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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북한의 경제회생 노력, 박근혜 정부가 이를 활용한다면?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신뢰의 첫 단추를 꿰면서 순항할 듯 보였던 남북관계가 북측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행사 연기 통보로 또다시 갈등관계가 재연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후퇴한 책임을 남쪽에 떠넘기고 대남 비난을 강화하면서 선전전을 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10월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노동당 총비서 추대 16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남북관계가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남쪽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10월 들어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북한의 비난도 부쩍 늘었고 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신보’는 10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난하는 이유에 대해 상대방의 각성을 촉구하는 하나의 충격요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조평통 대변인은 10월 12일 통일부가 그들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모독하고 있다며 징벌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리고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TV’는 박근혜 대통령을 ‘유신 스타일’이라고 조롱한 풍자 동영상까지 게시하였다.


북한의 이 같은 비방·중상과 위협적 태도로 인해 남북 간에 대결과 불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최근 북한이 밖으로 보내는 일련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손을 내미는 북한


북한 당국은 지난해 11월 관광객을 인솔해 함경북도 나진으로 들어갔다가 길거리에서 꽃제비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억류돼 반공화국 적대범죄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특별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케네스 배 모친의 방북(10월 10~14일)을 허용하였다. 케네스 배가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해 있던 평양친선병원에서 그 모친은 3번에 걸쳐 그를 면회할 수 있었다. 10월 17일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에 따르면 북한은 배씨 가족과 전화 통화도 허용하였다.


지난 8월 말 케네스 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를 초청하기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 철회하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대외적으로 인도주의 정신을 부각시켜 경색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풀어보려는 손짓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10월 25일 우리 국민 6명과 함께 유해 1구를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이 이번에 억류한 우리 국민을 전격적으로, 그것도 판문점을 통해 귀환을 허용한 것은 다분히 자신들의 인도주의 배려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10월 24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명의의 전통문을 통해 이들의 귀환 사실을 통보하였고 우리 적십자사에 인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범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였으므로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히 용서하고 가족이 있는 남측 지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는 10월 25일자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도 북한의 의도가 읽혀진다.


북한은 우리 국민 6명의 송환 통보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의 국정감사 기간 개성공단 방문도 동의하였다. 비록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의 방북은 거부했지만, 매우 이례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같은 북한의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자신들의 지속적인 도발행위로 안보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순간 역설적으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한 바 있다. 이번에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련의 유화 제스처를 취해 나온 이면에는 대화를 바라는 북한의 속내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회생 노력을 끌어주는 것이 전략적 지혜다


한편 북한이 최근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내부의 절박한 필요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3월 31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강조한 데 이어 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구 설치, 각도마다 현지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 설치를 결정했다. 그리고 10월 16일 발표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북한이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2011년 설치한 국가경제개발총국을 국가경제개발위원회로 승격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노동신문은 10월 23일 조선경제개발협회가 10월 16일∼17일 평양에서 개최한 경제특구 국제토론회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이외에 금년도 14개의 경제개발특구들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과 외국컨소시엄이 '개성첨단기술개발구'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경제회생을 위해 구체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는 데 최대의 걸림돌은 북한의 핵개발이다.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면서 ‘핵 보유국’을 명시하였다. 또한 금년도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발전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경제회생 몸부림까지 눈감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북한이 하루속히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하여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핵문제도 해결의 가닥이 잡힐 수 있을 것이다. 경제회생을 위한 북한의 절박함마저 외면할 경우 우리의 이러한 전략적 구상의 바탕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나쁜 행동을 그만두어야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 되었다. 북한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는 전략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가 경제력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작은 것에서부터 신뢰를 쌓아 큰 신뢰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핵개방 3000’과 분명한 접근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되기를 크게 기대해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북한에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포기하라고 주장만 하고 있을 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주도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시 기다리는 전략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노동신문이 10월 24일 논평원 글을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북한은 지금 경제회생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이 내민 손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경제회생의 절박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핵문제 해결의 동력도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동북아 질서 재편에 대처해야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빠져 있는 이 순간에도 동북아 질서의 새판을 짜려는 관련 당사국들의 움직임은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견제와 협력이 교차하는 가운데 동북아 질서 새판 짜기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서 보여주듯이 남북한 분단과 북한 핵문제, 미국의 대중 견제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미국의 지지 속에 재무장과 안보역량을 강화하는 우경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되면 앞으로 미·일과 중국 간에 한랭전선이 확대되고 알력과 견제의 구도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며, 우리는 동북아 질서 새판 짜기에서 줄서기를 강요당한 채 한반도 관리의 주도적 역할을 상실할 우려마저 있다.


19세기 유럽중심의 국제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선은 적절한 생존전략을 모색하지 못해 망국의 길로 전락하였다. 텅 빈 곳간과 보잘 것 없는 군대로 소용돌이치는 질서 짜기의 희생양이 되었던 조선과 달리 지금 우리는 상황의 전개를 리드하는 주요 인자로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남북관계 개선과 이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최근 북한이 내민 손을 잡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핵문제 해결 여건을 조성하면서 지속적인 국가발전과 민족번영을 기해 나갈 수 있도록 전략적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