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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법륜 스님이 말하는 3.1운동의 의미와 교훈

안녕하세요. 지난 1일, 제96회 3.1절 기념법회가 용성 진종조사 탄생성지인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정토회 회원 700여명이 아침 일찍부터 먼 길을 달려와 함께 했습니다. 특히 3.1절 기념법회에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 활동을 하고 있는 30여명과 우리나라에 백용성 부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장병 30여명도 함께 자리해 큰 박수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또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 정문엽 이사, 광주 선덕사 행법스님, 남원시 강동원 국회의원, 장수군 번암면 차주호 면장, 신라불교 초전 법륜성지 아도 모래원 신영근 추진위원장 등이 함께 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먼저 오전9시30분부터는 3.1절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법륜 스님이 죽림정사 조실인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자 대중들은 모두 일제히 일어났고, 이어서 삼귀의, 반야심경,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 순서로 여법하게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3.1 독립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께 헌화를 했습니다. 참석한 내빈들은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개인의 안위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신 천도교 대표 손병희, 기독교 장로회 대표 길선주, 기독교 감리회 대표 이필주, 불교계 대표 백용성 등 민족대표 33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에 꽃을 한 송이씩 올렸습니다. 

 

먼저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가 3.1절 경과보고를 해주었습니다. 

 

▲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

 

용성 진종조사는 나라를 잃고 6여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조선왕조 시대에 3정승과 6판서 8도감사 360고을 수령방백을 지낸 이들이나 그 아들을 만나 독립운동에 앞장서거나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을 설득하여 경성 종로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하게 하여 조선총독부 경찰에게 체포 구금이 되도록 함으로써 이 소식은 2천만 동포에게 전해저 전국민이 독립운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됩니다. 신 이사님은 이외에도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을 위한 보이지 않는 많은 업적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용성조사님의 적법손이요, 정법안장 석가여래부촉계대법 제77세이시며, 용성조사 탄생성지 죽림정사의 조실이시며, 법륜 스님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나와서 1919년 당시에 낭독되었던 기미독립선언서를 우렁찬 목소리로 직접 낭독했습니다. 특히 큰스님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는 공약삼장 부분을 대중들이 함께 따라할 것을 요청하며 다시한번 당시 선조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 기미독립선언서를 우렁차게 낭독하는 도문 큰스님

 

그리고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의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과 중국으로 하여금 평화를 가져오게 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도 필요한 일’이라는 구절을 들으면서는 이것은 비록 당시에는 독립운동이었지만, 지금의 분단된 현실에서는 통일이 곧 그러한 일임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독립선언서 낭독을 마치시고 큰스님은 대중들에게 만세삼창을 다같이 크게 해보자고 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 남북통일 만세! 세계평화 만세!” 힘차게 만세삼창을 하고니 마치 당시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도문 큰스님의 선창에 다같이 만세삼창을 외치는 대중들

 

다음은 청년들이 나와서 ‘삼일절 노래’와 용성조사께서 직접 작사하신 ‘온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인 1919년 3월 1일, 96년 전 그날의 선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 온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청년들과 대중들. 

 

이어서 죽림정사 주지이고 정토회 지도법사인 지광당 법륜스님이 나와서 3.1절 기념사를 해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눈이 많이 오고 날씨도 추운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기미3.1독립선언이 있은지 9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이제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미완성의 독립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고 식민 지배 하에 있는 것도 큰 고통이었지만,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분단 70년의 고통도 그에 못지 않은 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통일은 커녕 평화마저도 위태로운 남북 대결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3.1운동 96주년을 맞는 우리들은 기쁘기 보다는 아픈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1919년 3월1일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이후로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요원의 물결처럼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지 10년 정도 지나자 이제 조선 백성들이 일본 천왕을 모시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는양 생각을 했는데 전혀 뜻하지 않게 2천만 동포가 하나같이 일어나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니 너무나 놀랐고, 그런 놀란 가슴에 이런 비폭력적인 운동을 가장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진압을 했습니다. 수많은 재산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이 되고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1919년 한해 동안  여기저기 끊임없이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는 경상도니 전라도니 함경도니 평안도니 하는 지역적 차별도 없고, 양반이니 쌍놈이니 하는 계급의 차별도 없고,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적 차별도 없고,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종교 차별도 없이 조선 백성이면 누구나 다 한마음이 되어서 민족의 염원인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역사란 것은 늘 드러난 것만 갖고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국민의 염원에 불을 지르고 독립운동이 전국민적으로 일어난 그 불씨는 3월1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은 선언한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나오듯이 저절로 시작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3.1독립선언이 있고 난 이후의 드러난 현상만 갖고 얘기합니다만 그에 못지 않게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고 봄비가 내리면 싹이 트고 자랍니다. 봄비와 따뜻한 기온이 싹을 틔운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 겨울 땅속에서 견뎌낸 씨앗이 있기 때문에 이런 봄을 맞아서 싹이 돋아난 것입니다. 바로 3.1운동에서도 이 씨앗과 같은 역할을 누군가는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에 모일 수 있으며, 어떻게 국민들이 일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를 위한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이십니다. 조사께서는 조선조 500년 동안 나라의 녹을 먹고 그 혜택을 입고 온갖 이익을 보고 권세를 누린 고위관료로부터 지방관리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열성적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을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이 돌아가셨으면 그들의 후손까지 찾아다니시면서 그 은혜를 갚을 것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나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나라의 주인은 백성들이고 이제는 백성들이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를 되찾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뜻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인 나라로부터 혜택은 못 얻었지만 조금은 먹고 살 만하고 국제 정세도 알만한 지식인 계층인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전 민족 운동이 되게 하려면 모든 종교가 크든 작든 다 참여해야 한다고 보시고 천도교, 기독교, 불교 세 종교가 힘을 모으도록 보이지 않은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의 준비가 있었기에 그런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사회적 갈등의 그 밑바닥에는 분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분단 극복 없이 민족의 번영은 어렵습니다. 성장은 둔화되고 국제 환경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묘하게 다시 큰 세력 사이에서 분단고착화가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남북 갈등이 심화되니까 북한으로부터의 방위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36년 간 지배한 일본과도 군사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도 아무 반대도 없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남북 갈등이 전쟁을 초래할만큼 긴장이 되니까 일본과의 군사협력까지도 우리가 용인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진척이 된다면 결국 남한은 미일 군사동맹체제 하로 들어가고 북한은 중러 군사동맹체제 하로 들어가서 우리는 또 강대국의 앞잡이가 되어서 새로운 갈등 상황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북한은 굶어 죽으면서도 군사비를 확충하고, 남한은 복지비의 수요가 많은데도 군사비 증강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시기에 3.1독립선언서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전국민의 뜻을 모아서 ‘우리의 살 길은 통일이다. 통일만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길이고,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길이고, 북한의 침해된 인권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길이고, 남한의 제 갈등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하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의병 정신을 계승해서 이제는 나라의 통일을 위하는 통일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이름을 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역사적으로는 정부나 누가 나서서 통일이 이루어졌다고만 기록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남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런 일이 되도록 준비하는 일, 종교 간 협력을 구하고 정부와도 협력하고, 지역 간의 협력도 도모하는, 누군가는 보이지 않게 이런 통합을 위해서 뜻을 모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곳 용성조사 탄생성지에 모인 여러분들은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처럼 우리들도 통일의병이 되자는, 그런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환영을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받도록 하고 우리는 뒤에서 밀어주는, 이런 보이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96년 전에 있었던 3.1운동을 생각하고, 그 일이 있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용성조사의 활동을 생각하고, 또 우리는 그 법을 계승한 사람들이니까, 그것을 본받아서 종교와 지역, 민관, 좌우를 떠나서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모두가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그 기초를 마련하는데 우리가 헌신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법륜 스님이 기념사를 마치자 대중들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봄의 따뜻함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런 씨앗 같은 역할을 한 용성조사님을 본받아 우리 모두 통일의병이 되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이렇게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진 후 11시30분부터는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각자 싸온 도시락을 들고 지역별로 타고 온 차량에 탑승해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700여명의 많은 대중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지참해서 먹으니 식사 시간이 전혀 소란스럽지 않고 아주 질서있고 조용했습니다. ‘역시 정토회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제96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용성조사의 탄생성지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발원해 봅니다. 죽림정사에서 나눠준 떡과 귤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가슴은 뿌듯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회자의 선창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서로 손잡고 부르며 다시한번 마음을 모아 보았습니다.



죽림정사 앞마당에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우고 있는 새싹들. 어려운 이 시기에 불교 중흥과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는 오늘의 정토행자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