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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법륜스님의 갈등사회에 대한 대답 “화쟁하라”

괜히 건드렸다간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친북좌파’, ‘수구꼴통’, ‘빨갱이’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이 있다. 대중의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인들일수록 한 번의 말실수로 한 방에 가버릴 수 있는 것이 한국사회다. 이런 우려로 쉽사리 발언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쟁점들을 법륜스님이 들고 나왔다. <쟁점을 파하다 :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이 그 책이다.

 

서점에 진열된 이 책을 처음 봤을 땐 “갈등을 피하다” 라고 읽었다. 갈등을 피하라니... 법륜스님이 어떻게 회피하란 얘기를 할 수 있지 하며 당황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갈등을 파하라” 즉 타파하라 그런 의미임을 이해하곤 혼자 피식 웃었다.

 

쟁점을 파하다▲ 갈등을 파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 법륜.

서문에서 법륜스님은 “내 주장이 모두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다”고 밝혔다. 묻혀져 있던 갈등의 치부를 공론의 장으로 꺼내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희망세상만들기 300회 연속 강연을 통해 대중들의 인생 고민을 상담해 온 스님은 즉문즉설로 널리 알려져있다.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한 상담집 <방황해도 괜찮아>와 엄마들의 자녀교육 상담집 <엄마수업>, 결혼남녀를 위한 연애 상담집 <스님의 주례사>에 이어, 이 책은 세상 문제에 대한 고민 상담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 책 <새로운 100년>에서는 남북 간의 통합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뤘는데, <쟁점을 파하다>에서는 남한 내의 국민통합을 위한 해법을 간명하게 제시한다.

 

책에선 갈등 현장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재벌세습, 성장과 분배, 교육, 남북문제 등 첨예한 사회 현안을 정면에서 다룬다. 세부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까지 자세히 언급하는 것에 다소 놀랐다. ‘내 생각, 네 생각’ 이란 편견 없이 당사자들의 말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정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법륜스님의 문제를 푸는 접근 방식이다. 그 열쇠는 책 표지 바탕에 깔린 ‘화쟁’(和諍)이다. 책에선 화쟁을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은 동쪽이라고 하고, 수원 사람은 북쪽이라고 한다. 표현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출발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도 차이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결과’만 관심거리지만, 스님은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떤 결정이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이라고 못 박는다. 실제로 법륜스님은 지난 10월1일~3일 추석 명절에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함께 강정마을에 가서 찬성파, 반대파 주민들을 모두 모아놓고 화합의 마을잔치를 연 바 있다.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생긴 마을 주민들 사이에 마음의 앙금을 씻어주는 과정이 중요함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찬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립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설 때는 양쪽이 객관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고, 공평한 자료를 내놓고선 국민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륜스님 개인은 원전 반대론자에 속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걸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참 새롭다. 기존 정치권에서 나온 해법들은 부자의 재산을 뺏거나 재벌을 해체하려 들고 재벌은 이에 극력 반발하는 대립 구도를 만들어 왔다. 스님은 이와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불황이 오면 약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기 때문에 여유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자기 권한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인도 세비를 깎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를 보여야 불황기의 한시적인 부자 증세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성장 동력도 떨어진다. 부자도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부자들이 전체 이익을 위해 나설 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나라가 된다.”

 

대통령과 정치인들부터 솔선수범을 보이고, 부자들이 스스로가 더 존경받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나누어야 함을 이야기해야 부자증세가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법륜스님은 지난 95년부터 17여년간 북한 이탈 주민들을 꾸준히 도와왔다. 하지만 그들의 남한사회 정착을 진정으로 도와주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민자로 대우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참 새롭다.

 

“특별하게 대우할 것이 아니라 일반 이민자로 대우하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 적응할 수 있게 조금은 도와주지만 귀순자처럼 특혜를 주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 돈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물질적 지원보다도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진정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속사정을 모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통일과 지방분권을 동시에 준비하는 8도연방제를 주장하는 부분이다.

 

“8도연방제는 남북이 일대일의 관계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가 안 되는가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남북한 개념을 뛰어넘는 것이다. 단순한 남과 북의 통일이 아니라 남한의 5개 자치도와 북한의 3개 자치도가 더해지는 방식이다.”

 

8도연방제는 자치권이 강화된 지방분권 모델로서 통일시대를 대비한 통일국가 모델로도 유용하고 세계 문명의 추세에도 걸맞다는 것을 강조한다. 통일에 대한 접근법을 굉장히 구체적인 단계까지 그려나가고 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한 분야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을 때 “문리가 트였다”고 표현한다. 문리가 트인 사람만이 쉽고 간명한 대답을 할 수 있다. 법륜스님은 모든 쟁점들에 대해 쉽고 간명한 대답만을 내어놓았다.

 

법륜 스님이 보는 이 시대 화두는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 밖으로는 “통일”이다. 누구라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례로 든 일제 시대의 판사 이야기는 시대적 과제를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교 나와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부장검사가 된 사람이 있다. 개인으로서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하루 아침에 역사의 죄인이 돼버린 것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았다. 그런데 왜 어느날 이 성공이 실패가 되었는가.”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아무리 성실히 살았어도 통일 된 이후에 양극화 해소가 된 뒤에 다시 평가받게 될 것이란 것이다.

 

법륜스님은 어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희망세상만들기 297번째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희망세상만들기 콘서트’를 북한의 시·군·구에서도 하고 싶다. 그러나 북한은 정신적 괴로움보다 더 시급한 것이 배고품의 해결이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옥수수 100톤씩을 보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300회 시군구 즉문즉설 강연을 통해 남한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은 치유해주었지만, 정작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어떻게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법륜스님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늘 고통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대중들의 아픔을 해결해 왔다. 새책 <쟁점을 파하다>에서도 같은 메시지다. 쟁점을 회피하고 쟁점을 타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쟁점을 파하다>는 우리들에게 큰 용기를 이끌어내어 준다. ‘쟁점 속에 뛰어들어야만 난관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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