까요?

“며칠 전에 밀가루 300톤을 실고 종교단체들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 주성하의 저널로그 블로그에서 발췌

밀가루 300톤을 싣고 방북한 종교인들의 마음을 과연 얼마나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종교인들의 행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이후 남북관계는 더욱더 악화되었고, 악화된 상황에서 북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가고 있으니, 종교인들부터라도 화해의 물결, 인도적 지원의 물결을 시작해보자...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모두가 이를 외면하고 있으니, 종교인의 양심으로써 우리부터라도 선의를 실천해보자는 의미가 닮겨있는 것입니다. 이런 취지를 왜곡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의 선행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도적인 지원은 순수히 “인도적”인 의미에만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정치, 이념을 떠나서 오직 죽어가는 생명은 살려놓고 보자는 그 취지를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부에서는 지난 3년간 적대 정책만 펼쳐오다가, 정말 기적같이 화해의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시초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만이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남한 정부에도 간곡히 호소합니다. 우리 농민들을 살리고, 북한 동포를 살리는 일에 더 이상 주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인도주의 지원에는 인도주의 원칙만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더 늦기 전에 북한 주민들을 살리는 것이 곧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요, 한반도의 미래를 밝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