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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스님에게 연애해봤느냐고 물어봤더니

 즉문즉설(卽問卽設)이란 일방적인 설법과 달리 청중이 무엇이나 물으면, 그것에 대해 즉각 답해주는 문답식 설법입니다. 흔히들 지식이나 관념적 사고로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하죠. 현자는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묻는 자가 돌이켜 자기 마음을 보아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석가와 공자, 예수 등 성인들이 이미 고통을 행복으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었습니다.

 그 법석이 서울 도심에서 펼쳐졌습니다. 불교수행단체인 정토회에서 매주 열리고 있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법회입니다. 즉문즉설로 정평이 나있는 법륜스님은 북한과 인도, 아프가니스탄의 어려운 이들을 도와 막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었고, 제작년 북한 식량난이 악화돼 대형 아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북녁동포들을 돕자며 70여일간 단식을 하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1시간30분간 진행된 이 법석은 숨막히는 질의와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즉문즉답입니다.
 

죽음? 안 죽어봐서 몰라, 관심도 없고

 문 : 죽음이 있느냐, 죽어서 가는 정토세상이 있느냐?

 답 : 안죽어봐서 모르겠다. 또 관심이 없다. 인도에서 굶던 사람들이 밥을 얻으면 그 자리가 정토다. 30~40년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된다면 미래 정토다. 인도의 빈민촌 아이들도 처음엔 한국에 오면 이곳이 정토라고 했다가 몇 년 지나고 차별을 받으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타방 정토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지금 즐겁게 산다면 그것은 유심정토다. 있느니, 없느니 그것은 큰 문제가 없다. 인도 불가촉천민촌인 둥게스와리에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해서든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그곳은 지옥이다. 그러나 정토회의 행자들은 그들이 좋다는 한국을 놔두고 서로 그곳까지 가서 봉사하려고 하고, 봉사를 즐거움으로 알고 행복해하니 그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문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최고인가?
 
 답 : 좋은 일도 내식대로만 하면 문제가 된다. 내가 좋다고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사람에게 뽀뽀하면 그것은 추행이다.

 문 : 잘 생기셨는데, 연애는 해봤는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고 싶은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답 : 어릴 때는 연애도 해봤다. 그러나 결혼해서 애낳고 살 생각은 안했다. 수행이란 자기 업식에 대해 알아가기 위함이다. 즉 자기 꼬라지를 보기 위함이다. 내가 만약 결혼해서 살았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나는 결벽증이 있어서 내 생각을 옆사람에게 강요하고, 안들으면 파르르 떨기도 한다. 내게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여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결혼을 했다면 그런 사람들과 했을테니 인생이 대충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있다.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아해, 왔다갔다 그게 가출

 문 : 그럼 이미 결혼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답 : 자기 마음대로 살려면 혼자 살아야 한다. 결혼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살려면 상대와 맞춰야 한다. 또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한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자기 꼬라지 안닮게 할려면 자기가 변해야 한다. 그러니 자식이 없는 스님들보다 자식이 있는 여러분이 열배 백배는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자기 자식도 아닌 고아와 장애인들을 수십명 수백명씩 돌보는 수녀님들도 계시지 않은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불교의 핵심진리는 인연과보다. 하는 대로 받는 것이다.
 
 문 : 그럼 결혼하지말아야 하는가. 모두 출가해야하는가?

 답 : 결혼을 해야한다 하지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게 아니다. 결혼을 했으면 결혼생활이 행복하도록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도록 해야한다. 행복은 결혼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아한다. 그래서 왔다갔다하면 그게 가출이다. 귀찮아서 스님 되어야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식이라면 가출이다. 진정한 출가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아하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울면서 하는 말, 다 제 걱정 뿐

 문 :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아 괴롭다. 공격적인 사람과 어떻게 해야하나? 

 답 : 결혼해 살기 힘들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은 ‘안녕히 계세요’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에서도 도망가는 36계는 최후의 방법이다. 헤어질 수 없다면 숙여라. (수행이란) 상대를 어떻게 하기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다. 자신이 뻗뻗하니 괴롭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니 괴로운 것이다. 사랑을 하면 괴롭지 않다. 설악산 단풍 구경 가서 ‘참 좋다’, ‘참 좋다’고 기분 좋아하면 설악산이 좋으냐 내가 좋으냐? 설악산 단풍을 사랑하는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남을 이해 못하면 내가 답답하고, 남을 이해하면 내가 좋은 것이다. 상대가 고집이 세다면 그 센 고집을 꺾어버리려는 나는 얼마나 고집이 센 것이냐를 알아야 한다.

 문 : 같이 사는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도록 도울까요?

 답 : 남 걱정 하지 말고 자기 인생부터 챙겨라.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져서 도와주는게 좋은가, 내가 괴로워하면서 돕는게 빠른가. 사람은 남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울면서 그런다. ‘스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요’ 그런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는 ‘아이고, 저 어린 것들을 데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요?’그런다. 그것 봐라. 남편 걱정, 자식 걱정 하는 게 아니고 다 제 걱정만 하지 않은가. 인간이 그렇다. 저 밖에 모른다. 

 

수행은 노력하면서 애쓰면서 하는 게 아니다

 문 :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답 : 축구선수는 야구보다 축구가 스포츠 중에 최고라고 한다. 야구선수는 자기가 해보니 농구보다 야구가 낫다고 한다.
  자신이 보기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객관적으로)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수행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근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수행할 뿐이다. 정토종에 가서 물으면 염불을 하라고 하고, 남방불교에 가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라고 한다. 어떤 수행을 하든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수행은 애쓰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치자.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로 한 시간이 됐을 때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만 하고 정작 일어나지 않으면서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은 ‘일어나고 싶은 게 아니고, 일어나기 싫은 것’이다. 실은 ‘일어나야 하는데’ 를 혼자 열 번만 되뇌어 보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일어나기 싫다는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정말 일어나고 싶다면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할 것이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싹’ 일어나면 된다. 늘 각오만 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인생이 괴로운 것이다. 그냥 ‘싹’ 하면 괴로울 일이 없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밥도 많이 먹어야 하고, 술도 많이 마셔야 하고, 잠도 많이 자야한다.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것은 번뇌다. 그냥 ‘싹’ 해라. 수행도 그처럼 해야 한다.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해야 한다. ‘아! 내가 깜박  속았네’ 하면서 즉각 마음을 돌리면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고통의 원인인)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알고, 꿈에서 깨듯이 깨면 되는 것이다.

뭐 한 게 있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옳다면 오직 갈 뿐

 문 : 붓다가 생명평화의 길을 찾기 위해 출가한 것인가?

 답 : 세상은 하나가 살기 위해선 하나는 죽어야 하고, 하나가 이익을 보기 위해선 하나는 손해를 본다고 한다. 거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나느냐가 학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중생계의 모순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사는 길’ 을 찾기 위해 출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는) 연기의 법칙을 깨달았다.

 문 : 환경, 평화, 빈곤퇴치 등 많은 운동을 하고 계신데, 운동한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답 :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인과법을 믿지 않거나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천 번 해야할 갈 길을 한번 하고 뒤돌아보고, 두 번 하고 이게 될까 의심하고, 세 번 하고 이건 안되는 걸꺼야 라고 하는게 보통사람들 생각이다. 우리가 뭐 한 게 있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단식 좀 했다고, 좀 걸었다고, 절 좀 했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이것이 옳다면 오직 갈 뿐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바뀌어지면 좋고 안바뀌어도 좋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저는 스님에게 연애해봤냐는 질문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에게 해서는 안될 무례한 질문 같기도 했지만, 오히려 스님은 결혼한 사람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제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된 것 같습니다. 결혼할 계획이 있다면, 스님들보다 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스님의 답변은 간명하고 명쾌했습니다. 진리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쉽고 단순한 것임을 스님을 통해 속시원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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