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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남북한의 신년사가 보여주는 기대와 우려

“5·24조치 4년… 남북 이젠 대화로” 


이것은 얼마 전 <중앙일보>가 1면 톱기사를 통해 내건 기획기사의 제목이다. <중앙일보>는 5·24조치를 해제하여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과 일본의 세력 각축이 한층 격렬해지고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가 현 상황을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3~4월 한반도 위기설과 남북이산가족 상봉 문제


이에 비해, <조선일보>는 연초부터 “‘통일은 미래다’”라는 주제로 연속으로 기획기사를 내보내 통일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갑작스레 통일이 가져다 줄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 데에는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처형사건으로 북한체제가 동요하고 있어 조기붕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기획기사는 현재의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남북관계의 중요성에서 출발하면서도 시간적인 절박성이나 접근방식의 면에서 서로 다른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갈래의 논조는 현 단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통일’이라는 대업을 추진하고 완수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해 놓은 임무이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대 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대통령이나 한번쯤은 ‘통일 대통령’을 꿈꿔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2015년에는 자유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아부성 발언도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통일 대통령’의 꿈보다 시급한 점은 위기관리와 함께 비정상화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여 먼저 평화공존의 기틀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체제 조기붕괴론을 전제로 통일을 얘기하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5·24조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하는 것이 순리이다.

 

정책(policy)과 대책(plan)은 구분해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급변 대책은 마련해야 하지만,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고 일어나더라도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북한의 붕괴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짜고 추진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북한의 붕괴만 기다리다가 오히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가져오고 통일을 크게 뒷걸음질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남북한의 신년사가 보여주는 기대와 우려


예전에는 북한에서 1월 1일 신년사나 신년공동사설이 발표된 뒤, 며칠 있다가 우리 쪽에서 대통령의 신년담화 발표가 있곤 하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신년 하루 전인 12월 31일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를 공개했고, 1월 1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낭독했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신년사의 주요 골자는 ‘안보태세 확립과 적극적인 한반도 평화’이다. 이것은 1월 6일 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구체화됐다. 신년기자회견에서는 남북한이 대립과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통일시대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통일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장벽이 되는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북한 핵무기의 고도화를 차단하고 비핵화하기 위한 국제공조를 강조하였다.

 

북한도 작년에 이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북한 신년사에 담긴 대남 메시지의 핵심내용은 ‘남북관계의 개선’ 촉구이다. 이 때문인 듯 이번 신년사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국가노선으로 제시한 ‘병진노선’이 단 한 번만 간단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함으로써 가급적 우리와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자세로 보인다.



우리 측의 신년사에 대한 북측 반응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측은 북한 신년사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통일부 대변인은 “금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언급하였으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의 비판적인 입장 표명은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대화 제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비핵화를 언급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었지만, 비핵화의 중요성을 감안해 우리 정부가 우려를 표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화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간다는 논평은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신년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는 6월 4일 중간선거 때까지 현재와 같은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는 정무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3~4월 두 달에 걸친 키리졸브 및 독수리 군사연습의 실시와 3월 26일 천안함사태 4주년으로 남북관계 악재가 기다리고 있고, 5월 한 달은 선거 준비기간이다.

 

이와 같은 국내 일정으로 볼 때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점에서 올 상반기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3~4월 한·미 군사연습은 남북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


금년 들어 또다시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오는 3~4월에 북한이 군사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과 같은 군사적 대립이 재연되면 남북관계 개선이나 6자회담 재개를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의 조기 실현가능성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작년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맞서 3~4월 키리졸브, 독수리 연합군사연습 때 한·미 양국이 B2 스텔스폭격기, B52 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격시키는 등 대북 확장억제력을 전개하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핵전쟁 불사 운운’하면서 제2의 전쟁 위기까지 갔던 악몽을 되풀이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 위기 여파로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상호 불신만 깊어졌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목표로 제시한 남북관계 정상화와 통일기반의 조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 위기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2016년 4월까지 1년 10개월 동안 국내 선거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소신껏 대북정책을 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또한 올 9월에 있을 인천 아시안 게임에 북한 측의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화해분위기 조성의 촉발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시기에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시간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전개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작년 8월 31일 로버트 킹 북한인권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의 방북 목적은 북한에서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 혐의로 15년의 노동 교화형을 받고 억류되어 있는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평양 방문을 하루 앞두고 그의 초청을 취소했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군사연습(8.19~8.30) 때 미국의 B-52 전략핵폭격기가 출격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북한은 실제로 신년사에서 “(한·미 양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전쟁 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북침 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이로 하여 사소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전면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그것은 엄청난 핵 재난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미국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군사도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의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북한 신년사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주목하는 바는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오는 3~4월의 독수리 한·미 군사연습에 대해 예상되는 북한의 반발과 관련해 “북한이 도발을 삼가야 한다”며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그런 점에서 당면한 한반도 위기설에서 벗어나 동북아 주변국들의 각축에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이루기 위한 협력적 남북관계가 만들어질지 여부는 오는 3~4월에 실시되는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시금석이 되고 있다. 비록 정례적인 것이고 방어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한·미 양국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군사연습을 진행하여 한반도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한반도 상황의 평화적 관리는 우리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도 정례적인 한·미 군사연습에 과민 반응을 일으켜 실제 군사행동을 벌여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과격한 언사를 남발해 남측을 자극하지 말고 신중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남북 쌍방이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한반도 위기국면을 넘겨야 신뢰도 생기고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도 열릴 수 있다 .

 

여기서 한반도 위기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오는 1월 31일 설날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 측에 제안하였다. 북한 측이 신년사에서 제시했듯이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다면 서둘러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재개에 호응하여 그 진정성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통일은 그와 같이 남북한이 한 땀 한 땀 씨줄날줄로 엮어나갈 때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전쟁불사를 외치거나 ‘너부터 먼저 성의를 보이라’고 하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통일은 미래이지만 그 미래가 가능하도록 민족성원 모두의 지혜와 열정과 의지를 모아 실천해 나가야 할 현실의 과제이다. 2014년 벽두에 남북한이 함께 이해와 타협의 새로운 자세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어가는 기회를 만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