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정오 북한은 중대발표라는 형식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원수 추대 사실을 공표했다. 7호 태풍 카눈의 접근으로 평양에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인민군 장병 결의대회를 위해 ‘4.25문화회관’에 모여있던 군인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와 우중(雨中) 경축무도회를 열었다.

 

초복(初伏)에 울린 평양의 나팔 소리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초복을 맞아 많은 직장인들이 삼계탕 집에 모여들어 정오 뉴스특보로 김정은 원수 추대 보도를 접했다. 오전부터 중대방송 예고가 있었고 청와대에서 안보장관회의가 열렸다는 점에서 궁금 반, 불안 반으로 뉴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다소 싱겁거나 식상한 내용이었다. 별것 아닌 내용으로 우리 정부가 호들갑을 떨었다고 대북정보력 부재를 탓하는 언론도 있었다.

 

과연 별것 아닌 일이었을까? 도대체 북한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김정은의 원수 추대 발표 직전, 북한 군부의 핵심인 총참모장 리영호 차수가 모든 보직에서 해임되었다. 중국 언론은 리 차수의 해임 사실을 당일 매시간 보도하였다. 일부 국내 보도들은 근거가 미흡한 채로 내부 권력암투설과 그 과정에서 총격전 발생첩보설까지 제기하였다. 그러나 총련계 ‘조선신보’는 리 차수 해임은 “당규약의 절차에 따른 정상적인 당권행사로서 이를 두고 체제불안 요인을 찾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추측성 보도의 확산을 경계했다.

 

체제특성상 북한 내부에 보수 진보파 간의 노선 대립이라든가 군부내 중간파벌의 존재를 상정하기는 어렵다. 리 차수는 김정은 시대의 등장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면서 김정은의 군부 내 오른팔이라고 까지 알려진 인물이었다. 건강상의 이유이든 군부 내 파벌 간 권력다툼으로 인한 것이든 자신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면 그것은 곧 김정은 권력에 이상이 생겼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리 차수의 해임 직후 김정은의 원수 추대로 평양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정은이 군부에 누가 보스인지를 보여주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다른 정황을 보더라도 김정은이 예상보다 빨리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립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이번 일로 ‘내부 권력투쟁설’을 따라가기보다 ‘정상적인 당권행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한다면 그 안에서 김정은 정권이 보여줄 새로운 국정방향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군정치와 젊은 지도자, 시험대를 통과했나?

 

김정일은 90년대 동구공산권 붕괴와 김일성 사망이라는 국내외의 총체적 위기국면을 선군정치라는 독특한 통치수단을 통해 돌파하였다. 선군정치는 국가위기관리체제로서 나름 역할을 하여 북한정권의 존립기반이 되어주었다. 이 과정에 군부는 선군정치의 주력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기반을 넓혀 왔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수년 사이에 안보위기 해소의 외교적 기회를 놓치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내부시책에 결단을 망설이면서, 국가위기상황이 과도하게 연장되어 사실상 상시화(常時化)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시 위기관리체제의 일환으로 국가사회 전반에 간여해왔던 군부가 타성에 빠져서, 위기극복의 버팀목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선군정치가 득세하던 때부터 군부가 스스로 무역회사를 차리거나 사업소를 열어 외국인과 주민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거나, 타 기관의 사업에도 안보를 이유로 간섭하고 특히 일부 광물이나 수산자원에 대해서는 독점권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런 일은 북한의 특수한 사정을 인정하더라도 임시적 비상조치가 아니라 상시적 현상이 된다면 그 부작용과 역기능은 불을 보듯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겨우 반년 전, 김정일이 채 풀지 못한 과제와 함께 선군정치의 한계도 함께 물려받은 젊은 지도자는 내외의 관찰자에게 기대보다 우려를 먼저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김정은의 권력장악 속도가 김정일의 경우에 비해 훨씬 빠르고 대중노출도 개방적이며 적극적이다. 군인들과 팔짱을 끼고 어린이와 노인을 껴안는 등 ‘인민과 함께하는 수령’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내성적인 김정일보다 외향적인 김일성을 닮았다.

 

중앙의 지시가 관철되었는지 여부보다 현장의 문제점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두는 지도방식도 할아버지 김일성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언론이 수령이 잡초를 뽑거나 관리를 질타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동안의 관료적 타성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지도자의 의지를 담은 상징적 메시지였다.

 

또한 최근에는 TV 뉴스 보도의 배경화면이 밝아졌으며, 짧은 치마와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외국 노래도 연주하는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주민들에게 방영되었다. 세계 각국에 무역대표부가 증설되는가 하면 북한 대표단이 중국 농촌개혁의 성공모델지인 장쑤성 화시촌을 시찰하기도 했다.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주요 정책들이 김정은의 이니셔티브인지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최근의 황금평과 나선특구 개발 등 적극적인 대외경협정책의 추진이나 핵보유국 위상 강화와 인공위성(장거리 로켓)의 개발 등은 김정일 생전부터 준비하던 사업들이다. 정책 목표나 과제 내용에서 김정일과 김정은 정권 사이에는 아직 차이가 드러난 것이 없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당대표자 회의를 2010년과 2012년 연달아 개최하면서 당조직 활성화를 취한 사실이나, 군부소속 기업들을 경제특구기관 소속으로 이관하는 움직임은 비상(非常)적 체제로부터 점차 정상적 제도로 전환하는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주목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번 리영호 차수의 해임도 ‘당 규약의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정상적 당권 행사’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정상화’ 사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정상화 과정을 통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누구인가를 내외에 확인시켜 나가고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변화하는가?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예상과 달리 북한이 처한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이를 돌파해 나갈 방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공백이 된 수령중심 체제를 김정은이 빠르게 메워나가면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수단으로 작동시켜온 ‘임시적 비상체제’를 점차 정상 제도로 전환하고 있다. 이로써 선군정치의 특권적 타성에 젖은 군부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경제관료와 전문당료들이 제 역할을 찾고 내부의 자원배분도 정상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그래야만 민생이 살아날 수 있고 체제불안을 벗어날 수가 있다.

 

북한은 작년 대외경제협력에 필요한 관련법령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중국과 변경지역의 경제특구 공동개발을 위한 조치들을 취해나가고 있다. 올해에는 내부적으로 민생을 위한 중요한 시책들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선군의 깃발을 내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이러한 변화 추구는 더 큰 동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의 상황은 본격적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매우 취약하다. 언제나 돌발적 변수나 의도적 기획에 의한 반전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이 현장 지도시 관료를 질타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는 것은 젊은 지도자의 성향이 아니라 현장 상황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려움에 처하면 언제라도 비상위기관리체제에 기대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고, 그 구실을 외부위협과 체제보위의 필요에서 찾을 것이다.

 

지난 20일 북한 외무성이 김일성 동상을 훼손하려다 체포되었다고 하는 탈북자 전씨 사건을 들어 ‘핵 전면 재검토’ 주장을 편 것처럼, 불필요한 외부의 자극은 북한의 선군정치(위기관리체제)와 군부를 다시금 전면으로 불러내어 민생을 돌보는 바람직한 변화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에 군사적 대결과 긴장상태를 해소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이 변할 것인가 여부는 어쩌면 북한의 결단이 아니라 우리의 결단에 달린 문제일지 모른다.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5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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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ope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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