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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꽉 막힌 남북관계, 출구는?

최근 들어 한반도문제를 둘러싸고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작년 5월, 8월에 이어 9개월 만에 또다시 중국을 방문하고 했습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짧은 시기에 잇달아 중국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특히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는 동안,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만나고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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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상대측에 책임 전가, 진정성 있는 대화 회피

이처럼 한반도문제를 둘러싸고 남북한과 주변국의 접촉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남북 사이에는 이렇다 할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도 우리 측에 직접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 측도 북측에 우리의 진의를 전달했다고 하면서도 직접 북측 인사를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남북한 모두 상대 측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으로 변모해 가는 5.24조치

지난 5월 24일은 천안함 사건의 1차 조사결과에 따른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천안함 군사도발 사태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3부 장관의 후속조치 발표를 통해 취약계층을 제외한 모든 인도적 지원과 남북경협을 중단하는 등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였지요. 정부는 이와 같은 대북조치로 지난 1년간 북한의 현금 수입이 약 2억 5000만~3억 달러 정도 감소했으며, 이것은 북한이 그만큼 벌금을 물고 있는 것과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업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하는 중국 기업들

하지만 우리 기업이 떠난 빈자리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면서 대북 제재의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2010년 북•중 교역액은 사상 최고치인 34억 달러로서 전년보다 30% 증가했으며 올해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뿐만 아니라 5.24조치는 북한 경제의 대(對)중국 종속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도 낳았습니다. 특히 라선경제무역지대, 황금평경제지대 공동개발 등으로 중국 자본이 대거 북한으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리 측 대북 경협기업들이 받게 된 커다란 타격

무엇보다 이 같은 위탁가공 및 교역 중단으로 북한이 경제적 손실을 입기보다도 우리 측 대북 경협기업들이 더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남북교역 중단으로 남측의 위탁가공업체와 대북교역업체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습니다.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올해 1월 24일부터 두 달간 자체 조사단을 꾸려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북 경협ㆍ교역 업체 154개 중 78.6%가 5.24조치로 사업이 중단됐고, 그중 12.3%는 현재 사업이 완전히 중단돼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또한 104개 기업이 총 4030억여 원(약 3억 6000만 달러)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 모습. 남북경협 중단으로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ㅠ;;  

전제조건이 '선 비핵화'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과'로 바뀐 것일 뿐

현재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모든 현안을 천안함ㆍ연평도 도발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연계하고 있습니다.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 가 없다면 남북대화를 할 수 없다는  ‘원칙’ 을 내세우고 있지요. 이런  ‘원칙’ 때문에 백두산 화산활동 회의에도 책임 있는 당국자 대신 민간전문가들을 내보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있기 전까지  ‘비핵화’ 없이는 남북대화가 없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었는데 이제는 그 전제조건이  ‘선 비핵화’ 에서  ‘천안함ㆍ연평도 사과’ 로 바뀐 것입니다.

5.24조치에 발목 묶여 영유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불허하다니...

이처럼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둘러싸고 활발히 대화를 전개하고 있는 반면, 한국정부는 5.24조치에 발목이 묶여 남북당국 간 대화는 물론 영유아에 대한 지원 이외의 인도적 지원조차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천안함 사태에 대해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며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 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대화의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5.24조치는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북한의 행동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선택폭은 제약을 받고 북한은 대내외정세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대화공세 등 대남 압박의 강약을 조절하는 입장에 서게 만들었다고 보입니다. 또한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할 기회는 상실되고 대신 국제사회의 관여폭이 점차 넓어져가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5.24조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무기가 아니라 무거운 짐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곧 5.24조치의 출구

우리 정부가 5.24조치가 짐만 되고 별다른 실익이 없는데도 이를 견지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세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북한 조기붕괴론의 인식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의 한미관계가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도 공고하다는 자신감입니다. 


△ 사격 조준을 잘못해서 인터넷에서 많이 풍자된 사진인데요, 남북관계에 대한 정세 인식도 이런 모습이지 않나 싶어 씁쓸합니다. ㅠ;;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정세인식 1 : 북한은 조기 붕괴한다?

북한의 조기붕괴론은 지금까지도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조기붕괴론의 발단은 2008년 하반기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입니다. 건강악화설과 관련하여 심지어 김 위원장의 병세가 2015년을 못 넘길 정도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작년 초 어떤 연구기관에서는 김 위원장의 유고를 전제한 보고서를 발간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김 위원장이 열차로 5000㎞가 넘는 장거리 중국방문을 한 것은 그러한 추론과 완전 배치되는 것이지요. 

조기붕괴론의 또 다른 근거는 북한 경제의 악화입니다. 절대적인 식량부족으로 북한체제가 오래갈 수 없으며, 따라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남한의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45억 8734만 달러에 이른다. 이에 반해 북한의 직접적인 손실은 8억 8384만 달러로 남한의 19.3%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남북 간 경제교류협력 중 상업적 거래만을 대상으로 파악한 것으로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유발 효과, 고용 창출 기회 등 간접적 손실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정세인식 2 : 한미관계가 최상의 상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한미관계는 '전략동맹 관계'로 격상되었고,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미국은 한국정부와 '찰떡 공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간의 ‘찰떡 공조'는 최근 미국의 각종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또한 미ㆍ중 협력과 대통령 재선을 고려해야 될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북한문제에 관한 한국의 요구를 무한정 받아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움직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북핵문제가 전개된 과정을 보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접촉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대화→북•미 대화→6자회담'의 프로세스를 주장하여 미국과 중국 등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이와 같이 남북 비핵화 대화를 맨 앞에 놓은 일이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개선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것이 북•미 대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 자욱하게 안개가 낀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눈 쌓인 바리케이드 너머로 '통일의 관문'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연평도 직후 모습)

꽉 막혀 있는 남북관계, 출구는?

어떻게 하면 꽉 막혀 있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의지의 유무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의지만 있으면 비핵화 남북회담을 진전시켜 이를 경색국면 돌파의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고 고위당국회담을 열어 북한의 양보에 수반하는 정치적 타결점을 모색해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선제적인 민간 대북 지원활동 허용으로 북한에게 퇴로 열어주기

만약 외교ㆍ국방ㆍ통일 3대 분야의 대북조치를 단번에 철회하기 어렵다면, 이를 단계화하여 북측의 태도변화와 6자회담의 진전 등과 맞물려 조정해나가는 출구전략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북한 측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 선제적으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2011년에는 고난의 초강행군이라 불릴 정도로 식량상황이 더 심각한 상황.

국가의 미래 이익을 내다보며 북한을 리드해 나가기

통일민족사는 국력 면에서나 당위 면에서나 우리가 주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책무는 우리가 회피해서도 안 되고 회피할 수도 없습니다. 바깥에서 밀려오는 정세변화에 떠밀려 남북대화에 나서기보다는 한반도 평화와 국가의 미래이익을 내다보면서 북한을 리드해나가는 지혜와 유연한 대북정책이 절실합니다. 한반도의 긴장 격화는 결국 우리의 역할 축소로 이어진다는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 이제 무거운 짐을 조용히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제25호에서 발췌 인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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