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륜스님 즉문즉설

"새터민이라고 반장선거 다시... 어떡하나요?"

지난 9월 30일, 서울 양강중학교 실내체육관에서는 (사)좋은벗들(이사장 법륜스님)이 주최하는 제11회 통일체육축전이 열렸다.

 

좋은벗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이 자리는 추석을 즈음하여 고향에 가지 못하는 새터민들과 함께 북녘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내고, 모인 김에 한바탕 운동도 하고 노래자랑도 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벌써 햇수로 열한번 째를 맞이했다. 올해는 수도권과 영남권 두 군데로 나뉘어서 열렸는데, 수도권에는 약 846명, 영남권에는 약 615명 총 15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 추석에 고향에 가지 못한 새터민들이 좋은벗들 시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 비가 와서 행사는 운동장에서 열리지 못하고 실내체육관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체육대회 프로그램이 일부 조정되고, 오전에는 새터민과 함께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다.

 

 

▲ 새터민들과 남한 사회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즉문즉설 하고 있는 법륜스님.

 

법륜스님은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처음 미국 가서 고생하며 돈을 번 이야기, 또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미국에서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도 한국에서 어렵지만 열심히 일하고 적응해서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날을 만들어 행사를 하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새터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애틋하게 이해해 주었다.

 

새터민들도 법륜스님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비가 와서 갑자기 프로그램이 변경되어 잡힌 즉문즉설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왔다.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하는지, 한국에 온 지 8개월 되었는데 식당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 때문에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리고 법륜스님을 14년 전에 처음 만났는데 스님은 오히려 더 젊어 보이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북한 사람이라고 차별받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살아가면서 고민되거나 부딪히는 문제들을 질문했다.

 

 

▲ 새터민들이 남한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법륜스님에게 질문하며 즉문즉설을 하고 있다.

 

많은 질문들 중 한 어머님은 "아들이 반에서 반장이 되었는데, 북한에서 온 새터민을 반장으로 할 수가 없다고 하며 다음날 다시 무효가 되어 새로 뽑았다고 한다, 이럴 때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라고 물었다.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 받는 서러움, 특히나 자녀들이 상처받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새터민이라는 것을 숨겨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숨겨서 반장 하면 뭐하고 숨겨서 잘 보이면 뭐해요? 숨겨서 결혼하고 나서 잘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밝혀져 이혼하게 되기도 하고, 숨긴 것들이 들키지 않아 이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그렇게 살 이유가 뭐가 있나요?

 

일부러 새터민이라고 알리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북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숨깁니까? 내가 태어나기를 북에서 태어난 것이 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차별을 받아야 하나요? 만약 그런 차별을 받는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그런 차별은 안 된다고 되어 있는데, 왜 차별의 대상이 됩니까?'하고 조근조근 따지면 됩니다. 누구라도 피부색, 종교, 국적에 따라 차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해고 사유가 되면 저에게 요청하세요. 무료로 변호사를 지원할 테니 소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률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북에서 왔다는 둥 동남아에서 왔다는 둥 수군수군합니다. 이런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교육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에게 일부러 북에서 왔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고향이 어디냐고 하면 신의주, 무산 등 자기 고향을 밝히면 됩니다. 엄마가 그것을 자꾸 숨기면 아이는 열등감을 가지게 됩니다. 북에서 태어난 것이 큰 죄나 되는 것처럼 되어서 앞으로 사회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이에게는 반장이 되는 것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아이가 반장이 되었는데 다음날 만약 바뀌었다면 화를 낼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선생님이 잘못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성별, 피부 빛깔, 종교, 국적에 따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반장은 능력에 따라 선출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출생으로 차별한다면 상처가 얼마나 커지겠어요? 이런 문제는 학교나 교육청에 가서 알려서 시정을 해야 합니다. 아님 신문에라도 내서 시정해야 합니다. 기술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차별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출생에 의해 차별받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법률적인 도움을 받아서 시정을 해나가야 합니다.

 

한국에 먼저 온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싸워서라도 시정해 줘야 뒤에 온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기 죽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북한에서도 기가 센 사람이잖아요. 기가 세니까 여기까지 왔잖아요. 북한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고,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왔으면 대단히 기가 센 사람입니다. 깡패처럼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부당한 것은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에 보장된 권리는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는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고, 남한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야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면 시정을 요구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아이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하면 데리고 오라고 하고, 그러나 아이가 '식당에서 친구들을 초대하면 안 되겠냐'고 하면 '그래 니 좋은대로 해라'고 배려해줄 수는 있지만, 아이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겠다는데 데려 오지마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북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자신감을 아이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법륜스님은 새터민들에게 아이를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키우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터민 아이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고 대한민국에서의 권리를 당당히 누릴 것을 조언했다.

 

"아까 말씀하신 학생의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선생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됩니까? 여기 선생님들 계시면 이것은 정말 해결해야 합니다. 어른이 직장에서 차별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피부 빛깔, 성별, 국적, 종교, 신체장애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것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일류 문명국가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세대는 그런 것을 못 배워서 습관이 남았지만, 자라나는 세대는 인종적 문제, 종교적 문제, 민족적 문제, 출생의 문제 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가르쳐주고 심어줘야 합니다.

 

혹시 아이들이 집에 와서 '누구의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다, 북에서 왔다'고 하면 야단을 쳐야 합니다.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남의 나라로 가는 것은 한류라고 좋아하고 남의 것은 배타하면 한류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법륜스님은 새터민들의 아픔도 어루만져 주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정신적, 도덕적으로 앞서야 하고 포용해서 가야 함을 다시 한 번 일러주었다.

 

 

행사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새터민들과 인사하는 법륜스님.

 

즉문즉설이 끝난 후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새터민들은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먹으며 법륜스님과 인사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 제기차기 등 각종 운경 경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새터민들.

 

오후에 이어진 명랑운동회에서는 다양한 운동 경기를 즐겁게 하며 추석날 고향에 가지 못한 시름을 달랬다. 시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어울려 응원단장을 선출하고 서로 응원전을 치른 새터민들은 이후 풍선탑 쌓기, 파도타기, 신발 멀리 던지기, 목소리 고음측정, 제기차기, 다트 던지기, 림보, 팔씨름, 투호 던지기, 미니 농구, 단체줄넘기, 100미터 달리기, 5인6각 등 다채로운 경기들을 펼치며 해맑게 웃었다. 마지막 노래자랑 대회에서는 북한에서 부르던 노래 실력을 마음껏 뽐내기도 했다.