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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3일간 만배를 하기로 한 이색 신혼여행 스토리

어제는 문경 정토수련원이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늦은 저녁, 젊은 부부 한 쌍이 찾아왔습니다. 운동화도 커플룩이었습니다. 곧바로 직감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만배하러 온다던 그 분들, 정말 왔네! 만 배하러 신혼여행 왔다는 두 부부의 인사에 대중들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만배라 함은 절을 만 번 한다는 겁니다. 상상이나 가십니까? 108배도 아니고 10,000배를 한다는 것이지요.

말이 좋아 만배지….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만배를 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백일출가”라고 해서 백일동안 출가수행자의 마음으로 살아보는 단기 출가생들의 수행처소가 바로 이곳 정토수련원입니다. 그런데 어딘지 낯이 익은 느낌까지 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종종 뒤적거리는 백일출가 사진들 사이에서, 언젠가 이 분의 웃고 있는 모습을 본 듯합니다. 그럼 그렇지. 1기 백일출가를 마친 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빡쎈 거 아니냐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좋은 ‘꺼리’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인증샷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대웅전에 올라갔습니다. 두 부부의 만배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왜냐하면 만배를 경험해 본 1인으로써 그 힘듦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일만에 만배 성공하고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백일출가가 낳은 최고의 부부라고. 오오오... 진정 하드코어였던 이 부부, 앞으로 살면서 어떤 난관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부부의 좌충우돌 아름다운 만 배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아래 글은 신혼여행으로 3일 동안의 만배를 마친 신랑 되시는 분이 쓴 만배 소감입니다.

△ 신혼여행으로 3일간의 만배 여행을 온 신랑 신부. 바깥을 향한 관광여행보다는 서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마음의 여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색적인 신혼여행이지만 정말 아름답네요.ㅎ

"Eco Wedding & Life”

콩기름으로 인쇄한 친환경 청첩장 만들기, 유기농 옷감과 한지 소재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 후에 일상복으로 리폼하기, 예식장은 공공장소를 무료로 대여해서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기, 일회성 화환 대신 뿌리가 살아있는 꽃 화분으로 장식하고 예식이 끝난 후에 하객들에게 선물로 드리기,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음식으로 대접하고 남은 음식은 싸드리기, 전통문화 보존과 교류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소박한 결혼반지 맞추기, 웨딩촬영 및 결혼식 진행 관련해서는 친구들의 재능기부 받기, 축의금의 1%는 숲을 가꾸는 기금으로 기부하기 등 착한 결혼식을 위해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식을 2주 앞두고도 이런 웨딩 계획에 어울리는 신혼여행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백일출가 졸업생 300배 정진을 하기 위해 ‘정토회’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일주일전에 결혼한 청년 정토회 법우를 만나게 되었고, 그 부부는 신혼여행으로 명상수련을 다녀 올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번뜩!!!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내면으로의 여행, 그것도 에코붓다의 삶을 실천하는 정토수련원에서…. 나는 백일출가 1기 졸업생, 신부도 ’깨달음의 장‘ 수련을 다녀왔고 우리 두 사람 다 수행을 하고 있으니깐 문경으로 신혼여행을 가자. 그리고 함께 결혼 입재식을 하는 거야. 백일출가 졸업생답게 우리는 만 배를 하는 거지. 그래 완벽한 계획이야……. 그런데 신부가 허락할까?’

저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눈치를 살피며 아내가 될 그녀에게 이야기를 건네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너무나 가볍게 그렇게 하자고 동의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정을 하려니 보통 신혼여행처럼 해외로 가서 쉬다가 오는 건데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꼼꼼히 준비했던 결혼식을 마치고 이틀 후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사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눈총도 심했고, 아내와도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정토수련원에 들어서면서 언제나처럼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 상쾌한 숲 내음에 그동안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가 전부 씻기는 듯했습니다. 밤하늘의 고요함이 우리 두 부부를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유수스님을 뵙고,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주례 말씀을 들었습니다.

△ 만배를 하기 전 유수스님에게 주례사를 청해 듣는 모습. 이것이 스님의 주례사ㅋ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싸워도 되지만, 절대 아내와 자식을 때리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소중한 도반으로 대하라는 명심문도 주셨습니다. 갑자기 폭력남편이 되어 상담을 받으러 온 기분이었지만, 제 안을 돌이켜보면 다분히 그러한 폭력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절대”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신혼여행 첫날 새벽이 밝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대하는 발우공양이라 쫓아하기에 바빴고. 소심경은 절반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한 톨의 밥과 한 방울의 물이 내 앞에 이르기 까지의 온 생명의 노고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동안 그 감사함을 잊고 마구 먹고 함부로 낭비 하였습니다. 참회합니다.

저에게는 백일출가 입재식 이후 두 번째 만 배입니다. 아내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출발이 좋습니다. 새로 지어진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수십 명의 백일출가 행자님들과 함께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염주를 몇 십 바퀴 넘기면서는 이내 몸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건축 현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해 2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졌었는데 그래서인지 백일출가 때보다 육체적 고통이 심했습니다. 손으로 무릎을 짚지 않으면 일어날 수 가 없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이렇게 힘들게 절을 하는 행자님들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 탓이라 규정짓고 의지가 약한 사람 취급을 하였습니다. 허나 제가 그 신세가 되어보니 가슴이 울컥합니다. 미안합니다! 도반님들.

시간이 흐를수록 제 옆의 아내는 엎드린 채로 꼼작 않고 있는 시간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아내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만 배 하자고 흔쾌히 대답해놓고 이 정도 밖에 못 하냐, 너 신경 쓰여서 나도 절하기 싫다.’
 
정말 못난 남편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원망하는 마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에 다리를 주물러 주었습니다. 아내는 안간힘을 쓰며 다시 절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백일출가 행자님들의 소리 없는 응원이 우리 부부의 두 다리에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달콤한 XXX, 따뜻한 차 등 그들에게 더없이 귀한 것들을 조용히 우리에게 내주었습니다. 이런 조건 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다리는 후들거리고 무릎은 바닥에 닿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지속적인 엎드려 있음으로 체온이 낮아져서인지 법당의 싸늘함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저는 그런 가엾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잘 달래서 따뜻한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얼핏 보면 아내를 위해서인 것 같지만, 아내를 한없이 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백일출가 때를 돌이켜보면 옆의 도반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도반은 다만 믿음으로 지켜보아 주고, 함께 가는 길동무였습니다. 그때서야 유수스님이 주신 명심문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내가 힘겨워 할 때에 외면하지 않고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너무 집착해서 아내를 스스로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겨우 겨우 일어났다 철퍼덕 엎드리고 또 다시 그렇게 한 배, 한 배...

만 배 마지막 날 밤입니다. 신혼여행 3일째였습니다. 만 배 중반에는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후반부터는 오히려 무릎 통증이 줄어들고 점점 다리에 힘이 붙었습니다. 예전처럼 체력에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아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겨우 겨우 일어났다 철퍼덕 엎드리고 또 다시 그렇게 한 배, 한 배……. 그런 아내의 호흡에 맞춰 함께 절을 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이었지만 그 속에 밝은 기운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굽이굽이 험난했지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허니문 종착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함께여서 기쁨이 두 배였습니다.

여기까지가 결혼 출가 입재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결깨’ 입니다-결혼 일상에 깨어있기! 앞으로 살다보면 멀고 험한 길이 우리 부부 앞에 펼쳐지기도 하겠죠. 그러나 3박 4일간의 만배 신혼여행을 계기로 물렁해져 있던 체력도 좋아졌고, 결혼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밖으로만 향해있던 산만한 마음도 많이 차분해졌습니다. 이렇게 새 몸, 새 마음 준비 완료, 신나는 결깨 출발합니다! 제 안으로 돌이켜 잘 살피고 늘 깨어있겠습니다. 아내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아내에게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아내는 소중한 도반입니다”


내면으로 여행 '만배'를 통해 특별한 신혼여행을 마친 두 부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짜증을 내다가 마음을 돌이키는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관광하는 신혼여행도 좋지만, 서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신혼여행 어떠세요? 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허니문 코스로 만 배 프로그램을 개발해보면 대박 나는 거 아냐 하는 상상도 해보았네요. 어쨌든 두 부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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