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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나이 팔십에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죠?

법륜스님의 전국연속 100회 강연 현장에 왔습니다. 오늘로서 100회 강연 중 26번째 강연을 맞이했네요. 전주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법륜스님 강연에서는 나이 팔십이 된 할아버님의 질문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질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수차례 번쩍 손을 드셨는데, 마침내 질문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죽음에 이르러서 인생무상을 느끼고, 세상 사람들이 왜 이렇게 탐욕을 부리고 사는지 답답하다는 한탄을 쏟아내셨습니다. 법륜스님은 10분 간에 걸친 기나긴 질문을 차분히 들으시고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었네요. 법륜스님이 들려주는 아름답게 늙는 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 질문자 : 전주시 효자동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나이가 팔십이고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저께 형수씨가 팔십 두 살에 돌아가셨는데 땅에 묻는 것을 보니까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또 요즘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가 만신창이예요. 믿을 사람이 없어요. 제가 여든 살이지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대통령 전부 다 진실성이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한심하고 착잡한 심정이에요. 탐욕을 버려라 다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하고 있어요. 남북도 60년이 지나도 세계가 다 통일했는데 우리나라만 화합을 않고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일일히 다 이야기 못 허겠어요. 제가 소신대로 살려고 해도 주위에선 “세상이 원래 그런데 나이 먹은 것이 왜 그러냐”고 막 그래요. 이것 참 괴롭습니다.

- 법륜스님 : 세상이 이래서 살고 싶지 않다고 그랬죠.

- 질문자 : 예. 그렇습니다.

- 법륜스님 : 그런데 팔십 두 살 먹은 형수님 죽는 거 보니까 인생무상을 느꼈다고 그랬죠?

- 질문자 : 예. 그렇습니다.

- 법륜스님 : 그 두 개가 모순이에요. 세상이 살고 싶지 않으면 팔십 두 살에 돌아가시는 걸 보면 ‘아이고, 니 잘 죽었다. 나도 저래 빨리 죽어야 되는데 니 죽는 거 보니 니는 진짜 복이다.’ 이런 마음이 들어야지요.

- 질문자 : 두려운 건 없어요.

- 법륜스님 : 그럼 뭐가 섭섭해요?

- 질문자 : 그냥 인생무상만 느낍니다.

- 법륜스님 : 왜 무상을 느낄까요? 다 때가 되어서 죽는 것인데요.

- 질문자 : 정 들었던 한 식구가 돌아가시니까 불쌍하죠.

- 법륜스님 :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지요. 낙엽 떨어지듯이 그냥 때 되어 죽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정에 의해서 보니까 섭섭해지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사람들도 '욕심을 버리면 좋다' 는 것을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죽는 게 그냥 때 되면 낙엽 떨어지듯이 죽는 것일 뿐이라고 알 듯이요. 그런데 지금까지 욕심 부리고 살아온 습관 때문에 현실에서는 욕심이 잘 안 버려지는 거예요. 마치 담배피던 사람이 ‘담배피면 해로우니까 끊어야지'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피던 습관 때문에 못 끊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세상 사람은 문제가 아닙니다. 본인이 겪었듯이 ‘살만큼 살다가 죽었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냥 뭍으면 되는데 그렇게 안 되듯이 세상 사람들 역시 그렇게 안 되는 것이지요.

- 질문자 : 저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돼 있어요.

- 법륜스님 : 아무것도 아닌데 살아온 습관이 있다 보니까 섭섭한 것처럼, 그 사람들도 다 잘 하려고 하는데 현실은 잘 안 되는 거예요.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통일하기 싫은 게 아니고 통일도 해야 되는데 통일해서 자기한테 이익이 돼야 하니까 어려운 겁니다. 통일을 하려면 자기 이익을 버려야 되는데 현실은 자기 이익을 챙기는 통일을 하려니까 결과적으로 통일은 고사하고 싸움만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 삶의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질문하신 분도 그런 모순에 있듯이 이 세상 모든 사람도 모순에 빠져 살고 있어요. 그러니 ‘먼저 나부터 이런 모순이 없는 삶을 한번 살아보자' 하세요. 나이 팔십에 죽는 것도 겁이 안 난다고 하시면서 왜 세상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으세요?

- 질문자 : 불만이 아닙니다. 현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 법륜스님 : 현실 비판 좋아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불만을 갖고 비판한다고 고쳐질까요? 아니면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고쳐질까요?

- 질문자 : 그럼 스님이 대안을 말씀해 주세요.

- 법륜스님 :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한다고 죽는 게 안 두려운 게 아니에요. 자연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봄에 새싹이 펴서 여름엔 무성하게 자랐다가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겨울에는 낙엽으로 떨어진단 말이에요. 잎사귀 하나만 생각하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거예요. 그러나 나무 전체로 볼 때는 죽는 게 아니에요. 나무가 자라나는 과정이지요. 그런데 낙엽이 가을에 누렇게 병들어도 안 떨어지고 계속 붙어 있으면 좋아요? (안 좋아요) 떨어지는 게 이치예요. 사람이라는 것은 나이 들고 낙엽 떨어지듯이 죽고 그래야 또 아이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이런단 말이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100년 200년 300년 500년 1000년 살면 세상이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나빠져요. 지금 100년 사는 이것만 갖고도 뭐 노령인구 증가니 사회 보장제도가 늘어나느니 하면서 옛날에 경험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지금 사회가 시끄럽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죽어야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늙고 병들고 죽는 이것에 대해서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 이게 집착이에요.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 이런 집착도 조금씩 버려져 가게 됩니다.

늙는 것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릴 때는 나이를 좀 높이고 싶어 하지요. 예전에는 학생들이 영화보려고 머리에 가발을 써서 어른 흉내를 내지 않았습니까? 젊은 게 좋은데 왜 학생들은 어른이 좋다고 그럴까요? 반대로 나이 들면 나이 든 것을 자랑해야 되는데 이번엔 또 머리에 물감을 들입니다. 주름살을 편다 하면서 나이를 자꾸 낮추려고 그래요. 이렇게 살면 힘들고 복잡하지 않나요? 젊을 때는 젊은 것을 만끽하고, 늙으면 늙은 것을 만끽하면 되는 거예요. 단풍이 곱게 물들면 예뻐요, 안 예뻐요?

- 질문자 : 예뻐요.

- 법륜스님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쁩니다. 그처럼 젊은이를 육체적으로 흉내 내려고 하면 안 돼요. 늙었기 때문에 장점도 굉장히 많아요. 나이가 들면 사람이 점잖아야 되지요. 그런데 젊은이가 점잖을 빼려면 힘이 들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저절로 걸음이 천천히 걸어가지고, 눈이 희미해서 어지간한건 잘 안 보게 되고, 어지간한 소리 잘 안 듣게 되고 저절로 점잖해집니다. 늙은이는 노력 안 해도 되고, 젊은이는 엄청 노력해야 되요. 반대로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처럼 뛰어다니고 재빠르게 하는 것을 흉내 내려면 굉장한 열등의식을 갖게 되요. 그래서 각자 자기가 가진 장점을 살려내야 된다.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게끔 장점을 살려내면 이것이 잘 물든 단풍이 되는 거예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뻐요.

잘 물든 단풍이 되려면 어떻게 돼야 됩니까? 잔소리를 해야 될까요, 안해야 될까요? 젊은이들이 연세 드신 분한테 제일 힘들어 하는 게 뭐예요? 간섭하는 것이죠. 어른이 볼 때는 나이가 40이 된 아들이라도 어릴 때 생각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만 자기는 자기가 다 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가 되면 말을 좀 적게 하는 게 좋다. 제일 좋은 건 말을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말은 또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옳으니 그르니 간섭하지 말고, 말을 해야 될 때는 염불을 하는 게 좋습니다. (대중 하하하 웃음)

나이가 들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드릴께요.

첫 번째, 재산을 처분하더라도 자기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은 갖고 있는 게 좋아요. 숨 넘어갈 때까지 내 몸 뉘일 방한 칸 유지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게 낫다. 다 주고 자식들한테 의지하면 나중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식들한테 다 주면 안돼요. 그러면 나중에 자식하고 원수 됩니다.

두 번째, 유산은 빨리 처분을 해서 굶어죽는 사람 도와주고 병든 사람 도와주고 이렇게 잘 쓰이도록 해버리세요. 많이 갖고 있으면 좋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고 나면 재산 때문에 내가 사랑했던 자녀들 사이를 완전히 원수로 만듭니다.

세 번째, 무엇이든지 과하면 안 되고 자기 관리를 잘해야 된다. 젊을 때는 과로하고도 하루 자고 나면 풀리는데 나이가 들면 그렇게 안 돼요. 운동도 과하면 안 되고, 일도 과하면 안 돼요. 과식해도 안 돼요. 술도 과음하면 안 돼요. 꼭 지켜야 됩니다.

네 번째, 욕심내면 안 된다. 늙어서 과욕을 부리면 좋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젊을 때는 큰 욕심을 내어서 무엇을 하려 하면 세상 사람들이 “포부가 크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 “제 처지를 모른다” 이렇게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격렬하게 주장을 해도 결과가 좋은데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설득을 하고 점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됩니다. 

다섯 번째, 말이 적으면 좋다. 말이 많으면 내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해도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안 난다.

이 몇 가지 원칙만 지키면 잘 물든 단풍이 됩니다. 꽃은 피어서 떨어지면 그걸 책에 끼워 넣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꽂아서 오래 보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숨 넘어 갈 때까지 노인이 굉장히 귀해집니다. 공연히 무슨 주사 맞아서 주름살 펴려고 하지 말고 주름살이 쫙 깔려야 경륜이 확 드러나는 거예요. 머리도 까맣게 물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머리가 허연 것은 경륜이지 절대로 나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몸을 고치려고 하면 안 되고 마음을 고쳐야 됩니다. 몸의 조건에 마음이 맞게 가면 오히려 젊을 때 보다 연세 들어서 훨씬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오히려 시행착오하면서 많은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나이 들어서 이 몇 가지만 잘 지키게 되면 인생이 마무리가 잘 됩니다.

정치 불신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정치라는 것도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 보내 놨는데 거기만 가면 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요. 그래서 거기 가지 마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우리 삶에 현실적으로 제일 많은 영향을 주는 게 또 정치입니다. 정치를 잘 하면 통일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정치가 더럽다고 하지만 정치가 우리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 더러우니까 포기해야 되겠어요? 어쨌든 이걸 개선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투표할 때 “우리 동네 사람이다, 우리 학교 출신이다, 나하고 친구다, 성이 같다, 잘 살게 해준다” 이런 걸 갖고 투표를 하기 때문에 이 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에게 1차적으로 잘못이 있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국민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한 개선이 안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계속 대한민국 욕하면 누구 손해예요? 나만 손해예요. 대한민국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하는 자긍심도 있어야 됩니다. 무조건 좋다 이러면 안 되고 자긍심을 갖고 어떻게 개선할거냐 이런 관점에 서야 됩니다. 정치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각성 밖에 달리 길이 없어요. 선거 포기하지 마시고 이제는 나라를 생각하면서 투표를 해야 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 현실을 인정하고 바꿔 나가셔야 합니다.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 정말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시집 제목으로 해도 될 것 같네요. 정말 감동적인 말이었습니다. 나이 든 것을 숨기려고 염색을 하고 주름살을 펴고 온갖 애를 쓰는 사람들을 봅니다. 스님 말씀대로 단풍이 안 떨어지고 붙어있으려 하면 이상하지요. 몸의 나이에 맞게 마음을 맞추면 인생 그대로가 편안해진다. 몸은 늙었는데 젊음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조목조목 일러주신 잘 물든 단풍이 되는 방법도 참 좋았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늙어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