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추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겨운 고향을 찾아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 끝나갈 무렵, 저에게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생존의 위험을 무릎쓰고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2만명의 새터민 분들입니다. 


생존을 위해 찢기는 가슴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였고, 어쩔수없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와야 했던 분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가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고향을 다녀왔지만, 새터민들은 갈 수 없는 고향땅을 생각하며 씁쓸한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마음의 위안이라도 되어드리고자 친구들과 함께 주섬주섬 간식 거리와 음료수를 사들고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새터민 분의 집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도 묻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새터민 분들이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인데요. 아파트 문을 열고 드러서니까... 환하게 저희들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가볍게 담소를 나누다가, 여러 가지 궁금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 '좋은벗들'에서 주최한 "남북한 좋은 이웃되기"를 통해 만난 새터민 분.  


새터민 김의분씨(가명. 여, 48세)는 식량난으로 북한에서 남편을 잃고, 어머님과 언니, 동생과 생이별하고, 딸과 함께 국경을 넘어오신 분입니다. 지금 남한에서는 딸과 함께 살고 계시고요. 따님은 12살이고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 올해 추석 연휴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남한 넘어와서 처음에는 하나원 졸업생 같은 기수들끼리 모여서 제사도 지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저도 아이들이 크니까... 자식들 챙겨주는 것도 모자란 상황이예요. 집에서 그냥 일하며 지내요. 하지만, 올해는 동네에 사는 북한동포들끼리는 북한 순대도 만들어 먹었어요." 


- 명절 때마다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이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마음이 적적하지요. 가족들 생각하면, 쓸쓸합니다. 어머님, 동생, 언니가 지금도 북한에서 그대로 살고 있어요...."


- 북한에서는 어떻게 추석 명절을 보냈나요? 


"북한에서는 추석 당일 하루만 쉬어요. 그래서 남한처럼 교통 대란이 없어요. 아마 식량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아서 남한처럼 넉넉한 먹거리는 구경하기 힘들 거예요. 나라에서 이날 하루 종일 전기를 공급해줘서 TV를 많이 보기도 해요. 방안에서 민속놀이를 하기도 하지요. 

 한복 입거나 그런 거는 평양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한복 입는 것 없습니다. 치마에 양복 입고 인사드리러 다니고요. 직장 간부들에게 맞절하고 술한잔 붙고 끝입니다. 제사나 차례 지내는 것, 그런 건 북한에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산에 가서 조상들을 찾아뵙는 성묘는 합니다." 


- 어머님 고향이 어디시죠? 


"함경북도 명천군이예요. 고향을 떠난 게 2004년... 한국에 온지 9년째 되었네요." 


- 명절을 즐길 마음이 별로 안나시겠어요. 마음도 무거우실 것 같고요. 


"북한에서 어머님과 같이 지내던 생각이 많이 나죠... 명절 전날에는 항상 어머님과 만두떡을 만들어 먹었거든요. 밤새 절구에 쌀 찢던 생각이 많이 나요. (눈물을 보이심;;) 

 그런데 남한에 살면서, 항상 고향 생각만 하면 괴로워서 살 수가 없죠. 그래서 고향 생각은 명절 때만 해요. 오늘처럼 명절이 되면, '북한에 있을 때, 엄마와 이런 거 같이 했는데...' 이런 생각이 가끔 나지요. 그러다가도 '잊자 잊자...' 하면서 다시 밝아져요." 


추석에 만난 새터민 "북에선 음식 만드는 게 고되면 자랑거리"


- 남쪽이나 북쪽이나 여자들이 고생하는 건 똑같은가요?


"제가 북한에 살 때 모든 요리를 다 내가 했지만, '내가 고생한다' 는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 남한 며느리들은 제사가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북한은 요리하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입니다. 워낙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 쌀로 떡을 만드는 것 자체가 동네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밥 한끼 먹기도 힘든데... 북한 여자들은 음식 만드는 게 자랑거리이지, 고생이 아니지요. 음식 만드느라 힘들다는 건 배부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죠.


 집집마다 쌀이 부족하니까. 음식 만들면서 '고되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못해봤어요. 음식 한다고 고될 정도라면, 그건 자랑거리이지 힘든 게 아니죠. 정말 그렇게 되어보고 싶어 하죠. 밥한끼 먹기 힘든데, 음식 만들다고 힘들다는 건 배부른 소리지요. 


 북한에 계신 우리 엄마한테서도 '음식 하느라 고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배고픔을 참는 것이 오히려 정말 고된 거죠."  

 

- 평상시에는 배고픔에 시달리지만, 명절 만큼은 좋은 음식을 먹나요? 


"특별하게 국가에서 쌀을 주거든요. 기름도 나오고, 고기도 나오고, 단가루도 나오니까요. 명절에는 배고픔을 잊는 날이다는 생각에, 명절이 다가오면 기쁘지요. 명절 하루만큼은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죠." 


-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설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겠네요. 


"많이 날 수 있어요. 정부에서 배급을 준다고 해도 살림을 잘 사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밤늦게까지 절구 두드리면서 만두 만드는 집은 부자지요. 돼지 잡는 집도 있어요. 회사가 잘 되면 회사에서 돼지 잡아서 고기를 나눠주거든요. 내장으로 순대도 만들어 나눠주는 곳이 있어요. 차이가 많이 나죠. 높은 간부라고 해서 먹는 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예요. 똑같이 받은 배급을 가지고 어떻게 조절하는 가에 따라 다르죠." 


- 올해에는 식량난이 더욱 극심해져서 살기가 많이 바빠졌다고(어렵다고) 하던데... 들려오는 소식이 있나요?


"어제도 엄마한테서 전화왔는데, 97년 고난의 강행군 때보다 사정이 더 안좋다고 해요. 많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작년에 어머님께 좋은 약을 해서 보냈는데,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통일 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눈물;;)"


- 남한에 살면서 그래도 희망, 긍정적인 것이 있다면요? 


"남한은 내가 사회활동 하기에는 좋은데, 내 자식이 학교생활 하는 데는 북한보다 못해요. 교육은 북한에서 받고, 사회활동은 남한에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남한 아이들은 너무 자유분방해서 내 마음데로 학교 안가고, 집 나가고 가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걱정이 많이 되요. 내 자식이 이걸 배우면 어떨까 의구심도 들고요. 요즘은 불안해서 자꾸 아이들을 가둬두게 되거든요." 


- 명절을 맞이하여 북에 두고 온 어머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울먹이시며 가슴에 맺힌 말을 하셨습니다) 


"엄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거기서 잘 벌어서 잘 살아만 계셔 주세요.(눈물;;)

 저도 여기 와서 어려움이 있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부지런히 일해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해요. 몸 잘 돌보면서 살아계셔 주세요....

 언니와 동생아... 항상 건강하고 굳세게 살아라. 통일되어서 꼭 만나자.


- 괜히 물어봤네요. 죄송합니다...


"자기 부모도 아니고 자기 자식도 아닌 북한 동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동포라고 해서 따뜻하게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한에서 따뜻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런 분들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앞으로도 밝고 건강하게 우리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같이 품어 안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새터민 김의분씨는 끝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고향이 있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새터민들... 이들 뿐만이겠습니까. 가족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이산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명절이라 하지만 명절을 즐기지 못하는 반쪽이 있습니다. 바로 2천만 북한동포들입니다. 남한의 며느리들은 ‘명절 증후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제사상 차릴 걱정에 일주일 전부터 몸이 아파온다고 합니다. 북한의 며느리들은 차릴 음식이 없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상에 올릴 음식, 아이들 입에 넣어줄 음식 한 가지라도 구하면 너무나 행복하겠다고 합니다. 2013년 추석 명절이 같은 하늘아래 이렇게 다릅니다. 


북에 두고온 어머님이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새터민의 마음... 하루빨리 국제사회와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10여년 전 수백만 동포의 죽음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어제 뉴스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9월 25~30일 금강산에서 열리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돌연 취소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혈육을 볼 수 있게 된 이산가족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의 길이 열려서 남북 자유 왕래가 이뤄지고, 이산가족들 뿐만 아니라 새터민들도 자신의 혈육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찾아오길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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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pe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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