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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콘서트

안철수의 도전, 사회로부터 받은 것 돌려주고파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공감 청춘콘서트가 전국 25개 도시 순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자살을 보며 청춘들의 절망과 아픔에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고자 시작한 청춘콘서트. 5월22일 경희대를 시작으로 19개 도시를 순회했습니다. 바로 어제 20번째 순서를 진주 문화예술회관에서 맞이했는데요. 진주에서 열렸던 청춘콘서트 현장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 박경철 : 요즘 안선생님이 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요즘 경우에 따라서는 왼쪽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으신다.

- 안철수 : 앞으로는 오른쪽에 앉아야겠다. (웃음)

- 박경철 : 안선생님은 의학계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계속 의학 연구를 했다면 굉장히 촉망받는 의사가 되었을 텐데, 왜 어두컴컴한 밤에 컴퓨터 앞에서 바이러스 연구하고 백신 만들고… 아무튼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가?

- 안철수 :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27년간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남들보다 훨씬 오래 다녔는데, 사회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혜택을 많이 준 덕분이었다. 나는 사회로부터 많이 받고 있는데, 나도 조그만 역할이라도 해서 받은 일부라도 돌려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의료봉사활동이었다. 토요일이 되면 구로동에 가서 봉사진료하고, 방학이 되면 무이촌에 가서 아픈 분들 진료했다. 봉사하면서 사회에 대해서 많이 깨달았다. 어느 날 왕진을 갔었다. 너무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어서 아래로 떨어지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귀함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생계비를 못 벌어서 두 부부가 깨어지는 것을 봤다. 또 손녀와 할머니 두 명이 사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도망가고 둘만 남았다. 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해서 할머니를 먹여 살렸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돌아가보니 장례식장이 되어 있더라. 손녀가 도망을 가서 할머니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사회의 구성원을 굶어 죽게 만드는 것은 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으로 부대끼고 몸으로 느끼면서 나름대로의 공감능력을 배우게 된 것 같다.

- 박경철 : 그래도 잘 나가던 의사에서 백신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공감이 잘 안 된다…

- 안철수 : 그 때도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더라. 대학원에 가게 되니까 더 이상 의료봉사를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피해가 컸는데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니까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그 이후 바이러스가 발견 되면 전부 저한테 부탁을 하러 오더라. 이 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고,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느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일부라도 돌려줄 수 있는 일이더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일이더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돈을 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무료로 배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보답이 되었다. 사회에 대한 기여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기에…


- 박경철 : 동정심이 없으면 짐승이다. 그러나 동정심을 뛰어넘는 공감능력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어떤 분이 지나가다가 지하철에서 걸인을 만났을 때, 그냥 동전만 던져놓고 간다면 동정심이다. 그러나 동전을 집어넣고 눈을 마주치고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드세요 말해줄 수 있다면 공감이다. 그래서 걸인의 손을 잡고 국밥집으로 걸어간다면 걸인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파동이 일어난다. 동정심과 공감능력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가져야 할 제1의 자세는 공감능력이다. 안선생님은 이런 공감능력이 있었기에 백신을 개발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무료로 배포했다. 그래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은 백신 개발 수준에서 벤처사업가로 간 것이다. 또 거기서도 잘나가던 벤처 기업의 사장 자리를 그만 두고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그러다가 교수로 갔다. 직장을 자주 바꾼다. (웃음) 어떤 이유인가?

- 안철수 : 안연구소를 10년 째 경영했을 때다.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사업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순이익 100억을 돌파한 최초의 회사가 되었다. 그런 편안하고 행복한 시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연구소는 전망도 좋고 편안한 곳이 되었는데, 주위에서는 벤처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내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사회 전반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야말로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이겠다 싶었다. 이것 역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 회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를 도와야 겠다 이 생각이었다.

- 박경철: 가치관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해본 후에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냐? 그냥 힘들어서 옮기는 것이냐? 당신의 가치관이 무엇이냐?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올바른 답변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나의 가치관은 무엇이다”라고 바로 나와야하는데, 그러한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어떤 것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기준인데, 기준이 뚜렷하면 그 위에서 목표를 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남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가게 된다. 정상에 열심히 올라서도 내가 가고자하던 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한다. 목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 무엇이냐? 그것에 맞춰 목표를 정하고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기준이 없으면 남을 짓밟는 성적과 등수가 최고인 줄 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돈을 다 벌고 나서 인생 전체가 허무해질 수 있다. 안선생님의 가치관은 세상 모든 것은 나 혼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거다.

- 안철수: 사업하면서 많이 느꼈다. 열심히 해도 실패하고 열심히 안해도 실패한다. 10년간 회사 사장을 하며 느낀 것은 성공에 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2/3다. 나머지 1/3은 주위사람들의 도움과 사회에서 제공해준 기회 덕분이다. 성공했다고 100프로 내 몫은 아니다. 나머지는 도와준 사람들의 몫이다.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스스로 느꼈던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것은 모두 나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흔히 보는 성공 스토리는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불굴의 의지로 성공을 했다는 것인데,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 것일까? 어쩌면 그런 생각이 천민자본주의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을 교정하려는 노력. 역사를 보면 한쪽으로 기울면 반동이 심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합의와 그러한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안철수 교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획기적인 도전을 해왔는데요. 그 도전의 숨은 이유는 바로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습니다.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서 지금의 성공에 이르렀기에 다만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고 싶다는 간절한 꿈으로 선택했기에, 어려운 순간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이 도전했던 것이지요. 도전하는 용기는 공익 정신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돈벌이와 안위 보다는 사회의 공공성을 늘 우선했기에 그 도전은 더더욱 용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안철수 연구소는 기업 이익보다는 사회의 공공성을 우선했기에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백신을 배포할 수 있었고 외국 기업의 천만달러 인수 제안도 당당히 거절했던 것이지요. 그 공익성에 감동한 사람들로 인해 더 성장하는 안철수 연구소가 될 수 있었겠지요.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님들처럼 국민의 세금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해 놓고선 마치 오직 자신의 성과인 마냥 성공을 독식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아름다운 가치 아닙니까. 한국 사회에서 안철수 교수 같은 사람이 있어 정말 고맙고 위안이 됩니다. 젊은 청춘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아름다운 가치관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