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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돈 못 벌어도 아내에게 사랑받는 법, 스님의 답변

요즘 경기도 어렵고 물가도 오르고 먹고 살기 참 어렵습니다. 남자라면 가정을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못 벌어오면 가족들 얼굴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돈을 잘 벌어오면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빠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기를 펴고 살지 못합니다. 돈을 중시하는 문화가 가정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는 이런 남자들의 고민들이 질문되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돈은 많이 벌어오지 못하지만, 그래도 가족들한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이였는데요. 스님의 답변이 정말 “아하 그렇구나” 하고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질문]

어떻게 하면 돈을 조금 벌어오더라도 가족들한테 사랑 받을 수 있습니까? 


[답변]

아내에게 무조건 “예” 하면 된다

아내가 돈을 많이 벌어 오라고 하는데 남편이 조금 벌어 오면 밉상입니다. 그런데 돈은 못 벌어 와도 사랑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조건 ‘예’ 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있어도 아내의 어떤 요구에도 무조건 ‘예’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돈 적게 벌어 온다고 불평은 조금 들을지 몰라도 버림받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아내가 그 돈 가지고 생활하다 그래도 부족하면 자기가 알아서 벌어 오게 되어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 대신 아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섭하지 말고 질투하지 않아야 됩니다.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겁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얘기해서 인생이 재미없어 보이겠지만 분석해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원리가 그렇습니다. 다 자신이 좋아서 이렇게 사는 겁니다.

혼자 있을 때의 나와 결혼했을 때의 나는 같지만 다른 존재입니다. 쉬운 예로 수소와 산소가 따로 있을 때는 별개의 수소와 산소이지만,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물이 됩니다. 성분을 분석하면 똑같지만 존재 자체가 다르고, 성질도 다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면 자기의 존재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이름이 벌써 달라집니다. 아내가 있음으로 해서 남편이라는 이름이 붙고, 남편이 있기 때문에 아내란 이름이 붙습니다. 여자하고 아내는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말하자면 ‘여자 플러스 아내’가 되는 거지요. 그러면 남편이란 존재는 뭡니까? 아내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있지요.

결혼이 유지되려면 서로에게 이익이 돼야

그렇다면 아내는 왜 나하고 결혼을 했을까요? 남편하고 같이 살면서 덕 보겠다고 결혼한 것 아니겠어요? 마찬가지로 남자도 아내하고 결혼할 때 덕 보려고 결혼한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 살려야 됩니다. 이것이 결혼입니다. 또한 이것을 공생공영 또는 상생이라고 합니다. 보통 개별적 관계에서는 대부분 손해를 봐요. 각자 살면 따로따로 비용이 드는데 개별적 관계에서는 대부분 손해를 봐요. 그것이 제로섬(zero-sum) 게임입니다.

그러나 둘이 살면 두 사람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고 혼자 살돈으로 둘이 살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제도를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제도 입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만 보면 효율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진화는 효율을 따라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효율을 따라 움직이는 것

예를 들면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게 이익이었습니다. 노후도 보장이 되고 노동력도 생기고 심부름꾼도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자식을 많이 낳았는데, 지금은 자식을 많이 낳으면 부모가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낳지도 않고 안 낳으려고까지 합니다. 자식을 키우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자식이 노후보장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부모 입장에서는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결혼도 잘못하면 혼자 사는 것보다 못하고 손해가 생깁니다. 돈 뺏기고, 몸 뺏기고, 밥 해 주고, 빨래해 주고. 이렇게 손해만 보게 되는 경우는 결국 관계를 끊어 버리고 이혼을 하잖아요? 이혼이란 것도 별거 아니에요. 혼자 사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이 들면 하는 거예요. 

세상은 다 그런 원리에서 효율 따라 움직입니다. 사랑 같은 얘기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인간을 너무 고상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것이지 인생이란 거 별거 아닙니다. 그냥 물질이 결합해 일어나는 현상이나, 생명이 진화하는 현상이나, 여러분들의 인생이나 비슷비슷한 겁니다. 원리가 똑같습니다.

결혼 했으면 자기 혼자만 생각해서는 안돼

그래서 결혼이란 게 유지되려면 서로에게 이익이 돼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왕 결혼을 했다면 존재 방식이 바뀌어야지 자기 혼자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저처럼 자기만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혼자 살아야 됩니다. 괜히 남의 인생 괴롭힐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가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 이것은 윤리 도덕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상대에게 덕을 안 주고, 상대에게는 덕만 보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결국은 결혼도 장사와 같은 거예요.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계속 비싸게만 팔면 나중에는 손님이 다 떨어지잖아요. 처음에는 가까운 가게에서 샀는데 옆집에 가서 비교해 보고 물건 값이 너무 비싸면 다시는 그 가게에서 사지 않지요. 또 물건 값은 싼데 거리가 너무 멀어 기름 값이 더 들면 몇 번 가다 안 가지요. 결국은 이것저것 다 따져서 제일 효율적인 곳을 택하게 마련입니다.

좋은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

집 가까이에서 물건을 사든지, 아니면 멀리 가서 사든지 그것은 소비자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그것을 억압하면 독재가 됩니다. 결혼하고서 '안 살겠다.' 하는 것은 가게 손님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됐으면 아내에게 이익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이익이고, 어떤 것이 손해랄 것 없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면 됩니다. 아내가 돈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원하지 않고, 섹스도 그렇게 원하지 않고, 가끔 남편하고 같이 차 한 잔 마시며 얘기 나누는 게 필요하다 하면 그걸 제일 중요시해야 되는 겁니다. 돈 벌어다 주는데 왜 불평이 그렇게 많으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내의 필요에 쓰이는 게 남편이고, 남편의 필요에 쓰이는 게 아내입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고 결심할 필요 없이 상대가 뭘 원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하는 게 제일 좋은 남편이고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같이 잡시다 하면 같이 자고, 혼자 자고 싶다 하면 혼자 자라고 하고, 청소 거들어 달라고 하면 거들면 되는 겁니다.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면 인간관계가 부모와 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다 아니까 부모의 은혜를 잘 압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존재의 영역이 매우 확대 됩니다. 결혼을 하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부모라고 불러야 됩니다. 결혼으로 인해 부모도 둘이 되지요.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부모가 자기한테 해 준 게 하나도 없잖아요. 남자도 장인 장모가 나한테 해 준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왜 처가 식구 책임져야 되느냐, 내가 왜 시댁 식구를 돌봐야 하느냐, 이렇게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혼자 살 때 하는 얘기지 결혼을 하면 자동으로 부모를 생각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남편하고 나하고 붙어 있듯이 남편은 자기 부모하고 붙어 있고, 아내는 자기 부모하고 붙어 있단 말입니다. 그 관계를 끊으라고 하는 것은 불효하라는 것밖에 안 됩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은 남편이 효자 되도록 도와 주는 겁니다.

좋은 아빠는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

그리고 둘이 살면서 아이를 낳을 때는 둘이 좋아하다가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이 원해서 낳아야 됩니다. 낳았으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잘 보호하고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키워야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도리입니다. 낳아 놓고 보살피지 않는 것은 소위 인륜 도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의 원리에도 어긋납니다. 그다음에 일정하게 커서 사춘기를 넘어가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고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정을 떼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새끼가 어릴 때는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입에다 넣어 주지만, 날개에 털이 나서 날 수 있게 되면 먹이를 입에 안 넣어 줍니다. 계속 먹이를 먹여 주면 새가 날지를 못하고 날개가 굳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미 새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처음에는 먹이를 새끼 입안에 넣어 주다가 점점 크면 새집 밖 멀리에 앉아서 먹이를 입에 물고 앉아 있습니다. 아무리 새끼가 짹짹대도 어미 새가 꿈적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새끼가 날개 짓을 하며 펄떡거리고 기어 나와 어미 입에 있는 먹이를 먹습니다. 새끼들도 처음에는 똑같이 크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안 큽니다. 팔딱거리고 먼저 나오는 놈은 계속 어미 입에 물려 있는 먹이를 먹을 수 있고, 안 나오는 놈은 못 먹는 것입니다. 먼저 팔딱거리고 나온 놈이 결국 먼저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 주는 냉정함이 결국 그 새끼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도 성인이 되면 갓난아기 때 젖을 떼듯이 정을 딱 떼야 됩니다. 그래야 자립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대부분 정을 안 떼 주어서 몸뚱이만 어른이지 새끼잖아요. 결혼해도 다 부모 밑에 붙어살면서 손자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니까 등이 휘죠. 그래서 자식 하나 갖고도 죽을 지경입니다. 이게 다 자업자득입니다. 자기 인생도 버리고 아이 인생도 버리고.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무지에 속하는 겁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피는 장점은 있지만, 아이를 자립시켜야 할 때에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정을 떼 주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자식을 못 키우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래서 늙어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늘 근심 걱정이 많죠. 사실은 자식이 근심걱정덩어리가 아니라 어머니 스스로가 잘못해서 근심걱정덩어리를 만든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진정한 사랑, 아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

결론적으로 좋은 남편이 되는 길은 아내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것을 해 주는 것입니다. 또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는 도와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정을 끊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고 아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돈은 적게 벌어도 아내에게 사랑받는 법이 있네요. 그건 바로 아내가 필요로 하는 일을 열심히 해주는 것, 참 쉬운 것 같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이 이걸 해주지 못해 아내와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부 금술이란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상대에게 서로 맞추어 주려고 늘 배려하는 부부가 최고의 금술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돈은 조금 적게 벌어오더라도 이렇게 마음씨 좋은 남편이 있다면, 늘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죠.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주시고,  커서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간섭을 안해주시는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고마움을 느끼며 의젓한 성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돈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물론 많이 벌고 싶지만;;), 가족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그런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