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하였다. 그는 항일빨치산 1세대인 최 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차남으로서, 2007년 제2차 정상회담 때 황해북도 책임비서 자격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했던 북한정권 내의 실세이다.

 

최룡해의 방중과 대화 재개를 둘러싼 움직임

 

이번에 최룡해는 군복 차림으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판창룽(范長龍)을 잇달아 만나 대화 재개의 의지를 피력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는 “조선은 유관 각국과 공동 노력해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 지난 24일 북한 최룡해(왼쪽)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이번 최룡해의 방중은 오는 6월 7~8일 미·중 정상회담과 6월 하순의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금년 초부터 계속되어 온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또한 대화국면이 전개될 경우 북한이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나가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대화 재개 움직임은 한·미 독수리연습이 끝나기 전인 4월 중순부터 나타났다. 4월 12~14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차례로 방문하여 한반도 문제와 양국 현안에 관해 협의했다. 4월 24일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한반도 문제를 협의하였다. 이러한 정책협의를 바탕으로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대화 재개를 위한 제1라운드가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북한을 상대로 한·미·중 3국의 긴밀한 외교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화 재개를 위한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한·미·중의 외교협의에 참여하지 못한 일본이 북·일 직접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5월 14일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자문역이 방북하여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일 수교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오는 7월 일본 참의원 선거 이전에 아베 총리의 방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북·일 대화에 대해 중국은 지지 의사를 나타낸 반면, 우리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번 최룡해의 방중은 대화 재개를 위한 제3라운드의 성격을 지닌다. 금년 들어 줄곧 북한의 한반도 위기 조성과 최룡해의 방중에 차가운 태도를 취했던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2013.5.25)는 사설을 통해 북한이 대화의사를 표명한 만큼 한국, 미국, 일본도 이에 호응해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주장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시선이 곱지는 않지만, 최룡해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대화국면의 전환과정을 주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취할 중국 측의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높아지는 미·중의 영향력과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미·중 정상회담은 2011년 1월 19일의 첫 미·중 G2 정상회담 이래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향을 잡아주는 계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태와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 등 일련의 사태로 위기가 고조되자, 미·중 양국 정상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이 깨지지 않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금년 들어 고조된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는 대화 재개를 위한 제1~3라운드 대화움직임을 거쳐 오는 6월 7~8일에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확실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가 주요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데 그친 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당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주도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이 합의되었다면, 오는 미·중 정상회담은 이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그렇게 됐다면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원론적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넘어선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의 구상을 내놓지 못하는 바람에, 일본과 북한이 치고 들어와 북·일 대화와 북·중 대화를 통해 각국이 주도권 경쟁을 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담판 지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반도의 운명이 미·중 강대국의 의사에 맡겨지는 상황이 오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남북한은 대화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서로 기싸움만 하고 있다. 지난 4월 9일부터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되어 5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비판하자, 북한 국방위 정책국이 담화를 발표해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이처럼 꽉 막힌 남북관계를 한국의 주도로 풀지 못하고 결국은 미·중 강대국의 손에 맡겨지게 되는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평화’를 논의해야 ‘신뢰’가 쌓인다


역대 한국정부는 강대국들의 담합에 의한 한반도 평화 논의를 막고 남북한이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직접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통일·외교정책의 역점을 두어왔다. 한국전쟁 이후 유엔에 의한 한반도 문제 개입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 남북한 당사자에 의한 민족자결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2년에 남북대화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담은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18일 남북 상호불가침협정의 체결을 북측에 제안한 데 이어, 같은 해 8·15 경축사를 통해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문세광의 저격 시도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8·15 경축사를 낭독하였으며, 이 때 제시된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이 △평화정착 및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 △대화와 교류·협조, △인구비례에 의한 자유총선거 등이다.


여기서 밝힌 자유총선거는 ‘유엔 감시 아래’가 아니라 ‘남북한의 공동관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제안과는 차별적이다. 또한 남북대화와 교류도 평화에 바탕을 둠으로써 역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남북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기 위해 각종 제안을 하고 남북대화를 적극 추진했으며, 남북대화를 회피하고 파탄시킨 쪽은 언제나 북한 측이었다. 신뢰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역대 정부의 입장과 상통한다고 하겠다.

 

박근혜 정부, 평화체제 문제를 선점해야 하는 이유


아직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밖에 안 됐기 때문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주도하여 남북관계를 새롭게 풀어갈 시간적 여유는 있다. 이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신뢰와 평화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억제와 대화의 두 축만으로 신뢰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남북한이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도 남북대화에서 ‘평화’를 의제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의 내용을 담지 않은 대화는 스스로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대북 억제력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려는 ‘소극적 평화’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수세적이었던 냉전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한반도 전체를 내다보며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야 하며, 동북아의 새로운 역학관계에 부합하는 한반도 평화를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앞장서서 제시하고 이를 외교적으로 주변국들에게 설득해 나가는 ‘적극적 평화’의 자세가 필요하다.


정전 60주년인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적극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남북대화나 6자회담의 의제로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회피하거나 지연시킬 이유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 역사의 객체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 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던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이명박 정부 이후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도 하루속히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선점하고 그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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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pe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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