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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스님에게 "하루 아침에 깨닫는 법" 물었더니

스님에게 "하루 아침에 깨닫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긍적인 목적이지요. 옛날 선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승의 질문에 하루 아침에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인생이 행복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하루 아침에 깨달을 수 없을까?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겁니다.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즉문즉설"로 유명하신,  질문하면 언제나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시는 법륜스님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어떠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어려운 수행 기간을 보냈는데 "야사"라는 분은 어떻게 하루 만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지요?

* 잠깐, 여기서 야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잠깐 소개해 드릴께요.

야사는 부처님 당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그 한계를 느끼고 방황하던 중, 새벽녘에 강가에서 부처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설법에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새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흔들어 깨우니까 눈을 딱 뜨더니 “아, 꿈이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만에 깼습니다. 또 한 사람은 악몽에 시달린 지 10분이 채 안 돼 됐어요. 잠꼬대 하자마자 깨워서 그 사람은 10분 만에 깼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5시간 만에 깼고, 이 사람은 10분 만에 깼으니까 저 사람은 근기가 낮고 이 사람은 근기가 높은 사람일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야사는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으면 죽을 때까지 헤맸을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침 부처님을 만나서 눈을 뜬 겁니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나도 야사처럼 단번에 깨달을 수 없나?’ 생각하지만 그건 욕심입니다.

‘빨리, 많이’ 이런 생각은 다 욕심에 속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해탈할 수 있지 욕심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뇌를 자기중심에 놓고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세우니까 이게 동이 되고, 저게 서가 되고, 남이 되고, 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 잣대를 놓아 버리면 동서남북이 본래 없습니다. 어디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동이 되기도 하고, 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자기 잣대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걸 내려놓으면 번뇌는 즉시 사라집니다.

지금 법을 못 만나서 번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잣대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번뇌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절에 다니는 것, 결국 종교란 것에서도 모든 것의 중심은 ‘나’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괴로움은 내 잣대 때문에, 나를 중심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려놓으면 즉시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그걸 딱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동안은 꿈속을 헤매는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여러분도 어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맘에 쏙 들면 지나가는 스님도 ‘우리 스님’이 되고, 3년을 공부했더라도 순간 맘에 안 들면 그날로 뒤돌아서 버립니다. 이게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중생이지요.

그러니까 고뇌가 거기서부터 일어납니다. 나를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이것에서부터 동서남북이 생기고 만상이 생기므로, 이것만 내려놓으면 즉시 만상이 무상으로 돌아갑니다. 상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공부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나를 중심에 세우고 바라보던 모든 것을 놓아보세요. 그러면 누구 번뇌가 사라질까요? 내 번뇌가 사라집니다. 내 번뇌가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내 인생이 괴롭고, 내 번뇌가 사라지면 내 인생에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내가 즐겁습니다. 즐겁고 편안하니까 에너지가 자꾸 나오고 활력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짜증내고 성질내고 만사가 뜻대로 안 되고 절망하고 침울해지고 남 보기 싫고 죽고 싶습니다. 전생에 무슨 원수가 져서 저러나 싶어 전생도 원망스럽고, 온갖 것들이 다 문제가 되지요. 자기가 좋으면 전생도 좋고 내생도 좋고 지금도 좋고 길가는 사람도 다 좋게 됩니다. 자기 잣대를 내려놓으면 야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야사처럼 되는 길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 연습을 해 보세요. 실제로 되든 안 되든,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고 하면 말로만이라도 ‘예!’ 해 보세요. 지금은 말로만이라도 ‘예’가 잘 안됩니다. “내일 절에 가지 마라.” “예.” 내일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일단 “예”하고, 갈 수밖에 없다면 그냥 가고 꾸중을 들으세요. “안 간다 하고는 왜 갔느냐?”하면 “아이고, 죄송합니다”하면 됩니다. 그렇게 연습해 보세요. 거짓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라는 겁니다. 자기를 움켜쥐는 것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치는 속에서 한번 해 봐야 합니다. 연습 삼아 한 번 해 보려 해도 현실에 부딪히면 잘 안 되는게 현실이지만 연습으로 몇 번 해 보면 나중에 진짜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지혜가 생깁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다만 내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지만, 늘 남탓만 하던 습관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마음을  살피면, 단박에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 지금 당장부터라도 나의 생각을 내려놓은 연습,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연습을 한다면, 깨달음은 계속 늘어만 갈 것이고, 저의 인격도 성장해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의문이 해결되었나요? ^^;; 법륜스님이 들려주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