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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회 강연

[법륜스님 세계100강 제37강] 프린스턴 대학교 "명상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전 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이 묻는 인생에 관한 질문과 법륜 스님의 답변! 오늘도 시작해 봅니다.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7번째 강연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미국에서 북한관련 전문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워싱턴DC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북한 난민의 상황, 북한의 식량난 사정을 알리며 국제 사회에 대대적인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후 북한난민문제와 식량문제가 단순한 지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정치적인 사안들과 얽혀 있음을 보고, 우선 국제사회에 북한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04년부터 북한 소식지인 ‘오늘의 북한소식’ 도 발행했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북한 전문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2012년에는 스님이 지금까지 해오신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북한인도적지원, 난민지원사업 등에 대해서 뉴욕타임즈에 인터뷰 기사가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는 2013년 9월 스님을 초청하여 북한 관련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올해에도 첫 외국인 강연의 테이프를 이곳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동시간이 5시간 이상이 되고 12시부터 미팅과 강연이 있기 때문에 오전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시라큐스에서 프린스턴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프린스턴으로 가는 도중에 아침에 만들어온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늘 미팅 장소로 걸어가니 스님을 초청한 Matt Weigner 박사가 반갑게 나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Matt 박사는 “스님께서 하시는 활동이 어떤 참여불교 학자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활동과 경험을 이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스님께 부탁했습니다. 



총 12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명상이 평화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던 내용과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물었던 내용,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모두 동시 통역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질문자 : “평화 운동도 하고 있으시고 명상도 하고 있으신데, 명상이 스님께서 평화 운동을 하시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스님께서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통합이 된다고 보십니까?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명상을 통해 평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 법륜 스님 : “자신의 마음속에 화가 나 있다면 다른 것들에 대해서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행위가 파괴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서 평화 문제를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 하에서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되면 이것은 문제를 개선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마음을 평화롭게 갖는 것이 명상의 핵심입니다. 명상에는 3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첫째, 어떤 긴장도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든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든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세 번째는 집중된 그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알아차림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호흡 명상을 한다고 할 때 먼저 몸과 마음의 모든 긴장을 풉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을 코끝에 집중해서 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줄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매 순간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흡을 하고 있는지도 잊고 지냅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아, 내가 호흡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가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가쁘면 ‘숨이 가쁘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부드러우면 ‘숨이 부드럽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어떻게 호흡하느냐가 아니고 다만 자연 상태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뚜렷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머리속에서 지나간 과거의 생각이 떠오르고, 아니면 미래의 어떤 구상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그리로 뺏겨 버리면 호흡을 놓쳐 버립니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에도 연연하지 말고, 오지 않는 미래도 내려놓고, 오직 지금 여기, ‘호흡’에 집중해서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호흡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호흡이 부드러워지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더 안정이 되고, 그러면 다시 호흡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호흡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승작용으로 계속 나아가면 호흡이 아주 부드러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올 때의 온도 차이도 느껴지고, 숨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흔드는 코털의 감각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모든 미세한 상태에 대해 뚜렷하게 깨어있음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일 때 평화운동은 평화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화를 내어서 평화운동을 하면 평화란 이름으로 싸우게 됩니다.”


질문한 외국인 학생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는 듯 “Thank you”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외국인은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 질문자 :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사람이 지금, 여기에 고통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을 수 있나요?”



- 법륜 스님 : “육체적 고통 말고는 현재의 고(苦)는 없습니다. 괴롭다 할 때는 이미 자신의 의식이 어떤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되고 불안할 때는 자신의 의식이 미래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깨어 있으면 고(苦)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은 그대로 있습니다. 육체적 통증은 생물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신적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이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통증이 곧 정신적 괴로움이 된다든지, 그것 때문에 분노한다든지, 후회한다든지, 이런 것은 다 정신적인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적인 괴로움은 현재에 집중하면 다 사라집니다. 현재에 집중하면 육체적 통증은 통증으로만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증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면 좋아하고 싫어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다만 통증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답변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주문하며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괜찮은 시간이었습니까? 아직은 불교에 대해서 그냥 하나의 동양 종교로만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약간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불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챤이면서도 불교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다’,‘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유대 민족만이 믿었던 배타된 하나님을 인류의 보편적인 하나님으로 바꾸신 분입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징벌을 하는 하나님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로서는 그렇게 관습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이냐? 전 인류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면 지구의 종말은 멀지 않았습니다. 이 소비주의는 지속 가능한 문명이 아닙니다. 이제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