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7일,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두번째 강연이 스위스 베른에서 열렸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강연을 마치고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5시30분에 스위스 베른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렌터카에 몸을 싣고 독일 아우토반 위를 힘차게 달려, 독일 스튜트가르트, 스위스 취리히, 루체른을 지나 오후4시 무렵 코발트빛 호수가 너무나 아름다운 인터라켄을 지났습니다. 햇빛을 받은 호수는 더욱 옅은 빛깔로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산비탈을 끼고 들어선 예쁜 집들이 그 모습 그대로 평화를 느끼게 했습니다. 인터라켄에서 협곡으로 더 깊이 올라가니 융프라우 설산이 보였습니다. 양편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바위들과 높은 산들은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저녁 강연을 위해 일찍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더 깊은 계곡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차 안에서만 쓰윽 살펴보는 정도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 뒤에 보이는 설산이 융프라우입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차 안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차량에 전기밥솥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직접 해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스위스 베른에는 오후5시30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동한 거리를 되돌아보니 무려 700km 가까이 되었습니다. 오전5시에 출발해 오후5시30분까지, 오늘 하루는 차량 안에서만 줄곧 시간을 보냅니다.
스위스에는 한국 교민들이 2,156명이 살고 있다고 외교부 통계자료는 밝히고 있습니다. 주로 국제 결혼과 입양을 통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에서는 어떤 분들이 오셔서 스님과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기대감을 안은 채,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베른 강연에는 교민들 총 7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찾아온 교민들은 주로 국제 결혼을 한 경우가 많은지, 스위스인 남편과 함께 온 부부가 세 쌍 정도 눈에 띄었습니다. 각자 배우자에게 스님의 법문을 최대한 통역해주려고 소근 소근 거리거나 노트에 단어를 적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했는데, 오늘은 스위스인 남편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립니다.
- 질문자 : “저는 64세이구요. 스위스인 남편과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한달 뒤에 남편이 퇴직을 하면 한국으로 같이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지요?”
- 법륜 스님 : “질문자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늙으면 누구나 회귀 본성이 있습니다. 음식도 젊을 때는 외국 음식도 괜찮은데 늙으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편도 스위스에 살고 싶은 회귀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면 남편이 많이 힘들어지게 되겠죠. 한국 가서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는 건 괜찮은데, 남편의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질문자가 스위스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듯이.
이성적인 것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과는 일치하지가 않습니다. 질문자도 남편이 좋아서 스위스에 와서 살았지만 심리의 근저에는 늘 어려움이 있었던 것처럼 남편도 한국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편하니까 남편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늙어서 서로 마음에 금이 갑니다. 독일에 이민 온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60살이 넘어서 상당히 많은 수가 이혼을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을 때는 빵만 먹고도 외국생활이 가능하지만, 늙으면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내는 자꾸 한국 쪽으로 회귀하려고 하고 남편은 더 독일 쪽으로 회귀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음식 중에 김치는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쉬운데, 된장은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꾸 된장찌개를 끓여 식탁 위에 올려두면 이런 것으로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젊을 때는 말로 의사 표현하는 것이 다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통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끼리는 말을 안하고도 대충 짐작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외국인과는 정서적 교감이 떨어집니다.
어쨌든 한국에 돌아가서 산다고 했을 때 상대에게는 타향살이가 되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 때보다 10배 정도는 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방심하게 되면 전혀 예기치도 못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미세한 것들로 마음에 금이 가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스위스에 있는 집을 그대로 두고, 한국에 가서 조금 정도 살아보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다 털고 가면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먼저 살아보시면서 점진적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 안정성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살림을 말아먹어도 다시 일으킬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엎어지면 노후가 굉장히 초라해집니다. 실험적으로 해보면서 점진적으로 이동해 보세요.”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자가 다시 스님께 물었습니다.
- 질문자 : “한국 가도 고아가 된 느낌이고, 스위스에 가도 고아가 된 느낌입니다. 국제 고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 법륜 스님 : “그것은 질문자가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니고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고 대학은 미국으로 간 친구가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어요.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말이 딸려서 친구들과 못 어울리고. 미국에서는 영어가 딸려서 못 어울린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당연한 것을 받아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는 영어 밖에 할 줄 모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는 한국어 밖에 못하는데, 나는 미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영어를 잘한다, 이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질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 치고는 스위스에서도 살아봤고, 스위스 사람 치고는 한국말도 잘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져야지 남의 정체성에 자기를 견주어 가지면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질문자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는 무엇인가 이게 아닙니다. 나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삶이 조금씩 행복해짐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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