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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아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괴로워요.” 법륜 스님의 답변

안녕하세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오늘도 시작합니다. 오늘은 44세 아들이 술을 많이 마시면 이성을 잃고 가족을 힘들게 하는데 어떻게 하면 술을 끊게 할 수 있을지 질문한 할머니의 사연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강연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괴롭습니다. 아들은 술을 많이 먹으면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44살 먹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모두 웃음)

 

“44살이나 먹은 아들한테 엄마가 지금 ‘술 그만 먹어라’ 한다고 그만 먹을까요? 그래도 계속 먹을까요?”

 

“제가 아들한테 ‘이거 한번 먹어볼래?’ 해도 아들은 절대로 제 말을 안 듣습니다. 엄마가 권하는 건 안 먹고, 엄마 말이라면 안 듣고, 그래요.”

 

 

“질문자는 그런 경우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오랫동안 경험해 왔잖아요. 지금 와서 질문자가 아들한테 ‘먹지 마라’ 그러면 아들이 그 말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안 듣습니다.”(모두 웃음)

 

“그럼 아들이 질문자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들어줬으면 좋겠지만 안 들어줘요.”

 

“아들이 ‘네’하고 질문자 말을 따르게 하는 방법을 제가 알려드린다면 질문자는 제 말을 따르겠어요?”

 

“예, 스님 말을 듣지요. 그 말을 들으려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오늘부터는 아들에게 ‘너 매일 술 먹어’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그러면 따라할까요? 안 할까요? ‘술 먹지 마라’ 하니까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안 듣잖아요. 그럼 ‘먹어라’ 하면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들을 거 아니에요?”(모두 웃음)

 

 

“그럼 ‘매일 먹어라’라고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안 듣습니다.(모두 웃음) 제가 뭐라고 말해도 아들은 제 말을 안 들어요.”

 

“그러면 질문자가 ‘먹어라’ 그러면 아들은 절대로 질문자의 말을 안 듣기 때문에 술을 안 먹겠네요? 정말 그래요?”(모두 웃음) 

 

“아니요.”

 

“그럼 오늘부터 매일 전화해서 ‘너 술 먹어라. 가능하면 많이 먹어라’라고 얘기하세요. 그러면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잘 들을 거예요. 쉽지요?” 

 

“그거는 쉽지요. 먹으라고 하는 건.” 

 

“예,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예요. 아들이 술 먹기 때문에 질문자가 괴로운 게 아니라 질문자가 아들한테 ‘먹지 마라’고 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 아들이 술을 먹으면 걔 마누라도 괴롭고, 아기도 괴롭고...”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래서 질문자가 아들한테 ‘먹지마라’ 그러면 안 먹느냐고 제가 물어보잖아요.” 

 

“먹지 마라고 해도 먹습니다.”(모두 웃음)  

 

 

“그러니 ‘먹어라’ 그러면 아들이 내 말을 잘 들을 것이니까 질문자는 안 괴로울 거 아니에요? ‘먹지 마라’고 해도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안 들으니까 질문자는 괴로운 거잖아요. 아들이 술 먹고 행패 피우니까 질문자도 안 좋고, 아들도 안 좋고, 며느리도 안 좋고, 손녀도 안 좋고, 넷이 다 안 좋잖아요. 그런데 내가 ‘너 술 많이 먹어라’ 그러면 아들이 질문자의 말대로 술을 많이 먹을까요? 안 먹을까요?” 

 

“먹겠지요, 뭐.”

 

“그래요. 그럼 질문자는 괴로울 일이 없잖아요. 아들이 질문자의 말을 잘 들으니까요. 그러면 네 명이 다 안 좋은 게 나아요? 세 명이 안 좋더라도 질문자 혼자라도 괜찮은 게 나아요?” 

 

“......” (대답을 못함)

 

“세 명이 물에 빠졌는데 질문자도 의리 있게 같이 빠져죽는 게 낫겠어요? 세 명이 빠져 죽더라도 질문자 혼자라도 사는 게 낫겠어요? 같이 괴로워하는 게 나아요? 나 하나라도 덜 괴로운 게 나아요?” 

 

“아들은 제 자식인데요... 제가 어떻게 그게 잘 되겠습니까.” 

 

“자식이라 하더라도 질문자까지 괴로운 게 나아요? 질문자라도 덜 괴로운 게 나아요?”

 

“그거는 ... 답하기가 좀 그렇네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 

 

“저는 74세입니다.” 

 

“질문자가 저보다 열 살 많으시네요. 저보다 열 살이 많으시면 저보다 시건(‘지혜’를 뜻하는 사투리)이 더 있어야 하잖아요. 저보다 10년이나 더 사셨으니까요. 질문자는 결혼도 해 봤고, 애도 낳아봤고, 손자까지 봤으니까 저보다 인생경험이 더 많으시잖아요. 그러면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시건이 저보다 나으셔야 될 거 아니에요? 경상도 사투리 ‘시건’ 알지요?(모두 웃음) 

 

저는 결혼도 못 해 봤고, 애도 못 낳아봤으니까, 시건이 좀 부족할 거잖아요. 또 질문자가 저보다 10년이나 더 살았으니까 시건이 저보다는 나아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시건이 없으세요? 

 

다시 제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네 명이 다 손해 보는 게 나아요, 세 명이 손해 보고 한 명이라도 손해 안 보는 게 나아요?” 

 

“제 생각은요, 제가 괴롭더라도 그 세 식구는 안 괴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런 길은 없어요. 길은 딱 두 가지예요. 넷이 다 괴로운 길과 질문자 혼자라도 안 괴로운 길, 길은 이 두 가지밖에 없어요.”

 

“저라도 안 괴로우려면 아들한테 술을 자꾸 먹으라고 해야 되겠네요.”(모두 박수)

 

 

“그래요. 그러면 질문자의 아들은 효자가 되는 거예요. 제 몸을 버려가면서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들이니까요. 제 마누라 괴롭히고, 제 딸 괴롭혀가면서도 엄마 말이라면 그저 다 들으니까요. 천하에 그보다 더 한 효자는 없어요.”(모두 웃음) 

 

“그럼 내일부터 아들한테 자꾸 ‘술을 많이 먹어라’고 해야 되겠네요?” 

 

“예.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내일부터는 ‘술 먹지 마라’ 소리는 절대 하지 마세요. 그건 아들이 불효자가 되는 길이니까요. 이왕 건강이 안 좋은 건데, 아들이 효자라도 되는 게 낫잖아요. 죽더라도 불효자보다는 효자로 죽는 게 낫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들을 볼 때마다 ‘오늘 술 좀 더 먹어야 되지 않겠니? 덜 먹은 것 같네’, ‘오늘은 왜 빼먹었니?’라고 하세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절에 다니세요?” 

 

“예, 매일 다닙니다.”(모두 웃음)  

 

“매일 절에 다니는 분이 시건 머리가 그렇게 없어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이렇게 기도하세요. ‘부처님, 우리 아들한테는 술이 보약입니다’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보약은 빼먹으면 됩니까? 아니면 계속 챙겨먹어야 됩니까?”(모두 웃음)  

 

“매일 먹어야지요.” 

 

“그래요. 질문자가 보약을 챙겨줘야 되는데, 아들이 알아서 자기 스스로 밖에서 먹고 오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 아들이 혹시 보약을 안 챙겨 먹었으면 질문자가 챙겨줘야 돼요.” 

 

“제가 아들이랑 한 집에 같이 살진 않고 따로 살아요.”

 

“그럼 전화해서 챙겨야 돼요.”

 

 

“아들한테 전화해서 ‘술 많이 먹어라’고 해야 돼요?”(모두 웃음) 

 

“말은 ‘술 먹어라’라고 해도 마음으로는 ‘보약 챙겨먹어라’라고 하세요. 그러니 부처님한테도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다른 사람한테는 술이 독이 될지 몰라도 질문자의 아들한테는 뭐라고요?” 

 

“보약입니다.” 

 

“예, 그렇게 기도하시면 아들이 좋아질 거예요.” 

 

“저는 매일 아들이 술 끊게 해 달라고 축원했는데요.”  

 

“그렇게 기도를 잘못하니까 질문자의 소원성취가 안 된 거예요. ‘부처님, 우리 아들 술 먹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으면 당장 소원성취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부터 편안하게 사세요. 아들이 술 먹고, 며느리와 이혼해도 질문자는 행복하셔야 돼요. 늙어서 행복해야지, 늙어서 걱정할 일이 뭐 있어요? ‘아들아, 술 먹어라’ 이것만 하면 질문자는 행복해질 거예요.”        

 

“예. ‘아들아, 술, 보약 먹어라’ 이러겠습니다. 저는 아들이 술 먹는 것 말고는 딴 걱정이 없어요. 그러니 지금부터는 행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여러분도 법문을 들으려면 이렇게 말귀를 알아차려야 해요. 어중간하게 듣지 마시고요.” 

 

처음에는 할머니가 스님의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는데, 스님의 거듭된 질문에 스님의 말씀대로 생각을 탁 바꾸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스님의 해법에 청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삶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강조하면서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74세 되시는 할머니가 당신 아들에 대해서 ‘술 먹어라. 많이 먹어라. 술이 보약이니까 너는 술을 많이 먹어야 된다’라고 생각하면, 당신한테는 이익이지만 아들한테는 손해일까요? 아니면 질문자한테도 이익이고, 아들한테도 더 이상 손해날 일이 없는 걸까요?” 

 

“더 이상 손해날 일이 없어요.”

 

“엄마가 행복하면 아들한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까요? 손해가 될까요?” 

 

“이익이요.”     

 

 

“질문자한테만 이익이 아니에요. 엄마가 행복하면 아들도 좋아합니다. 엄마가 늘 울고 있는 것보다는 좋아할 거예요. 이렇게 나도 이익이고, 남도 이익이 되는 이런 길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시간적으로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공간적으로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과 나눈 얘기가 바로 그런 진리에 대한 거였어요. 

 

그런데 방금 질문하신 할머니께서는 ‘아들한테만 좋으면 나는 손해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셨는데, ‘아들한테 좋다면 나는 손해나도 괜찮다’라고 하는 엄마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들도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엄마가 괴로운 대신 아들이 좋아진다면 괜찮지만 엄마가 괴로워봐야 아들한테 하나도 좋을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들아, 술 많이 먹어라’ 하면 우선 엄마가 좋아집니다. 효자 아들 하나 둔 셈이니까요. 그 아들이 엄마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 절대 어기는 법이 없거든요. 그렇게 엄마가 아들 술 먹는 것을 보면서 잔소리는커녕 ‘그래, 오늘 잘 먹었다. 너는 술을 먹어야 된다. 내가 스님께 여쭤보니까 너는 술을 먹어야 네 명대로 산다더라. 너한테 술은 보약이란다’라고 말하면서 등을 두드려주면 아들이 술을 더 많이 먹을까요? 똑같이 먹을까요? 어쩌면 좀 적게 먹을까요?”

 

“적게 먹게 돼요.”

 

“똑같이 먹거나 적게 먹을 확률이 있지, 많이 먹을 확률은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로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그렇습니다. 엄마한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큼 더 먹거든요.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방법이 얼마나 현명한 겁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아들 참 착하다. 엄마 말을 이렇게 잘 듣네. 효자다’라고 말하면서 항상 등 두드려주면 아들한테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또 스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결국 우리 아들이 술을 적게 먹게 될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이 술을 적게 먹게 되는 걸 보더라도 좋아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변했기 때문에 좋아하면, 나중에 아들이 술을 더 먹게 되었을 때 다시 괴로워지거든요. 그러니 아들이 술을 적게 먹어도 제 인생, 많이 먹어도 제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문제는 내버려둬야 질문자가 항상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세요?”

 

“예.” 

 

 

“그러니 술 먹는 아들이 있어도 행복해야 되고, 이혼한 아들이 있어도 행복해야 되고, 남편이 죽어도 행복해야 되고, 애가 게임에 빠져도 행복해야 되고, 아들이 공부를 안 해도 행복해야 돼요. 내가 괴로워한다고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안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것 때문이다’라고 조건을 내걸고 괴로워하면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다가 죽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 지금 시기가 가장 좋은 거예요. 늙으면 늙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신혼은 신혼이 좋고, 처녀 총각은 처녀 총각일 때가 좋은 거예요. 결혼해서 한번 살아보세요. 처녀 총각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데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약간 교정하는 것,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치는 것,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 인생을 살면서 이러저러하게 일어나는 일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미워하지 마시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2시간 30분 동안이나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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