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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두신 부모님들은 이 글을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포스팅 시작합니다. 직접 묻고 답하는 강의 형식으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법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그 고민을 질문 했고,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사람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어 훈훈했습니다.

[질문]

지금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가 둘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을 사회의 큰 일꾼으로 키우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욕심인지 여쭙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니까 서서히 저와 부딪히는 문제가 생기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자라게 될까요?

[법륜스님의 답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어머니의 순수한 소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심입니다. 욕심으로 애를 키우면 잘 클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욕심으로 애를 키우는데 어떻게 애가 잘 클 수 있겠습니까? 애를 잘 키우고 싶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보세요. 자식은 어차피 부모를 닮습니다. 자신을 닮으면 아이들이 훌륭하게 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춘기 아이하고 부딪히는 수준이라면, 그 수준의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식을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그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부터 변해야지요.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지금부터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모델이 되어야 할까요? 보디사트바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 된다는 말은 우선 부부지간에서도 남편이 뭐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남편을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마음먹어도 내일이면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미 남편에 대한 생각, 말투 같은 것들에 선입관이 있어서, 다시 말해 습관이 되어버려서 금방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까르마(업식)라고 하는데, 까르마라는 게 그렇게 무섭습니다.

지금 노력해서 훌륭한 보살이 되려면,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으려면 각고의 노력과 정진을 하셔야만 합니다. 자기 까르마를 극복해서 정말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가겠다면 용맹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힘들고 멀게 느껴진다면, 생긴 대로 살면서 인생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세요. ‘내 복에 밥만 먹고 살아도 다행이지 뭘.’, ‘내 복에 당신 같은 남자 만난 것만 해도’, ‘어떤 남자가 나 같은 여자 데려 가겠나. 고맙습니다.’, ‘내 수준에 애들이 그만해도 다행이지, 그래도 너희들은 나보다 낫다.’ 이렇게 받아들이면서 편안하게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적인 사람이 됩니다. 자식 문제도 내가 자식에 대한 욕심을 놓으면 됩니다. ‘나 닮았으니 뭐 지가 훌륭하면 얼마나 훌륭해지겠나. 네가 살고 싶은 대로, 네 맘껏 한번 살아봐라. 잘못되면 얼마나 잘못되고, 잘되면 얼마나 잘 되겠나.’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하면서 자식한테 너무 기대하지 말고, 탁 놔 주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나아집니다.

문제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고는 싶은데, 그러기 위해 내가 변하려니 그건 자신 없고 힘들어서 그렇게 하기는 싫고, 마치 성불은 하고 싶은데 수행은 하기 싫고, 1등은 하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고 ……, 하는 것처럼 이런 마음 속에서 늘 우왕좌왕한다는 것입니다. 욕심만 잔뜩 있을 뿐 노력은 안 하는 것입니다. 노력을 엄청나게 하고도 그 결과를 바라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노력은 하나도 안 하면서 결과는 엄청나게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이 괴로운 것입니다. 복은 하나도 짓지 않고 복 받기는 태산같이 받으려 하고, 나쁜 짓은 수도 없이 해 놓고 재앙은 하나도 받지 않으려 하니, 이것은 인과의 법칙을 전혀 믿지 않고 무시하는 자세입니다.

보디사트바는 복은 태산같이 지어놓았더라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고, 설령 복이 오더라도 중생에게 회향하는 사람입니다. 나쁜 짓이라곤 하나도 안 했어도 중생을 위해서 재앙을 기꺼이 내가 대신 받겠다고 한 분이 지장보살입니다. 복을 태산같이 지어서 그 복을 다 중생에게 주겠다고 하는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걸 우리가 만분의 일이라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인과법도 안 믿고, 나쁜 짓을 수도 없이 해 놓고 재앙은 털끝만큼도 받지 않으려 하고, 복은 털끝만큼도 짓지 않아 놓고는 복을 태산같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될 수 없는 걸 원하니까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은 고통밖에 없습니다.

진정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먼저 본인의 수행에 힘쓰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 해탈할 자신이 없거든 자식을 편안하게 바라보고 놓아주세요.

요점을 정리하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면 먼저 본인부터 잘 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울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자식한테 너무 기대하지 말고, 탁 놔주라... 그러면 자식이 더 잘 될 것이다... 아주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힘겨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저에겐 이 말씀이 정말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은 아이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많은 부모님들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저도 나중에 자식을 나으면, 나부터 모범을 보이는 그런 부모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