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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추석이지만 실종된 이슈, 이산가족 문제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만 되면 망향의 서러움과 혈육의 정이 솟구쳐 누구보다 가슴을 태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북 이산가족입니다.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60여 년을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어느 누가 실감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뼈에 사무친 한을 풀어주는 것이야말로 시급한 인도주의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이래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 간 최대 이슈로 삼고 우선적 해결과제로 끊임없이 제시해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 15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동생에게서 받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있는 이복녀(86)할머니 (통일부)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이산가족 상봉 기회가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문제가 문제인지조차 모를 정도입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년 두세 차례씩 설날이나 광복절 또는 추석 무렵에 정례적으로 개최되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2008년 한 해를 거르더니 2011년 올해에도 또 거를 모양입니다.

실종된 이슈, 이산가족 문제

최근 우리 정부는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2009년과 2010년 각각 한 차례씩 있었던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한이 제의해서 겨우 성사된 것이고요. 북한의 제의는 우리 정부로 하여금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도록 압박하거나 유인하려는 저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만큼 간신히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이른바 ‘남북관계에서의 원칙’을 지키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로 말미암아 단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에서의 원칙’이 이산가족 상봉을 가로막은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역대 정부가 강조하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남북관계에서 최우선 과제”라는 말이 최근 들어 정부 당국자들의 언급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2008년만 해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지 못하게 되자 정부는 추석 무렵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전국 주요도시에서 이산가족 위로행사를 개최했는데, 올해에는 이런 행사마저도 없습니다. 지난달 여당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라고 정부에 촉구했으나 정부는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지요.
 
인도적 문제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지 못하는 이유를 남북관계 경색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는 문제이자 단번에 풀릴 수 없는 문제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안입니다. 지난달 말 현재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신청자는 약 12만 8000명입니다. 이 중 37.2%인 4만 8000명이 이미 사망했고 생존자 8만여 명의 43.6%가 80세 이상 고령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의 모든 정치적 현안이 풀리고 민감한 사안이 정리되어 ‘원칙’이 관철될 때까지 미루어둘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매달 300여 명이 고령으로 더 기다리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처지를 고려할 때 대북정책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오히려 과거보다 우선순위를 높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대북포용정책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등한히 하며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납북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70대 이상 고령이산가족의 남북 자유왕래를 추진하는 등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이산가족 관련 공약(公約)은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공약(空約)이 될 공산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이산가족 상봉 기회는 과거보다 크게 축소되고, 납북자 문제도 근본적 접근은커녕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오히려 문제 해결이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기회는 과거에 비해 5분의 1로 줄고 상봉규모는 6분의 1로 축소되었습니다. 연평균 상봉행사가 김대중 정부 시기 2.0회에서 노무현 정부 때는 2.6회로 늘어난 데 비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0.5회로 감소했습니다. 상봉규모도 김대중 정부 시기 연평균 1250명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2650명으로 늘었다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45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 자료 : 통일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 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화”하기로 한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북측과 남북대화의 의제로조차 합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의제로 채택해 명문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마지막 남북대화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2월의 남북적십자회담입니다. 현 정부 들어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한 치의 진전도 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초라한 성적표는 납북자 국군포로 및 이산가족 문제가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 당국과의 대화와 협조 없이는 풀릴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북한 붕괴론을 흘려가면서 대북압박 정책을 구사해온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2000년 6월의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남북에서 5만 명의 가족이 생사를 확인했고 그 중 2만 명이 직접 가족상봉을 하였습니다. 비록 전체 남북 이산가족 규모에 비춰 매년 두세 차례 이뤄지는 상봉행사는 규모도 너무 작고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더딘 속도와 제한된 규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합의와 협조만이 가시적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선의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미흡하지만 꾸준히 이산가족 상봉을 이어나가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기다림에 지쳐 있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을 생각할 때 인도적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봉행사의 미흡한 점은 이를 지속하면서 보완해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회담은 법률로 정한 국가의 책무

정부는 2008년 정부입법으로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습니다. 동법 제4조와 9조에서는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교류를 확대할 것과 이를 위한 남북회담의 추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지연되는 일이 단순히 북한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상봉 확대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며 법률의 명령입니다. 고령으로 기다릴 시간이 없는 이산가족의 사정을 감안해서라도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립해야 합니다. 

▲ 15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남측 권미화씨가 북측 아버지 권춘동(82)와 부둥켜 안은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통일부) 
 
오늘도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어르신들은 가족상봉 재개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분들 가운데 하루 평균 10명가량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있는 상황이구요.
 
비록 북한과 금강산 관광지구 내 우리 재산 문제로 대립하고 있고 핵문제에도 진전이 없으며 더구나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도 아직 매듭을 풀지 못한 형편이긴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최우선 과제로 자리매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과제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 문제를 비롯해 남북관계 전반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여건도 개선시킬 수 있을 겁니다. 
 
마침 추석 직후에 대한적십자사는 그동안 준비한 수해지원 물자를 북측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전달하는 이번 대북지원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산가족 상봉 논의가 재개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랍니다.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화답하길 바랍니다. 원칙 있는 남북관계는 인도주의적 자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33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