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침 10시부터 정토회 저녁부와 청년부에서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거나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24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대야산 용추계곡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월영대를 한바퀴 둘러보고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오니, 계곡 옆으로 돗자리를 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가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난 후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사업에 실패한 뒤 가족에게 미안하고 스스로도 의욕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남자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23년 동안 사업을 해오다가 얼마 전에 파산을 했습니다. 직원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었고 잘 나가는 중소기업이었는데, 남들이 안 하는 블루오션 아이템을 한번 개발해보려고 도전했다가 성공을 하긴 했지만 판매권을 잘못 넘겨주는 바람에 폐업신고를 하고 파산을 해야 했습니다. 남은 공장 설비들을 대기업에서 인수해 가려고 여러 차례 접근해 왔는데,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빈번이 취소가 되니까 더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느라 그동안 벌어놓은 30억원도 다 까먹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첫째,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둘째,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세 가지 아이템을 개발했는데 비록 한 가지 아이템은 망했지만, 나머지 두 가지 아이템은 아직 가능성이 있거든요. 계약하는 기업들을 믿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으니까 요즘에는 ‘나만 없어지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겨우 버티고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제가 다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가족들에게도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혹시 정토회에서 하는 깨달음의장에 다녀오셨어요?”
“6월에 다녀오기로 신청해 두었습니다.”
“깨달음의장에 다녀오시면 좋아질 거에요. 지금 생각에는 내가 죽어버리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이 지팡이 하나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지팡이 하나 잃어버렸다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는 지금 그 일에 너무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집착을 딱 놓고 평상심으로 돌아오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2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5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10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햇수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만 햇수가 많으면 그만큼 집착이 강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큰 충격이었겠지만 세월호 사고로 아들딸 죽은 것과 비교하면 그 분들은 더 큰 충격을 겪었고, 이 자리에 남편이 죽은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자녀가 죽은 분의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더 큰 시각으로 이 지구 전체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바다에 물결이 치는 것에 불과해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20여 년 동안 중소기업 운영하다가 망한 것 때문에 죽을 생각을 했다면, 대기업 하다가 망한 사람은 자살을 열두 번도 더 해야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그런 심리 상태는 어떤 것에 너무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에요. 우선 내가 삶을 기쁘게 살아야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내가 곧 죽을 것처럼 살고 있는데 새로운 아이템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질문자가 지금 얼마나 어리석냐 하면, 그러면서 가족은 왜 또 걱정을 해요? 그건 가족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내가 파산을 했는데 내가 죽는 게 낫느냐? 그래도 살아 있는게 낫느냐?’ 이렇게 물어보고 ‘죽는 게 낫다’고 하면 죽고, ‘살아있는 게 낫다’고 하면 살면 되지요. 정말로 가족을 중심에 둔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가족들이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살겠지요. 다만 내가 나를 못이겨서 죽는 것이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가족들까지 걱정하면 못 죽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가족들 걱정하는 것을 보니 질문자는 못 죽을 것 같아요.(모두 웃음) 죽는 사람은 살아있는 가족들 걱정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나요?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나를 못 이겨서 죽는 건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시험에 떨어져서 죽고, 어떤 사람은 연애에 실패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이혼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가 되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해서 죽었다고 할 때 그 사람들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어서 죽었다고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게 무슨 죽을 일이냐?’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 차이는 뭘까요? ‘그게 무슨 죽을 일이냐?’ 할 수 있는 건 집착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고, 죽을려고 하는 사람은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어느 순간 집착을 탁 놓아버리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됩니다. 20년 넘게 해오던 사업을 문 닫은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수 있어요. 혹시 사채가 많아요?”
“사채는 없습니다.”
“사채가 없으면 더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돈을 챙기고 파산을 하면 욕을 얻어 먹지만, 내가 돈이 없어서 파산을 하면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빚을 많이 졌다고 하더라도 팬티만 딱 입고 ‘다 가져가라’ 하면 아무런 죄가 안 돼요. 내가 갖고 있으면서 남에게 안 주면 죄가 되지만요. 그래서 첫째, 파산했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질문자는 스무살 때 돈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도 이 사업을 일으켰던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 나이에 질문자가 가진 경험 정도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스무살 때보다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인맥으로나 경험으로나 모든 면에서 스무살 때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잖아요. 다만 스무살 때는 없는 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고, 지금은 자꾸 옛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할 의욕이 없어진 겁니다.
대기업과 계약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팔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비싸게 팔고 싶은 겁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의 심리가 팔 때는 비싸게 팔고 싶습니다. 반대로 사는 사람은 가능한 싸게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더군다나 부도가 났다거나 상대가 약점을 갖고 있으면 더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을 나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누구나 사고 팔 때는 심리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또 가족한테 미안할 것도 크게 없어요. 질문자가 그동안 사업을 잘 했기 때문에 아내도 마나님 소리 들으면서 한 번 살아볼 수 있었잖아요. 이 자리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마나님 소리 못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아내한테 그래도 마나님 소리 한번 들어보게 해줬으면 됐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요?(모두 웃음)
아내가 뭐라 뭐라 그러면 ‘알았다. 그래도 내 덕분에 마나님 소리 들으면서 한번 살아봤잖아. 그러면 됐지 않아?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 하세요. 이사갈 때 버리고 가면 그냥 혼자 살면 돼요.(모둣 웃음)
안 그러면 정토회로 오세요. 몸도 건강해 보이고, 그 정도 경험 있으면 톱질도 할 줄 알고, 낫질도 할 줄 알고, 땅도 좀 팔 줄 알 것 아니에요? 저랑 같이 인도에 갈래요? 학교도 지어야 하고, 마을 개발도 해야 하고, 지금 할 일이 천지예요. 그래서 당신 같이 멀쩡한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까 저는 너무 아까워요. 그 몸 그냥 갖다 버릴 바에야 차라리 저를 주세요.(모두 박수)
왜 쓸데 없는 곳에 갖다 버릴려고 그래요? 저에게 주면 쓸 곳이 천지예요. 앞으로도 한 20년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랬는데...’ 하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에요. 탁 털고 일어나세요.
부도난 회사를 처분하는 문제도 그래요. 물론 옛날에 회사가 잘 나갈 때는 값이 잘 나갔겠죠. 그러나 일단 부도가 났다 하면 싸게 사려고 하지 비싸게 사려고 하지 않거든요. 자꾸 ‘옛날에 이게 얼마였는데...’ 이 생각을 하면 절대 못 팝니다. 그냥 갖다 버리느니 적절하게 요령껏 팔고,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죽는다면서 상심하지 말고 다시 다른 곳을 물색해서 다시 계약을 시도해 봐야죠. 어차피 부도 나서 갖다 버려야 할 건데 다만 얼마라도 건지면 낫잖아요. 그냥 저한테 줄래요? 제가 적당하게 팔아 쓸게요.(모두 웃음)
그런 심리를 갖고 있으니까 사업에 실패하지요. 사업하는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안 된다고 죽어버리겠다고 하고 그러면 안 돼요. 100만원을 빌려줬으면 당연히 이자까지 쳐서 110만원을 돌려받아야 마땅하지만 때로는 상대가 원금도 못 갚는 상황이 될 수가 있는 거에요. 이 때 대부분 욕하고 말아버리는데 그러면 안 돼요. 욕도 하지 말고 계속 받으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줄 돈이 정말 없는 사람이면 받으러 가지 말아야 해요. 가봤자 소득이 없어요. 그러나 돈이 있는 사람이면 계속 받으러 가야 돼요. 이 때도 십만원만 주면 대부분 ‘내가 이거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고 화를 내고 말아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일단 십만원을 받고 또 달라고 해야 됩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지금 남은 것만 잘 정리해도 돈이 좀 될 겁니다. 그걸 왜 버려요? 제가 아는 한 사람은 형님이 수백억 원을 가진 자산가였는데 자살을 했어요. 그 이유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폭락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형님이 자살을 했으니까 그 동생이 형님의 남은 유산을 정리했는데 25억원이나 되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25억원을 놓아두고 자살을 한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정도 돈이 있는데 자살을 하겠어요?(모두 웃음)
질문자도 그와 똑같아요.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도 다 이런 상태입니다. 한 때는 대기업 임원이든 식당 주인이든 한 자리 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다 누워 있어요.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괴로워 하면서, 그렇다고 막노동을 할 수도 없고, 가족들 보기에는 민망하고,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만 마시다 보니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깨달음의장에 먼저 다녀오시고,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받아들이셔야 해요.
‘스님은 안 겪어 봤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네 맞아요. 저는 안 겪어봐서 아무런 집착이 없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에요. 질문자는 겪어본 것이 뭐 큰 자랑인 줄 아세요? 겪어보고 남은 건 집착 밖에 없잖아요. 그래놓고 괜히 아까운 목숨만 버리려고 하잖아요. 한 번만 더 그런 생각을 하면 마누라한테 사인 받아서 저한테로 넘겨 주세요. 제가 아주 좋은 곳에 사용해 드릴게요.”(모두 박수)
스님의 시원한 대답에 질문자도 얼굴이 밝아지고 대중들의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습니다. 마지막에 질문자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자 대중들도 질문한 분을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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