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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종북 몰이 멈추고 남북 협력으로 가야 하는 이유

최근 종교계 지도자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국내외 현안들에 침묵하면서 유독 정부 비판 발언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종북 몰이’


최근의 남남 갈등 상황에서 대통령이 침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갈등의 어느 한편에 서 있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선도하여 헌법정신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대립은 단순한 갈등의 수준을 넘어 국론분열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갈등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최근의 갈등 양상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문제는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메커니즘의 부재에 있다. 정치권이 제 역할을 접고 상황악화에 앞장서는 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다.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면,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부으며 고발·고소를 남발하며 법정으로 달려가고 있다. 심지어 전직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갈등 해결의 정치적 지혜를 내놓기는커녕 ‘국회 해산’이라는 주장을 내놓아 도리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다.


특히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내의 정치적 갈등 양상은 단순한 남남 갈등을 넘어 남북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데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갈등의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남북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행태가 정치적 탄압을 위해 반대파에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종북’이라는 말 자체도 어설픈 조합어지만, 그것이 이른바 ‘빨갱이’를 돌려 지칭하고 있는 냉전시대의 선동적 용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북 몰이’는 남남 갈등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남북 화해마저도 어렵게 할 뿐이다. 정치적 반대파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면서 신뢰프로세스를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남 갈등을 남북 갈등과 연결시키는 행위는 냉전시대의 구태일 뿐만 아니라, 남남 및 남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국익의 손상을 가져오고 분단의 영구화를 이끄는 행위로서 중단해야 마땅하다.

 

묵과해서는 안 될 주권과 안보에 대한 도전들



정작 대통령이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주권과 안보에 대한 북한과 주변국들로부터 오는 도전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무장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훼손 시도, 중국의 이어도에 대한 방공식별권(ADIZ,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설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선언하며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북한은 우라늄농축을 진행하여 핵분열물질을 계속 생산하는 한편, 불능화했던 영변원자로를 재가동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경수로 시험로를 완공할 예정에 있다. 하지만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은 재개조건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아직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의 지지를 얻어 유사시 일본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로 홍보하는 파렴치 행위를 넘어,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을 독도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자신을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며 방위비를 증액하고 군사대국화로 치닫고 있다.


중국도 우리 측 수역에 있는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설정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열린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중국은 CADIZ에서 이어도를 제외해 달라는 우리 측 요구를 거절했다. 앞으로 서해에 대한 CADIZ를 설정한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국방비를 20년간 23배로 증가시키면서 ‘자유와 번영의 호’를 뚫고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6자회담의 재개 문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섬)의 영유권 문제, 남중국해의 자유항행권 문제 등 동북아지역에는 풀어야 할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금년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신형 대국관계에 합의했으나 실제로는 신형 갈등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중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중·일 간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국지전 가능성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주변국들이 대립하는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전선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형성되면서 동북아의 세력재편이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정착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 대결과 긴장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국가발전전략도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존립과 발전에 영향을 주는 작금의 주변상황 변화는 매우 위중하고도 심각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적 통합을 바탕으로 넓은 시야와 지혜의 결집이 긴요한 때이다. 동북아 정세변화의 급류 속에서 우리에게 닥친 주권과 안보에 대한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태세를 갖추기 위해 대통령은 하루빨리 국민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동북아 정세변화의 급류에서 살 길은 협력적 남북협력뿐이다


우리의 동맹국이자 역외 국가인 미국은 10년간 5,000억 달러 이상의 국방비 삭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맞서 이 지역의 해상제해권 확보를 위해 2020년까지 함정들을 이동·재배치하여 미 해군 전력의 60%를 아시아지역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동맹관계의 강화를 통해 부족한 군사자원을 충당하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지역에서 동맹국들의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지지,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미·일 주도의 지역미사일방위(BMD) 계획에 한국 참여 권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요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지금과 같은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외교적 선택을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군사·외교적으로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맺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액이 미국·일본과의 교역액 합계를 넘어설 정도로 중국과 깊은 협력관계를 쌓아왔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중국이 마찰을 빚을 경우, 한국은 어떻게든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희망적으로 말한다면, 한국이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중견국가의 지위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 분단된 한국의 국력만으로는 강대국 정치를 제어하고 중재할 능력이 태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지도자들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해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한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스스로 안보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물가의 어린아이처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두려워하며 미국에만 안보를 의존하려는 한국이 언제 이러한 힘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힘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강대국들이 남북 사이를 갈라놓고 남남 갈등을 부추길 수 없도록 남북합작과 국민대통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대결과 긴장이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의 발언권은 약화되고 주변국들이 마음대로 짠 틀 속에 들어가기가 십상이다. 우리가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하려면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어 놓고 볼 일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정치적 반대파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정치환경 속에서는 남북합작도 국민대통합도 달성될 수 없는 공염불일 뿐이다. 이제라도 국민을 분열시키는 ‘종북 몰이’를 중단하고 다방면에 걸친 남북합작을 추진하는 것만이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국가적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길이다. 이는 아직도 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첫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